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금 지급 깐깐해진 손보사에 소비자 '부글부글'
입력 2020.05.21 06:00
수정 2020.05.21 05:12
부지급 건수 1년 새 24.5% 급증…역대 최다 기록 갱신
실적 악화 보릿고개에 심사 강화 조짐…고객 불만 확산
국내 손해보험사들이 최근 고객의 보험금 청구를 거부한 사례가 역대 최다 수준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기대했던 돈을 받기 힘들어지자 불만을 느끼고 계약을 깨버리는 가입자들도 빠르게 불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역대급 실적 악화에 직면하며 보릿고개를 넘기고 있는 손보사들에게 시나브로 확산되고 있는 보험금을 둘러싼 갈등이 새로운 악재로 떠오르는 모습이다.
21일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국내 15개 일반 손보사들이 가입자의 보험금 청구에 대해 지급을 거부한 부지급 건수는 총 4만9369건으로 전년 동기(3만9640건) 대비 24.5%(9729건)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같은 손보업계의 보험금 부지급 규모는 반기 기준으로 통계가 공개되기 시작한 이래 가장 많은 숫자다.
손보사별로 보면 현대해상의 보험금 부지급이 같은 기간 1만1533건에서 1만2163건으로 5.5%(630건) 늘며 유일하게 1만건 이상을 기록했다. 그 다음으로 메리츠화재의 관련 건수가 5330건에서 9414건으로 76.6%(4084건)나 증가하며 뒤를 쫓았다.
이어 삼성화재 역시 7189건에서 8525건으로, DB손해보험도 5239건에서 7179건으로 각각 18.6%(1336건)와 37.0%(1940건)씩 늘며 보험금 부지급이 많은 편이었다. 이밖에 보험금 부지급 건수 상위 10개 손보사에는 한화손해보험(3989건)·KB손해보험(3610건)·에이스손해보험(1461건)·AIG손해보험(761건)·흥국화재(652건) 등 순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처럼 보험금 지급 거절이 늘고 있는 요인으로는 예전과 사뭇 달라진 손보사들의 자세가 꼽힌다. 손보사들이 고객의 보험금 요청을 이전보다 깐깐히 들여다보고 있다는 얘기다. 손보사들이 사유 조사를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일정보다 미룬 사례가 같은 기간 6만1033건에서 7만6579건 25.5%(1만5546건) 급증한 것은 이런 흐름을 엿볼 수 있는 지점이다. 즉, 가입자의 요구대로 돈을 줘야 하는 상황이 맞는지 손보사들이 직접 살피는 일이 잦아졌다는 뜻이다.
손보사들이 이 같이 보험금 산정에 과거보다 예민한 태도를 보이는 배경에 더욱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최근 손보업계가 극도의 실적 부진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결국 경영 여건이 어려워지자 보험금 지출을 졸라매고 나선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손보업계는 사실상 포화 상태 다다른 국내 시장을 둘러싸고 영업 확대에 한계를 느끼던 와중, 국민보험으로 불리는 자동차보험과 실손의료보험에서 불어나는 대규모 손실에 허덕이고 있다. 여기에 저금리 기조 심화로 인한 투자 수익률 악화는 이중고를 안기고 있다. 이에 지난해 손보업계 전체의 당기순이익은 2조2227억원으로 전년(3조2538억원)보다 31.7%(1조311억원)나 줄었다.
문제는 이런 기조 속 손보업계가 보험금 지급에 현미경을 들이 밀고 나서면서 소비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성적 부진에 시달리고 있는 손보사들로서는 자칫 영업 전반에 대한 역풍을 우려해야 하는 대목이다.
실제로 손보사에 보험금을 청구한 이후 가입자가 불만을 느끼거나 민원을 제기해 계약 자체가 파기된 건수는 지난해 하반기 3956건으로 전년 동기(2657건) 대비 48.9%(1299건) 증가했다. 이에 따라 고객이 요구한 보험금 청구 건수에서 이 같은 청구 후 해지 건수가 차지하는 비중인 손보업계의 보험금 불만족도는 0.15%에서 0.18%로 악화됐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무분별한 보험금 지급으로 다른 선량한 가입자들이 입을 수 있는 손실을 미연에 방지한다는 측면으로 보면, 관련 심사를 강화하는 것이 소비자들에게 꼭 나쁜 일만은 아니다"라면서도 "다만 보험금 부지급 후 계약 파기가 급증한 것은 고객 불만의 직접적인 시그널일 수 있는 만큼, 보험사의 철저한 모니터링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