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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부채 비율을 대통령이 쥐락펴락?…발표 앞둔 '재정 준칙' 논란

유준상 기자 (lostem_bass@daum.net)
입력 2020.09.25 09:00
수정 2020.09.25 09:14

재정 준칙 오는 29일 국무 회의서 발표 거론

국가 채무 비율 등 지표는 시행령에 담을 듯

시행령 '국회 통과 없이' 행정부서 개정 가능

정세균 국무총리가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임시 국무회의에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한국의 국가 건전성을 책임질 재정 준칙 공개가 임박했다. 정부가 국가 채무 비율 등 구체적인 지표는 고치기 쉬운 시행령에 담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벌써부터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25일 정부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이달 말 재정 준칙 발표를 목표로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다. 오는 29일 국무 회의에서 확정해 발표하는 계획이 거론된다. 내용으로는 2007년부터 시행된 국가재정법을 고쳐 재정 준칙의 근거를 마련하고, 국가 채무 비율 등 구체적인 지표는 시행령에 담는 방안이 유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밖에 ▲의무 지출을 도입하면 그 재원 확보 방안을 함께 마련하도록 하는 '페이고'(Pay-go) 원칙을 적용하되, 시행 시기는 다음 정부부터로 하는 등 유예 기간을 둔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나 세계 금융 위기 등 경기 침체를 유발하는 재해가 발생할 경우 재정 준칙 적용을 예외로 한다 등의 내용도 함께 검토되고 있다.


재정 준칙은 공개되기도 전부터 그 실효성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현재 언급되는 구조로는 재정 건전성을 지킬 수 없다는 지적이다.


우선 시행령은 대통령이 정한다. 고칠 필요가 있는 경우 소관 부처가 일정 기간 입법 예고한 뒤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발표하면 된다. 개정하려면 반드시 국회를 통과해야 하는 법령과 달리, 모든 개정 절차를 부처(기재부)-국무총리(국무 회의 부의장)-대통령(국무 회의 의장) 등 행정부 안에서 마칠 수 있다.


김용승 가톨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예컨대 재정 준칙 시행령에 '국가 채무 비율은 60%를 넘기지 않도록 한다'고 담았다가, 이를 지키지 못하게 될 것 같으면 정부가 뚝딱 고칠 수 있는 셈"이라면서 "건전성을 지키겠다고 재정 준칙을 만드는데, 그 핵심인 구체적인 지표를 기재부가 시행령에 담는다면 그것은 말 그대로 유명무실"이라고 했다.


함께 검토되는 페이고 원칙에도 비판이 나온다. 이 원칙은 정부가 새 재정 지출 항목을 추가할 때 재정 수지에 미치는 악영향을 완화하기 위한 것으로 그 자체로도 재정 건전성을 지키는 데 큰 역할을 한다. 2014년 기재부가 조세 지출 기본 계획에 이 원칙을 포함했지만, 당시에는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무산됐다.


이번에 페이고 원칙 도입을 재시도하는 셈이지만, 유예 기간을 두는 방안이 검토된다는 점이 문제다. 재정 준칙의 근거를 담은 국가재정법 개정안이 이달 중 만들어지더라도, 입법 예고 등 이후 절차를 고려하면 법안이 국회로 넘어가는 시점은 올해를 넘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적용을 유예할 경우 적용 시기는 다음 정부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


기재부는 일찍이 재정 준칙을 "유연하게 만들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코로나19와 같은 국가적인 위기가 다시 발생했을 때 재정 준칙이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앞서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 21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출석해 "경직된 준칙으로 재정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이는 제약이 되는 것"이라면서 "(코로나19처럼) 긴급한 재난이나 위기 시에는 재정 준칙이 탄력성 있게 운용될 수 있도록 만들겠다"고 했다.


국가 채무 비율 등 각종 건전성 지표를 일정 수준 이상 늘리지 못하도록 정하는 것이 준칙이지만, 필요할 때는 확장 재정을 적극적으로 펼칠 수 있도록 운영하겠다는 얘기다.


'고무줄 재정 준칙 아니냐'는 야당의 비판에는 "일부 국가는 코로나19를 겪으며 기존 재정 준칙 적용을 일시적으로 유예하거나 중지 조처했고, 준칙을 도입할 때 일정 기간 적용을 유예하는 연착륙 방안을 마련한 곳도 있다"고 반박했다.


관가 바깥 일각에서도 완고한 재정 준칙을 둬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의 경제 규모가 성장하는 만큼 나랏빚은 늘어난다"면서 "세계 경제 변동성이 큰 상황에서 국가 채무 비율은 특정 수준을 넘기지 않는다고 규제하는 재정 준칙을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재정 준칙은 기재부가 이달 초 '2020~2060년 장기 재정 전망'을 내놓으며 "재정 적자 규모가 일정 수준을 넘지 않도록 법적 기준을 마련하고, 이를 준수하게 하는 방안을 만들겠다"고 하면서 도입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당시 2021년도 예산안을 함께 내놨던 기재부가 "2020년 839조원인 국가 채무액은 2024년 1327조원까지 늘어난다"고 밝히면서 재정 준칙을 도입하자는 목소리는 더 커졌다. 정부가 제4차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하면서 올해 국가 채무액은 847조원으로 더 커질 전망이다.

유준상 기자 (lostem_bas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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