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정의 핀셋] 코로나 백신, 장기적인 계획과 전폭적 투자 필요
입력 2020.06.17 07:00
수정 2020.06.16 22:59
미국·중국·유럽연합 연내 백신 개발 가능성↑
정부 투자금액 세계 주요국 대비 턱없이 부족
2015년 개봉한 영화 '베테랑' 중에는 형사 서도철이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고 하는 대사가 있다. '가오'는 일본말로 얼굴이라는 뜻인데, 체면이나 자존심을 뜻하기도 한다.
우리나라가 코로나19 백신 개발 과정에서는 돈이 없어 자존심을 구길 판이다. 세계 각국이 백신 개발에 뛰어들어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는 상황에서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 정부의 지원이나 투자가 부족해서다.
미국국립보건원(NIH)에 등록된 코로나19 글로벌 임상시험 현황 정보를 보면, 치료제와 백신 개발을 위해 진행 중인 임상시험은 전 세계 761건에 달한다. 그러나 이 가운데 백신 관련 임상은 27건으로, 치료제 임상 734건와 비교해 적은 수준이다.
그만큼 백신 개발이 치료제 개발보다 상대적으로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기업이 무턱대고 코로나 백신을 개발하겠다고 나서기가 어려운 게 보통 백신은 전염병이 종식될 때쯤 개발돼 상업 가치가 하락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내에선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와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태 당시 백신 후보 물질을 개발한 회사들이 임상시험에 돌입할 때쯤 새로운 환자들이 발생하지 않아 개발이 중단돼 투자 비용조차 회수하지 못했다. 바로 이런 불안 요소 때문에 정부의 전폭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헌데 우리 정부가 백신 개발에 투입하는 투자 규모는 치료제와 백신 임상시험을 통틀어 1115억원에 불과하다. 여기에는 후보물질 발굴과 효능평가, 독성평가 등이 포함된 전임상(175억원)부터 임상 1상(170억원), 임상 2상(400억원), 임상 3상(350억원) 그리고 연구·개발(R&D) 전 주기에 대한 지원 금액이 포함돼 있다. 해외 각국이 투입하는 투자금에 비해 턱 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미국 정부는 백신 개발에 2조2000억원을 투입했고, 앞으로 1년간 6조원 이상 추가 지출할 계획이다. 영국에 본사를 둔 아스트라제네카(AstraZeneca)는 미국 정부 기관 생물의약품첨단연구개발국(BARDA)으로부터 1조원, 게이츠 재단에서 7500억원을 지원받기도 했다.
이 회사는 올해 9월~10월까지 20억명이 투여할 수 있는 백신을 생산할 계획이고, 성공할 경우 영국과 미국에 먼저 공급할 계획이라고 알려졌다.
미국이 코로나19 백신 개발 국제 공조 대신 자국에 독점적으로 백신을 우선 공급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도 개발을 서둘러야 한다. 국민들의 건강과 안위를 위해서라도 백신 개발에 대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지금은 K방역 자긍심에 취해 있을 때가 아니라 K백신 개발에 더욱 더 투자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