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소민의 슬기로운 예술소비]미술사도 공부하고, 미술시장도 ‘싹쓰리’하고
입력 2020.08.12 17:27
수정 2020.08.12 17:27
좋은 미술작품을 감상(예술소비 1단계)하고 있노라면, 깊은 감흥도 잠시다. ‘도대체 이 작품은 얼마면 구입 할 수 있을까?(예술소비 2단계)’라는 현실적인 미술투자 값어치에 관한 궁금증(예술소비 3단계)도 생기게 마련이다.
예술작품은 먼저 한 예술가의 영감으로 탄생된 작품으로 명명된다. 이후 그 작품을 예술제도 안으로 진입시키면 미술관, 갤러리, 미술전문가, 그리고 관람객들이 작품으로 인정하고 공감대를 형성한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미술시장과 유명 컬렉터 등도 개입되어 좀 더 구체적으로 가치와 의미를 부여 받게 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이루어지는 작품의 매매도 중요한 단계를 이루게 되며, 매매과정까지 마무리 됨으로써 그제서야 비로소 유일무이(唯一無二) 한 원작의 작품으로 미학적 가치와 상업적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 때문에 현대 미술품의 높은 가격에는 매수자가 작품의 가치창작에 참여한다는 자부심과 스스로 가치창조자가 된다는 약간의 허영과 사치, 그리고 조증 마니아도 포함된 가격인 것이다.
즉, 오늘날 우리의 예술소비는 단순히 아름다운 완제품만을 구매하는 것을 넘어 예술품의 가치창조까지도 관여하는 예술소비 활동인 것이다.
미술에 대한 소비가 의미하는 바에 대한 가장 뛰어난 연구서가 있다. 네덜란드의 사회학자 올라브 벨터이스(Olav Valthuis)가 저술한 ‘가격 말하기’(Taking Price)다. 올라브 벨터이스는 이 연구서를 빌어 “미술시장에서는 컬렉터들이 미술품을 통한 ‘슈퍼-신분 효과(Super-status Effect)’를 위해 경쟁한다” 라고 언급했고, 이러한 현상이 진행되는 동안 가격은 계속 상승할 것으로 예측했다. 즉, 결국엔 미술시장의 흐름은 우상향 하면서 장기적으로 상승할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미술품의 가격은 그 가치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수요와 공급에 따른 시장의 법칙을 따르지 않는다. 다만, 그 가치매김에는 예술제도를 이루는 사회의 다양한 변수들이 미술품의 가격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예를 들어보자. 미술시장을 움직이는 큰손들은 막대한 자금을 바탕으로 전략적인 베팅을 한다. 그러한 큰손들의 움직임으로 수집한 작품은 이내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 작품이 된다. 이처럼 각국의 부자들이 부를 과시하기 위해 이 같은 미술 시장에 뛰어드는 사례들을 종종 들어보았을 것이다. 여기에 애국심까지 합세하여 자국 출신의 예술가들의 작품에 과도한 가격을 매겨 경쟁적으로 수집하여 시장이 형성되기도 한다.
이처럼 컬렉터마다 컬렉션의 목적은 다를지라도, 미술시장에서 좋은 컬렉션이란 공통분모는 존재한다. 미술시장의 외적 환경을 버텨낼 수 있는 경쟁력 있는 미술품은 말 그대로 최고 수준의 작품과 작가라는 인식이 이미 형성되어 있다. 미술시장에서도 투자의 귀재라는 중국이나 중동의 부호라는 컬렉터들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데, 이들 역시 충분히 검증된 작가 위주로 작품을 구입하기 위해 앞다투고 있다..
블럼버그와 아트넷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한 발표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미술시장에서 작품가격이 가장 많이 상승한 작가 15인에 유독 다수의 중국인 작가가 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성격의 수요는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일부 작가의 수요가 집중되는 현상 또한 최근 시장을 이끄는 컬텍터들이 현대 미술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지 않는다는 분석도 있다
미술품의 가격은 어떻게 평가되고, 이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지는 여전히 어려운 질문이다. 20세기 최고의 화상으로 팝아트의 공식적인 후견인을 자처했던 레오 카스텔리(Leo Castelli)는 이 질문에 대해 “시장 가격이란 것이 있겠지만, 그 가격은 평가 할 수 없는 것에 근거를 둔 가격이다”라고 말했다. 말인즉슨, 일반인들은 현대 미술품의 높은 가격에 대해서 이해하기 힘들 것이란 말이기도 하다.
이론적으로 작품 가격을 결정짓는 요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작가의 성장 가능성, 작품 시장 거래 현황, 작품성에 대한 평가, 그림 거래 이력과 환금성 등 구입자의 기호 문제도 조금 더 세부적으로 나눠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이루어진 그림의 가치수명에 대한 판단으로 한 번 미학적 가치를 인정받은 그림은 시간이 흘러 다양한 소장자를 거치면서 그 시장 가치가 더 상승하게 마련이다.
작품이 그림시장에서 부여되는 그 컬렉션의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좋은 작품의 선택 기준은 미술사를 기반으로 기본적인 미술사 공부를 통해 90%까지 예측이 가능하다고 본다.
수백 년의 시간을 거쳐 정립된 그림의 가치를 지지하는 안전장치인 미학과 미술사라는 학문은 전 세계 모두가 동일하게 공부하고 있다. 미학적으로 가치가 검증된 작가의 그림은 반드시 시대의 주목을 받으며 조명 받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현재 그림시장에서 블루칩 작가로 인정받는 그림은 그 가치가 번복되는 일은 거의 없기에 계속 블루칩으로 시장 거래를 주도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앤디워홀, 피카소, 제푸쿤스, 쿠사마야요이, 김환기, 박수근 같은 작가들이 그 대표적인 예다.
그림 한 점에 수억에서 수백억 원을 지불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가진 억만장자 컬렉터 일지라도 돈 한 푼을 함부로 쓰는 일이 없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주식 시장의 붕괴는 미술 시장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고, 미술시장의 모든 작품이 분산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을 몸소 경험한 이들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자신의 개인적인 판단만으로 컬렉션에 막대한 돈을 쏟아 붓지 않는다.
이들 역시도 컬렉션 선정 기반은 수백 년에 걸쳐 확립된 미학과 ‘미술사’라는 학문에 의존 한다. 물론, 작품을 구입하기 위해 고용한 관련 전문가들이 지닌 미학과, 미술사적 전문 지식을 기반으로 자문을 받는다.
미술시장은 복잡한 규제나 감독기관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림의 가치를 순수하게 작가 혹은 작품이 만들어 온 역사에 기반을 둔다. 이는 수백 년에 걸쳐 정립된 미술사라는 학문이 오늘날과 미래 그림시장의 꾸준한 진일보를 위한 슬기로운 예술소비의 안전장치임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미술시장에서 평가 받은 적정 가치를 이해하기 위해서, 혹은 직접 그 가치를 평가해보기 위해서는 미술사를 공부한다면 미술시장의 가치판단을 소위 ‘싹쓰리’할 수 있지 않을까 여겨본다.
글/홍소민 이서갤러리 대표(aya@artcorebrow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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