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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소소한 영화관] 코로나19 시대에 전하는 위로 '아홉스님'

부수정 기자 (sjboo71@dailian.co.kr)
입력 2020.06.12 14:34 수정 2020.06.12 14:35

천막 동안거 과정 담담하게 그려

극한 상황 속 90일간 수행


<수백억대 투자금이 투입된 영화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곧 영화의 재미와 의미를 담보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선한 스토리와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작지만 알찬 영화들이 있습니다. 많은 스크린에서 관객들과 만나지는 못하지만, 꼭 챙겨봐야 할 영화들을 소개합니다.>

'아홉스님' ⓒ(주)퍼스트런 '아홉스님' ⓒ(주)퍼스트런

'불교 사상 가장 극한의 천막 동안거'


다큐멘터리 '아홉스님'은 한국 불교 역사상 최초 천막 동안거를 통해 정진하게 된 아홉 스님들의 극한 수행기를 담담하게 다룬다.


불교에서 '안거(安居)'란 출가한 승려들이 한곳에 모여 외출을 금한 채 정진하는 수행법을 말한다. 지난 2019년 11월 15일, 겨울 석 달 동안 행하는 '동안거(冬安居)'에 천막 노숙이라는 극단적인 상황과 일곱 가지 수칙이 더해진 도전이 시작됐다.


일곱 가지 수칙은 다음과 같다. 하루 14시간 이상 정진한다. 공양은 하루 한 끼만 먹는다. 옷은 한 벌만 허용한다. 양치만 허용하고, 삭발과 목욕은 금한다. 외부인과 접촉을 금하고, 천막을 벗어나지 않는다. 묵언한다. 규약을 어길 시 조계종 승적에서 제외한다는 각서와 제적원을 제출한다.


영화는 살을 에는 추위를 견디고 엄격한 일곱 가지 규율들을 90일간 지켜낸 아홉 스님들의 수행기를 24시간 밀착 취재했다. 천막 동안거에서 특별한 점은 아홉 스님들이 90일간의 수행 장소로 하남 위례신도시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산중이 아닌 도시를 수행 장소로 선택한 이례적인 천막 동안거는 전통과 현대의 다양성을 아우르며 새로운 수행 문화를 제시했다.


아홉 스님들의 90일은 단순한 천막 생활이 아닌, 평화와 화합이라는 가치를 이루기 위해 모든 욕구를 닫은 수행의 시간으로 채워진다. 스님들이 지켜야만 하는 일곱 가지 규칙들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야만 하는 극한 상황이다. 하루 한 끼만 먹어야만 하는 상황 속에서 스님들의 체중은 점점 빠지고, 급기야 쓰러지는 스님까지 생긴다. 스님들이 천막 동안거에 대해 "알고서는 못했을 것"이라고 고백할 정도로 고통스러워 보인다.


'아홉스님' ⓒ(주)퍼스트런 '아홉스님' ⓒ(주)퍼스트런

소재가 소재인지라 마냥 무거울 것만 같았던 영화는 스님들의 인터뷰를 통해 소소한 웃음을 준다. 허기 때문에 하루 한 개만 마실 수 있는 커피 믹스를 몰래 두 개 타 먹었다는 얘기를 비롯해 바람이 없고 햇빛이 없다 보니 침낭이 얼었다는 에피소드, 텐트 안에서 자고 나오는데 마치 차가운 얼음물에 들어갔다 나오는 느낌이었다는 스님들의 진솔한 속내는 관객에게 친근함을 안겨 준다.


견디기 힘든 시련 속에서도 스님들은 서로를 의지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낸다. 관객 입장에서는 '왜 이런 고행을 할까'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수행을 계속하는 스님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종교 수행의 의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아홉스님'은 특히 모두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시대에 큰 울림을 준다. 사소한 욕구조차 허용되지 않는 공간에서 모든 걸 내려놓은 겸허한 태도, 무언가를 욕망하기보다 비우는 삶을 위해 나아가는 스님들의 모습은 예전에 누렸던 일상의 행복이 사라진 코로나19 시대에 응원의 메시지를 건넨다. 쓰러질 듯 힘들더라도 당신은 이겨낼 수 있고, 할 수 있다고. 혼자가 아닌 함께 손잡으며 나아가자고 말이다.


불교 신자가 아닌 윤성준 감독의 영화 데뷔작이다. 윤 감독은 "자신을 통제하며 혹독한 수행을 진행하는 스님들처럼 인생이 쉽고 편한 사람은 없다"며 "한계에 도전하는 스님들의 수행 여정을 통해 관객들도 용기를 얻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영화는 지난달 개봉해 누적 관객 2만명을 돌파했다.

부수정 기자 (sjboo7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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