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말라리아약·강아지 구충제 효과? 유명인이나 소문 경계해야
입력 2020.05.21 07:00
수정 2020.05.21 05:16
트럼프 "매일 하이드록시클로로퀸 복용 중, 나는 괜찮다" 주장
안전성·유효성 확인되지 않아 '위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을 위해 말라리아 치료제인 히드록시클로로퀸을 매일 한 알씩 복용한다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은 트럼프가 코로나 치료를 위한 '신의 선물' '게임 체인저' 등의 표현을 써가며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한 바로 그 약물이다.
트럼프가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을 극찬한 뒤 지난 3월에만 미국에서 이 약 처방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약 80% 급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도 이 약을 어디서 구할 수 있느냐는 문의와 해외 직접구매 관련 질문이 온라인 상에서 심심치 않게 보인다.
이번 말라리아약 논란을 보고 묘하게 기시감을 느꼈다. 작년 의료계는 '강아지 구충체(펜벤다졸)' 논란으로 홍역을 앓았다. 강아지 구충제가 암 치료에 효과가 있었다는 한 미국인의 고백이 유튜브를 타고 우리나라에 전해지면서 펜벤다졸 복용 열풍이 분 것이다. 전국의 동물병원에서 강아지 구충제가 품절됐고, 해외 직구도 폭증했다.
시간이 갈수록 강아지 구충제는 수많은 암환자에게 마지막 희망이자 기적같은 약으로 여겨졌다. 말기암 진단을 받은 한 연예인이 강아지 구충제 복용을 통해 증세가 호전됐다고 밝혔고, 유튜브를 통해 펜벤다졸 복용 과정과 후기를 모두 공개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정부와 의료인들이 복용 자제를 권고하고 나섰지만, 이는 또 다른 루머를 생산했다. 거대 제약사가 비싼 항암제를 팔기 위해 저렴하고 효과 좋은 강아지 구충제를 먹지 못하게 하려는 음모라는 내용이다.
그러나 정부와 의료진, 제약사들이 동물용 구충제를 먹지 말라고 만류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항암제는 일부 환자에게 탁월한 효과를 나타내더라도 최종 임상시험 결과에서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하는 게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설사 한두 명이 효과를 봤다고 해서 약효가 입증됐다고 볼 수는 없다. 항암 효과를 기대하고 펜벤다졸을 고용량·장기간 투여할 경우 혈액, 신경, 간 등에 심각한 손상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트럼프의 못 말리는 말라리아약 사랑도, 암 환자들의 강아지 구충제 복용도 가능하면 말리고 싶다. 생명과 직결된 의약품을 선택할 때는 '돌 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것' 이상의 신중함이 필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