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현장] '소리도 없이' 홍의정 감독의 아이러니로 가득한 新 범죄극
입력 2020.10.12 13:09
수정 2020.10.12 13:23
영화 '소리도 없이'가 우리가 알고 있는 선과 악의 모호한 지점을 극대화시켰다. 범죄극이란 장르와 어울리지 않는 밝은 색감, 동화같은 배경 등의 조화가 이같은 메시지를 소리 없이 뒷받침한다.
12일 오전 홍의정 감독과 유아인, 유재명이 참석한 가운데 영화 '소리도 없이' 기자간담회가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소리도 없이'는 유괴된 아이를 의도치 않게 맡게 된 두 남자가 그 아이로 인해 예상치 못한 사건에 휘말리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영화는 계란 장수지만 돈을 받고 청부 살인의 뒷처리를 해주는 창복과 그의 일을 돕는 태인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그려진다. 계란장수란 설정과 어린 아이들의 인신매매가 이뤄지는 양계장이 등장하며 닭과 계란이 영화 속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홍의정 감독이 '소리도 없이'를 기획한 출발점을 상징성으로 녹여낸 장치다.
홍의정 감독은 "예전에 달걀 속 병아리 태아의 모습이 인간의 태아와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제가 쓰려고 했던 이야기의 시작이 자기가 결정하지 못한 환경 속에서 생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보니, 내가 닭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란 생각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소리도 없이'에서 태인과 창복의 관계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관객이 영화를 보며 두 사람의 인연과 서로에게 끼치는 영향을 추측할 뿐이다. 홍 감독은 "아들과 아버지, 더 크게 보면 선배와 후배, 거기서 더 나아가면 시대와 시대가 갖는 차이를 보여주고 싶었다. 인생 선배 창복이 후배 태인에게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정보들을 인생의 진리처럼 조언한다. 정보의 내용을 보면 옳은 말이지만 상황과 태인에게는 쓸데없는 말이다. 그런 대사가 주는 호흡 속에서 아이러니한 느낌을 살리고 싶었다"고 전했다.
극중 태인은 말을 하지 않는 인물로 그린 것에 대해서는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세상이 들어주지 않으면 그 사람의 목소리는 없는게 아닐까 싶었다"고 이유를 말했다.
데뷔 후 처음으로 대사 없이 러닝타임을 끌고가는 유아인은 "대사가 없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과장된 표현을 하려고 노력하진 않았다. 오히려 대사가 없다는 부담이 연기에 반영되지 않도록 고민했다. 캐릭터와 영화를 위해 따로 준비한 지점은 없었다"면서 "도전이 필요한 인물을 연기하며 내가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란 궁금증이 생겼다. 태인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냐의 문제가 아닌, 나를 현장에 어디까지 놓아둘 것인지 고민을 더 많이하며 연기했다"고 밝혔다.
유재명이 연기한 창복이 신앙심이 깊은 것 역시 아이러니함을 강조하기 위한 설정이다. 홍의정 감독은 "캐릭터가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고군분투를 한다면, 옆에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은 사람이 있었으면 좋을 것 같았다. 사회적 기준으로 결핍이 있지만 많은 종교들은 모두가 가치있다고 말한다. 특수한 직업을 가진 사람도 인정받을 수 있는 곳, 태어난 것만으로도 가치를 인정해주는 곳이 종교라고 생각했다"고 창복과 종교의 관계성을 설명했다.
홍의정 감독은 납치된 아이 초희가 태인, 창복과 함께 범죄를 일상으로 적응해가는 전개에는 "공포스러운 순간에도 잠이 들 수 있는 것처럼, 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마음을 놓을 수 밖에 없는 상황들이 생길 것이다. 아이에게는 태인과 창복이 자신의 생존을 돕거나 방향을 틀 수 있는 인물이기에 잘 보여야 하는 대상이다. 그런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전했다.
유아인과 유재명은 '소리도 없이'를 통해 처음으로 호흡을 맞췄다. 유재명은 "유아인은 내게 배우라기 보다는 아이콘 같은 느낌이었다. 실제로 작업해보니 어떤 배우보다 열심히 하고 현장에서 자유롭게 연기하는 것을 봤다. 나는 연극을 한 경험 때문에 작업을 너무 성스럽게 대하는 면이 있는데 유아인은 유연하고 소통을 하며 즐기고 있었다. 그런 점이 부럽기도 했다"고 유아인과 함께 연기한 소감을 말했다.
유아인 역시 "존재만으로 의지가 됐다. 말이 없는 캐릭터라 카메라가 돌아가는 순간 제가 드릴 게 없어서 죄송했다. 하지만 대사가 아니어도 존재하며 가져갈 수 있는 호흡에서는 편안함을 느꼈다. 감정의 불순물이 없는 상황에서 유재명 선배와 연기할 수 있어 기뻤다"고 화답했다.
유아인은 '소리도 없이'를 탐구하고 연기하며 느꼈던 것들을 관객들 역시 가져갈 수 있길 바랐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공감할 수 있었던 부분은 내가 선하다고 믿는 것들이 실제로 선한 것이었는지, 내가 악하다라고 주입돼 있는 정보들이 그 자체로 진리인 것이가를 다시 고민한다는 점이다. 윤리의식, 사회인으로서의 삶, 개인의 가치관 등 여러가지 신념들의 옳고 그름 따위가 존재하는지, 그것으로 빚어진 선악을 너무 쉽게 나누고 있지는 않은지, 이면을 이해하지 못하고 표면적으로 평가하하고 있진않나를 영화가 간결하게 다루고 있다. 이것이 '소리도 없이'의 가장 큰 마력"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유아인은 "홍의정 감독은 문제를 상당히 날카롭게 바라보며 본질을 품고 있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 이런 창작들을 꺼낼 수 있는 비판, 전체를 아우르며 자기 이야기를 꺼내는 감독의 성정이 영화 속에 있다"고 첫 장편영화를 연출한 홍의정 감독과의 작업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소리도 없이'는 10월 15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