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계열사 펀드 몰아주기 역대 최대…마지노선 준수 비상
입력 2020.06.10 05:00
수정 2020.06.09 22:05
올 1분기 계열사 펀드 판매 비중 최고치…리딩·키움증권 등 50% 넘어
저금리 기조에 유동자금 펀드 이탈, 당국 '35% 제한' 규정 강제력 약해
증권사가 판매한 계열사 펀드 비중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저금리 시대에 주식시장에 유동자금이 쏠리면서 펀드에 유입되는 자금이 조정세를 보이자 증권사가 펀드 판매 창구 역할에 열을 올렸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이 설정한 계열사 펀드 판매 비중을 넘는 증권사가 등장하면서 연말까지 이 마지노선을 지킬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의 시각을 제기하고 있다.
10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국내 28개 증권사의 계열사 펀드 판매 비중은 17%(1조8583억원)를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의 11%(1조2638억원)를 넘는 것은 물론 역대 최대치이기도 하다.
계열사 펀드 판매 비중이 높아진 건 일부 증권사가 높은 비율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리딩투자증권은 계열사 리딩자산운용의 펀드를 70억원 판매했다. 시장점유율 자체가 크지 않아 판매 금액도 적은 편이지만 펀드 신규판매금액인 99억원의 70.7%에 해당하는 규모다. 키움증권은 계열사인 1249억612만원 규모의 키움투자자산운용의 펀드를 판매했다. 전체 신규펀드판매 금액인 2038억5387만원의 61.29%에 해당한다. 키움증권은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연말까지 규제 상한선에 맞게 조절 하겠다는 입장이다.
미래에셋대우도 계열사인 멀티에셋자산운용, 미래에셋자산운용의 펀드 5888억2755만원 어치를 판매했다. 총 판매액인 1조3854억1871만원의 42.5%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미래에셋의 경우에는 지난 1~3월 간 주식시장에서 지수가 하락하자 연금자산펀드(TDF)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자연스럽게 계열사 펀드 판매 비중도 증가했다.
대신자산운용 역시 2814억9106만원 가운데 38.82%에 해당하는 1092억7715만원 어치의 펀드를 계열사인 대신증권을 통해 판매했다. IBK투자증권도 IBK자산운용의 펀드를 1127억825만원어치를 팔았다. 전체 3694억9557만원의 30.5%다. 타 증권사의 비중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이들 증권사들의 계열사 펀드 판매 비중이 금융당국의 규제치를 넘어선다는 점이다. 금융위원회는 2018년 6월 금융투자업 규정을 개정했다. 이와 동시에 증권사의 계열사 펀드 판매 비중 공시도 의무화됐다. 개정안은 펀드 판매사가 연간 신규 펀드 판매액 가운데 계열 운용사 펀드를 45%만큼만 팔 수 있도록 제한했다. 이후에는 연간 5%포인트씩 낮춰 2022년 25%까지 하향시킨다는 계획이다.
이에 각 펀드 판매사가 판매할 수 있는 계열사 펀드 비중은 지난해에는 40%, 올해에는 35%로 낮아졌다. 이 제도는 금융계열사 간 펀드 밀어주기에 제동을 걸어, 일감 몰아주기 관행을 없애고 투자자에게 합리적인 상품 선택의 기회를 넓혀주기 위해 고안됐다. 실제로 펀드 판매사는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차원에서 투자자에게 적합한 펀드보다는 판매수수료가 높거나 같은 계열사 상품 등 자사에 유리한 펀드를 권유할 가능성이 높다. 이 비중을 넘기는 증권사는 불건전행위로 판단돼 금융감독원으로부터 5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게 된다.
금융당국은 점차적으로 규제가 낮아지는 2022년까지는 단순히 시정조치만 하면서 시장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규제상한선이 있어도 증권사들의 계열사 펀드 판매 비중이 과도하게 나오는 것이다. 당국은 수익률이 좋더라도 같은 계열사 펀드라는 이유만으로 판매할 수 없는 건 외려 투자자를 고려하지 않은 조치라는 업계의 반응을 고려해 순차적으로 처벌 수위를 높이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당국의 솜방망이 처벌이 증권사들의 계열사 펀드 판매 비중을 준수하지 않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파생결합펀드(DLF), 라임자산운용 등 사고가 잦았던 사모펀드 판매가 올 2월 기준 22조7004억원으로 전월 대비 2.1%(4919억원) 감소하는 등 소강상태를 보이자, 분모가 줄고 분자가 늘어나는 상황이 도래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조사 대상 28개 증권사의 신규펀드 판매액은 올 1분기 21조4821억원으로 지난해 2분기의 27조4109억원, 3분기 26조4148억원보다 줄었다. 이에 계열사 판매고를 늘리는 몰아주기를 통해 수수료 등 수익을 챙기고자 하는 분위기가 만연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판매 비중을 연말까지 관리해야 한다는 안도감과 일부 기저효과로 인한 일시적인 상승세로 치부하기엔 특정 증권사의 비중은 꽤 높은 수준까지 올라왔다"며 "특히 최근 사모펀드가 어려움을 겪으면서 수요가 흔들리고 있는데다 라임 사태에서도 알 수 있듯 한 바구니에 담은 달걀이 깨지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으니 분산 판매를 통해 리스크를 완화시키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