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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플렉스 소비’ 부르는 재난지원금

이소희 기자 (aswith@dailian.co.kr)
입력 2020.05.26 07:00
수정 2020.05.26 16:16

누군가에는 긴박한 생활자금, 누구에게는 펑펑 써버리는 공돈…소비도 양극화

관가, 원하는 기부 아닌 해야 되는 기부로 불문율…“가족엔 미안” 상대적 허탈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으로 인한 소비위력이 커지고 있다.


일시적이기는 하지만 평소보다 시간을 넘겨 영업을 연장하거나 주말이면 밀려드는 고객들을 맞는 식당이 늘었으며, 이 기회에 그간 눈여겨봐왔던 물품을 장만하기도 하는 모양새다.


덕분에 질 좋은 소고기와 돼지고기 소비가 급증하면서 수급이 딸린 축산물 가격까지 20~30%가 들썩이게도 했으며, 일부 명품관에서의 소비로 긴급재난지원금이라는 취지를 무색케 하기도 했다.


서울 성동구 마장축산물시장에서 정부긴급재난지원금으로 한우를 구입하고 있다. ⓒ뉴시스

하지만 젊은 층을 중심으로 달라진 소비행태는 ‘플렉스(flex) 소비’로 대변되면서 재난지원금 소비로 이어지고 있다. 플렉스 소비는 돈이나 귀중품을 과시하는 태도로 통용되고 있는 최근 소비 트렌드다.


코로나19로 인해 그간의 억눌린 소비가 보복소비로 작용하고, 이 때 ‘큰 맘 먹고 써버리는’ 플렉스 소비로 자기만족과 자존감을 높이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소비 트렌드라고는 하지만 어느 누구에게는 긴급한 생활자금으로 어느 누구에게는 펑펑 쓸 수 있는 공돈으로 여겨지면서 소비의 양극화도 느끼게 한다.


어차피 3개월 안에 써야하는 지원금의 한시적 소비구조가 이를 더욱 부채질하기도 했다.


또 재난지원금의 용처는 요즘 자주 등장하는 이야깃거리기도 하다. “재난지원금은 얼나마, 어디에 쓰셨어요”라는 질문이 종종 오르내린다.


실제 한 남성과 여성의 대화에서도 시류가 엿보인다. “재난지원금은 쓰셨어요?” “화장품을 사긴 했는데, (거주)지역이 달라 아직 더 쓰진 못하고 있어요”라고 하자 “그러면 오프라인 매장에 가서 상품을 고르시고 가족들한테 사서 보내달라고 하세요”라고 방법론까지 알려줬다.


이어 여성은 “좀 더 좋은 곳, 의미 있는 곳에 써야 하는데...”라며 말끝을 흐리자, 남성은 “자기 자신한테 쓰는 게 의미 있게 쓰는 거예요”라며 소비를 독려하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관가에서는 과장급 이상 ‘재난지원금은 몽땅 기부’라는 불문율이 작동한다. 강제는 아니지만 그런 기류가 잡혔고 개인 의사보다는 기부해야 하는 것으로 돼버려 그들끼리는 재난지원금의 용처는 서로 묻지 않는, 일종의 금기어가 됐다.


그럼에도 물어보니 “전 그냥 기부했어요, 우리끼리는 아무도 묻지는 않아요, 다만 가족들한테는 미안하기는 하죠.”라는 답이 돌아왔다.


긴급재난지원금의 본래 취지가 ‘소비 진작’이라고 볼 때 이들의 기부는 참 아이러니하게도 줬지만 자발적으로 뺏긴(?) 탓에 쓰고 싶어도 쓸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 셈이 됐다.


이런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은 25일 ‘2020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현재 상황을 “경제 전시상황”으로 규정하고, 재정건전성 관리보다는 과감한 확대재정 카드를 쓰겠다는 정책 의지를 분명히했다.


지금까지 정부가 코로나19 사태 극복을 위해 총 250조원을 투입했고, 이는 국내총생산(GDP)의 13%에 달하는 규모다. 최근 주요국의 평균(약 10%)을 웃도는 수치로 재정건전성 우려가 계속 나오지만 정부는 확장재정의 가속페달을 더 밟을 계획이다.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긴급재난지원금 현장 신청 첫 날 주민센터에서 한 주민이 선불카드를 들고 있다. ⓒ뉴시스

‘전시상황’인 만큼 충분한 총알을 만들고 쓰겠다는 논리다.


국가가 포스트 코로나시대의 선제 대응을 위해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하면서 재정지원금이라는 폼 나는 ‘플렉스를 해버렸으며’ 국민들은 소비의 맛에 푹 빠져 있다.


문제는 이 ‘폼 나는 소비’가 빚내서 쓰는 만큼 국가채무는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 말대로 초유의 위기상황에서 모처럼 지급된 재난지원금이 ‘슬기로운 소비생활’로 귀결되기를 바란다.

이소희 기자 (aswith@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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