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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유정의 유통talk] ‘쥐 잡으려다 장독 깬’ 유통산업발전법

임유정 기자 (irene@dailian.co.kr)
입력 2020.06.18 07:00 수정 2020.06.17 22:15

온라인 기반 유통플랫폼 급부상…대형마트 잇딴 폐점 등 실효성 ↓

21대 국회 대형마트 향한 다양한 규제 발의…“업계 몰락 부추겨”

서울에 한 대형마트의 모습 ⓒ데일리안 DB 서울에 한 대형마트의 모습 ⓒ데일리안 DB

교왕과직(矯枉過直). 중국 역사서 ‘한서(漢書)’에서 유래한 고사성어다. ‘구부러진 것을 바로 잡으려다 지나치게 곧아져버렸다’는 뜻이다. 작은 결점을 고치려다 도리어 장점마저 없어져 나쁘게 됐을 때 쓰는 말이다. 우리 속담 중에도 ‘쥐 잡으려다 장독 깬다’는 말이 있다.


대표적으로 ‘유통산업발전법’이 이런 경우다. 지난 2012년 정부는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살리겠다는 취지로 대형마트 및 기업형 슈퍼마켓(SSM)등의 영업시간을 제한하고 휴업을 의무화 하는 내용의 조항을 신설했다. 심야영업 금지와 월 2회 의무 휴업을 골자로 한다. 이른바 기울어진 운동장 이론을 적용한 사례인 셈이다.


결과는 뼈아프다. 대형마트 입지를 제한해 골목상권을 살리겠다는 구상에서 마트의 문을 강제로 닫도록 시작한 게 벌써 8년 전이다. 하지만 그 사이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유통 플랫폼들이 가파르게 성장했고, 전통시장은 여전히 ‘살려야 하는’ 상태에 머물러 있다. 급기야 규제대상이었던 대형마트는 적자를 내다 못해 폐점 수순까지 밟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21대 국회가 열리자마자 유통 대기업을 향한 규제 법안은 쏟아지고 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총 3건의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의원입법으로 발의됐다. 전부 대형 유통업을 규제하는 내용이다. 더불어민주당 어기구 의원이 지난 10일 발의한 개정안에는 지역 중소기업과 상생을 의무화하는 방안도 담겼다.


오프라인 유통산업이 몰락하는 상황에서 출점 규제는 오히려 강화됐다. 민주당 이장섭 의원과 어기구 의원의 개정안 모두 올해 효력이 만료되는 전통시장 1㎞ 내 대형마트·기업형슈퍼 출점 제한 존속 기한을 오는 2025년까지 연장하는 방안을 담았다. 당초 정부는 해당 조항의 효력을 3년 연장하는 안을 내놨지만 국회는 이보다 많은 5년 연장안을 택했다.


이 같은 국회의 역주행 행보는 해외 사례만 봐도 답답함이 배가 된다. 해외 유통 시장은 온라인 시장에 맞서 일찌감치 변화의 조짐을 보였다. 오프라인 유통업계가 지닌 한계성이 여지없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유통산업 발전과 소비자 편익 등을 위해 규제를 완화하는 극약처방을 내렸다.


일례로 프랑스의 경우 기존에는 소형 유통업체를 보호한다며 매장 면적 상한을 300㎡로 제한했는데, 이런 규제가 유통산업의 발전을 저해한다는 비판에 따라 지난 2008년 이를 1000㎡로 완화했다. 또 일본 역시 점포 면적이나 개점일, 폐점 시간, 휴업일 수에 대한 엄격한 규제를 적용하다가 소비자 편익을 해친다는 반발로 2000년부터 영업시간과 휴일을 규제하지 않고 있다.


규제는 약자를 보호할 때 실효성을 갖는다. 대형마트는 이미 전통시장과 마찬가지로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약자의 상태로 돌아선지 오래다.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훨씬 많은 규제는 과감히 허물고 변화하는 환경에 발맞춰 미래를 내다보는 정책으로 재정립해야 한다.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운동장을 마련해줘야 고용, 부가가치 창출 등 기업 경제가 살아 움직일 수 있다.


더욱이 한발 앞선 변화와 혁신이 그 어느때 보다 절실한 지금, 국내 기업들은 높은 규제장벽과 반기업 정서로 오히려 뒷걸음질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경청’을 지도자의 대표적인 정치자산으로 삼는 정부에서 ‘불통’의 논란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까닭을 이제는 진지하게 돌아봐야 한다. 기업의 미래가 곧 한국의 미래다.

임유정 기자 (iren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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