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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기획┃타락한 드라마②] 가족극의 탈을 쓴 막장 드라마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0.11.25 06:01
수정 2020.11.24 17:54

서영명으로 시작해 문영남, 임성한, 김순옥이 ‘막장 트로이카’ 구성

‘김치 귀싸대기’ ‘스파게티 싸대기’ ‘눈 레이저’ 등 자극적이고 황당 장면 탄생

ⓒKBS2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라고도 불리는 막장 드라마가 이젠 하나의 장르처럼 인식되고 있다. 심지어는 작가나, 제작자 스스로가 자신들의 작품을 두고 ‘막장 드라마’라고 광고(?)하는 시대다. ‘막장’은 원래 탄광에서 사용하던 용어로, ‘석탁을 캐기 위해 뚫어 놓은 갱도의 막다른 곳’을 의미한다. 오늘날엔 길이 막혀 더 이상 나갈 수 없는 상태를 보고 갈 데까지 간 사람의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 시작했다. ‘막장’의 개념이 꽤나 포괄적이어서 한 마디로 정의할 순 없지만 분명 개운치 못한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심지어는 ‘명품 막장’이란 기묘한 단어까지 만들어가면서.


막장 드라마도 방영 초기에는 가족극으로 포장된다. 밝고 그럴싸한 시놉시스나 설정을 내세우지만, 어느 순간 이런 설정들이 사라지고 여러 집안의 혈연관계 및 가족관계가 각종 범죄와 불륜, 비도덕적으로 얼룩진다. 이 관계는 결국 극의 후반에 가서 무너진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도 지극히 작위적이고, 단순하다.


이 과정에서 선한 역이든 악역이든 신파극적인 가족애를 들먹이면서 정당화하려 하고, 배경을 통한 자극성에 지칠 때쯤이면 시각과 청각을 자극하는 출생의 비밀, 고부갈등, 삼각관계, 물질만능주의, 불륜, 패륜 등 비현실적인 요소, 강간이나 청부살인, 집단구타, 음모 등 불법이나 불건전한 요소 등을 집어넣는다. 비교육적이고 비도덕적, 비윤리적인 소재가 ‘반드시’ 들어간다.


혹자는 이러한 통속극이 과거부터 있었다며 “보기 싫으면 안 보면 그만”이라고 말하지만, 엄연히 소재가 통속적인 것과 내용이 졸렬한 것은 별개로 구분해야 한다. 또 영화와 달리 드라마는 자극적 요소 사용에 조심해야 한다. 매주 각 편이 끊어지기 때문이다. 극의 주제의식이 있다 해도 후반으로 미뤄질 수밖에 없다. 각 회로 나누면 메시지는 사라지고 자극적 요소만 남을 위험이 있다. 물론 극이 마무리 된 이후 뒤늦게 재평가되는 드라마도 있지만, ‘막장형 스토리’를 가진 드라마가 대개 방영되는 동안 이런 평가를 받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막장 드라마’란 말의 첫 사용은, 2000년대 후반 등장인물 전부가 불륜에 빠지는 설정을 한 문영남 작가의 SBS ‘조강지처 클럽’이다. 이전에도 자극적인 소재를 사용하면서 ‘논란의 드라마’라고 불리는 경우가 있었지만, 막장 드라마가 본격적으로 대중화된 건 이 때부터였다. 이어 아내가 자신을 버린 남편과 불륜녀에게 복수를 하는 내용을 담은 SBS ‘아내의 유혹’(2008)이 나왔고 이는 이후 ‘천사의 유혹’ ‘아내가 돌아왔다’ 등의 복수시리즈를 잇달아 만드는 원동력이 됐다.


드라마의 ‘막장’ 여부를 결정하는 건 작가의 스타일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막장 3대장’ ‘막장 트로이카’ ‘막장 F4’ 등의 별명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흔히 임성한 작가를 막장 드라마의 어머니 격이라고 부르는데, 서영명은 막장 드라마의 할머니 격이다. 서 작가는 ‘댁의 남편은 어떠십니까’를 시작으로 서서히 막장의 길로 접어들었고, 1995년 ‘이 여자가 사는 법’이 주말극 1위를 하며 스타작가 반열에 올랐지만, 자극적인 설정과 파행 전개로 도마에 올랐다. 특히 MBC ‘밥줘’(2009)의 막장성은 최고도에 달해 이후 한동안 작가 활동을 하지 못하기도 했다.


활동이 뜸해진 서 작가의 공백은 김순옥이 채우면서 현재는 ‘막장 드라마의 트로이카’로 문영남과 임성한, 김순옥의 이름이 거론된다. 문영남은 앞서 막장 드라마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만든 ‘조강지처 클럽’의 작가이기도 하다. 그보다 앞서 ‘소문난 칠공주’를 통해 그 전조를 보인 후 본격적으로 ‘조강지처 클럽’과 ‘수상한 삼형제’로 자극적인 드라마의 선두주자가 됐다. 최근 작품으로는 지난해 1월 방영된 ‘왜그래 풍상씨’가 있다. 이에 앞선 ‘우리 갑순이’와 마찬가지로 앞서 보여줬던 막장성은 점차 수그러들었지만, 특유의 ‘발암’ 소재는 끝까지 놓지 못했다. 특히 ‘왜그래 풍상씨’는 김순옥의 최근작이었던 ‘황후의 품격’과 같은 시간대에 방영되면서 ‘문영남 vs 김순옥’이라는 빅매치가 성사되기도 했다.


ⓒSBS

주부용 막장 드라마로 문영남과 함께 거론되는 작가는 임성한이다. 서영명이 지상파에서 자취를 감춘 사이 두 사람은 한국 막장 드라마의 양대산맥으로 불렸다. 문영남이 소위 ‘발암 드라마’로 시청자들의 뒷목을 잡게 했다면 임성한은 전례 없는 파격적인 소재로 ‘식스센스급의 막장 전개’를 보여주는 작가다. 그는 ‘인어 아가씨’를 시작으로 ‘왕꽃 선녀님’ ‘하늘이시여’ ‘신기생뎐’ ‘오로라 공주’를 집필했고 ‘압구정 백야’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올해 12월 편성된 성훈, 이태곤 주연의 TV조선 드라마 ‘결혼작사, 이혼작곡’으로 복귀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이 역시 부부들의 불협화음을 다룬 드라마로 소개되면서 막장 드라마로의 화려한 귀환이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다.


이들 다음 세대로 등장한 이가 김순옥 작가다. 2008년에는 SBS에서 평일 저녁 7시 20분이라는 열악한 시간대를 극복하며 시청률 40%를 넘긴 막장 드라마 ‘아내의 유혹’을 집필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의 유혹’의 성별 반전 버전인 ‘천사의 유혹’을 썼다. 이후 ‘다섯 손가락’ ‘왔다! 장보리’ ‘내 딸, 금사월’ ‘황후의 품격’ 등 극단적 캐릭터 설정과 상황, 잦은 우연과 사악한 악역 등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의 진수를 제대로 보여줬다. 특히 지난달 26일부터 방영중인 SBS ‘펜트하우스’는 ‘황후의 품격’을 통해 호흡을 맞췄던 주동민 PD와 다시 한 번 의기투합한 작품으로 방영 첫 주부터 온갖 자극적인 설정과 무리수 전개로 비난을 사고 있다. 막장 PD와 막장 작가의 끔찍한 시너지가 재현되고 있는 셈이다.


이들이 보여주는 장면들은 하나 같이 욕하면서도 눈길을 끈다. MBC ‘모두 다 김치’에서는 김치로 주인공의 뺨을 때리는 ‘김치 귀싸대기’ 장면이 나오고, 이에 질세라 MBC ‘이브의 사랑’에서는 스파게티로 얼굴을 가격하는 ‘스파게티 싸대기’ 장면이 나왔다. SBS ‘신기생뎐’에서는 공상과학 장르도 아닌데 주인공의 눈에서 갑자기 레이저가 나오는 황당한 장면도 있었다. 특히 최근에는 그 수위가 더 심각해지는 모양새다. 오히려 “막장이 아닌 드라마를 찾기 힘들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드라마 관계자는 “2000년대에 막장 드라마의 수위가 심각해지면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을 정도다. 그 이후로 조금씩 잦아드는 듯 했지만 끝을 모르고 추락하는 시청률 때문인지 다시금 막장 드라마가 속출하고 있다. 물론 흔히 말하는 막장의 요소들을 극적인 연출을 위해 사용할 순 있지만 극의 전개와 무관한 막장 요소들의 강도는 더 심각해지고 있다. 심지어 ‘가족극’이라고 보기 좋게 포장해놓고, 실상은 막장 드라마인 경우도 잦다”고 지적했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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