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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킹, 남주 미화가 독이 됐다

하재근 문화평론가 ()
입력 2020.05.25 08:20 수정 2020.05.25 07:10

ⓒSBS 홈페이지 ⓒSBS 홈페이지

‘더 킹-영원의 군주’는 작정하고 남주인공을 멋있게 그리는 데 올인한다. 한데 그 방식이 너무 구태의연하고, 강도도 지나치게 강해서 역효과가 나고 있다.


방식이 구태의연하다는 것은 전통적인 ‘백마 탄 왕자님’ 코드를 그대로 답습한다는 점이다. 강도가 지나치게 강하다는 것은 그리는 방식이 너무 노골적이고, 심지어 이야기의 자연스러운 진행을 방해할 정도로까지 튄다는 점이다.


지난 주말의 백마 진군 장면이 대표적이다. 부산행 도로 어딘가에서 여주인공이 위협당하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황제 남주인공이 백마 타고 나타나 구해줬다. 긴급하게 이동하려면 자동차나 헬기가 훨씬 효율적일 텐데 남주인공은 말을 탔다. 그러더니 총도 안 쓰고 악당들과 육탄전을 전개했다.


너무나 노골적이어서 실소가 터진 장면이다. 이야기의 개연성을 다 무시하고 오직 남주인공 멋있게 그리는 데에 집중했지만, 그 정도가 너무 지나쳐 웃음거리만 됐다. 극의 완성도도 심각하게 떨어뜨렸다.


초반부터 남주인공 설정의 문제가 제기됐었다. 로맨스 드라마 남주인공을 전통적으로 백마 탄 왕자님이라고 한다. 부자이거나 능력자가 여주인공을 구해주는 설정이 많았기 때문이다. 백마 탄 왕자님은 그런 관습을 은유적으로 일컫는 것이었는데, ‘더 킹’은 남주인공을 진짜로 백마 위에 태웠다. 직업은 황제, 재산은 600경 수준이다.


여주인공이 대한제국 서울에서 차비가 없어 발을 동동 구르자 헬기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구해주기도 했다. 백마 타고 달려오거나 하늘에서 내려오는 왕으로 그린 것이다. 로맨스 드라마 사상 가장 노골적으로 그린 왕자님 코드라고 할 수 있다.


중반에 뜬금없이 나온 일본군과의 대치 장면도 남주인공을 돋보이게 만든 설정이었다. 입헌군주국의 황제가 최전선 함정에 탑승해 전투를 지휘한다는 설정이 황당했다. 입헌군주국이 아니라 통치권을 직접 행사하는 황제라 해도 최전선 지휘는 말이 안 된다. 그저 이민호가 멋지게 군복을 차려입고 결연하게 대적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개연성을 무시한 것이다.


지난 주말엔 이민호가 군복 입고 여주인공의 밥을 만들어주는 장면까지 나왔다. 이 장면 하나만 보면 큰 문제가 아니지만, 그 전까지 남주인공을 멋있게 그리는 데만 집중하던 끝에 나온 장면이기 때문에 여기서도 실소가 나왔다. 이야기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드라마가 아니라, 멋있는 장면만 나열되는 뮤직비디오 같은 느낌이다.


역적 소굴로 추정된 서점을 급습하는 장면도 그렇다. 웅장한 배경음악으로 남주인공의 비장하고, 늠름하고, 결연한 모습을 그렸다. 하지만 이 역시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 너무 과장되고 노골적인 표현 때문에 역효과가 난 것이다.


작품의 개연성을 무시하고 남주인공에게 다 몰아주는 셈인데 결국 독이 되고 있다. 작품이 먼저 살아야 주인공 캐릭터도 사는 법이다. 게다가 이민호의 연기는 작품이 그에게 싣는 무게를 온전히 받아내지 못하는 형편이어서 ‘더 킹’의 남주 미화가 더 난국에 빠졌다.


시대착오적이란 점도 문제다. 백마 탄 왕자님 코드는 과거의 관습이고 요즘은 여성의 주체성을 중시하는 추세다. 김은숙 작가가 이런 변화에 정면으로 맞서 ‘백마 탄 황제’를 내세웠는데, 그 남주에게 환호해야 할 여성 시청자들의 반응마저 미지근하다. 오히려 불편하다는 반응이 많다. 김 작가가 시대의 변화를 너무 몰랐다.


구시대적인 방식으로 남주 미화에 공 들일 에너지로 극의 밀도를 더 높였어야 했다. 남주인공 혼자 마네킹처럼 미화될 뿐 여주인공과의 화학작용이 일어나지 않는다. 극은 때로 튄다는 느낌이 있을 정도로 매끄럽지 못하다. 백마 탄 남주인공에게 올인한 ‘더 킹’이 그로 인해 침몰하고 있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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