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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이순재 논란으로 본 ‘가족 같은’ 매니저 업무의 이면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0.07.02 06:00 수정 2020.07.03 16:18

매니저 A씨 "근로계약서 아예 없었다"…B씨 "쓰지만 서류일뿐 안 지켜져"

ⓒSBS ⓒSBS

배우 이순재와 매니저 사이의 논란이 매니저 업무의 영역에 대한 문제로 확장되는 모양새다. 사실 연예계에서 이 같은 일은 공공연히 벌어졌다. 이번 논란은 ‘가족처럼’이라는 말이 ‘공사구분 없이’로 변질되어 있는 현 연예계 상황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사례로 남았다.


6월 29일 SBS ‘8시뉴스’에서는 유명 원로배우 매니저로 일했다는 김모씨의 인터뷰가 전파를 탔다. 김 씨는 두 달 근무하는 동안 주당 평균 55시간을 추가 수당 없이 일했으며, 쓰레기 분리수거는 물론 생수통 운반 등 가족의 허드렛일까지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4대 보험 가입이 되지 않은 것에 대해 문제제기 후 부당해고를 당했다고도 주장했다.


매니저들은 최근에는 이런 일이 많이 사라졌지만,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이 같은 일은 흔했다고 입을 모은다. 30여년 연예계에 몸담고 있었던 매니저 출신 기획사 대표 A씨는 “요즘 TV에 가끔 연예인을 깨우는 매니저들의 모습이 비춰지곤 하는데, 실제로 두 시간동안 깨우는 일도 많다. 일정이 펑크나기 1분 전까지 매니저는 긴장을 놓을 수 없다. 또 이동 중에 김밥으로 식사를 대체하는 경우가 많은데, 단무지를 먹지 않는다고 하면 일일이 김밥의 단무지까지 빼는 일도 매니저의 몫”이라고 하소연했다.


10여 년간 매니저 일을 하고 있는 B씨도 로드매니저 시절 겪었던 일을 털어놨다. 그는 “공식적인 스케줄 외의 개인 일정에 운전을 부탁하는 경우가 많다. 골프 치러 가는 곳에 픽업을 가고, 술자리를 기다렸다가 대리운전 기사처럼 집에 모셔다 주는 일도 많다. 사실 이 정도 일은 일도 아니”라면서 “로드 매니저 시절 한 배우는 유학 갔던 아이가 한국에 놀러왔을 때 바쁜 일정을 핑계 삼아 아이를 나에게 맡겼다. 그 아이가 롯데월드를 가고 싶다고 하면, 데리고 가고 케어를 해주는 식이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다수 매니저에 따르면 스타의 결혼식에 매니저가 스태프처럼 동원 되는가 하면, 아픈 아이를 매니저에게 맡기는 일도 있었다. 또 스타의 반려견을 대신 돌봐준다거나 동사무소, 은행 등의 볼일도 매니저가 위임장과 인감을 가지고 대신 봐주는 경우도 많았다.


사실상 ‘가족’이 해야 할 일을 회사 소속인 매니저가 대신하고 있던 셈이다. 최근 MBC 예능프로그램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는 매니저와 스타의 일상을 담아내면서 대부분이 ‘가족 같은 사이’라고 두 사람의 관계를 정의한다. 그만큼 자주 만나고, 친근감이 있다는 표현이다. 그러다보니 라미란이 해당 방송에 출연해 같은 질문을 받고 “우린 비즈니스 관계”라고 솔직한 답변을 했던 것이 오히려 이상하게 비춰질 정도였다. 분명 다른 스타, 매니저들과 별다를 바 없이 서로에 대한 배려와 존중은 있지만 이들은 ‘선’을 지키면서 ‘친근감’을 무기삼지 않고 공사를 구분했다.


ⓒMBC ⓒMBC

이순재의 전 매니저는 부당한 노동 강요와 관행적으로 이어진 연예인 매니저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을 지적했다. 심지어 소속사는 “다른 업무로 바빠서”라는 이유로 근로계약서까지 쓰지 않았다. 매니저들은 단순한 실수가 아닌 과거부터 이어져 오던 관행이라고 말했다.


매니저 B씨는 근로계약서와 관련해 “로드매니저로 시작했을 때는 아예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았다. 이후에 회사의 규모가 커지면서 계약서를 쓰게 됐는데 표준계약서 기본 양식에 매니저 직업 특성상 시간외 근무 등의 조항이 따로 적혀 있었다. 자세히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사실상 서류일 뿐 지켜지는 건 없었다”고 지적했다.


A씨 역시 “옛날에는 아예 근로계약서라는 게 없었다. 조그만 회사들은 대부분 지인들을 통해 소개를 받는 식이었다. 그만큼 연예계는 굉장히 폐쇄적인 집단이다 보니 대기업 수준의 큰 회사가 아닌 이상 계약서 작성은 없었다고 보면 된다”고 꼬집었다.


이런 부당한 대우에도 매니저들이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는 이유도 있었다. B씨는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게끔 만들어 놓는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A급 연예인의 경우 로드 매니저에게 개인적인 일을 시키는 경우가 많았는데, 매니저가 이를 거부하면 연예인이 직접 대표에게 전화를 건다. ‘나 얘랑 일 못 하겠다’ ‘이걸 하지 않는 다더라’는 식이다. A급 스타를 잡아야 하는 소속사 입장에서는 매니저를 해고하거나, 개인적인 일을 봐주게끔 강요한다. 힘이 없는 로드매니저는 결국 목소리를 내면 최악의 상황만 맞게 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A씨는 조금 다른 의견을 보였다. 그는 “매니저라고 하면 단순히 한 회사의 직원으로 인식되지만, 대부분의 매니저는 그 이후까지도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이후 직접 음반을 내거나 기획사를 차리려는 꿈을 가진 사람이 대다수”라면서 “부당함을 알면서도 참고 하는 건, 그걸 감내하고 난 이후에 연예인이 잘 됐을 때 내가 케어한 사람이 잘 됐다는 보람 때문”이라고 했다.


또 다른 매니저 C씨는 “기존에 배우 활동을 하면서 개인적인 일을 맡기기로 유명한 연예인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옮긴 소속사에서 매니저의 업무 범위를 공식적일 스케줄로 한정시켜놨기 때문에 더 이상의 요구는 없었다”면서 “최근 들어 많은 회사들이 근로계약서를 쓰고, 정상적인 범위 내에서 일정을 소화하도록 한다. 하지만 일부 작은 회사나 1인 기획사, 혹은 소위 ‘선생님급’으로 불리는 몇몇 연예인들 사이에서는 그때의 관행이 여전히 몸에 남아 있다”고 말했다.


아무리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다고 해도 엄연히 매니저는 회사 소속의 직원이다. 물론 스스로가 원해서 연예인의 개인적인 일에 호의를 베푸는 것을 문제 삼을 순 없지만, 적어도 연예계에 오래 몸담고 있던 스타라면 도의적인 차원에서 공과 사를 구분할 순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내용들은 대중문화계 전반에서 진지하게 논의되어야 한다. 배우 이순재와 그의 전 매니저간의 갈등이 단순히 '하나의 사건'으로만 봐서는 안되는 이유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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