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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선관위 '오락가락 행정', 부정선거 의혹 키웠다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입력 2020.05.12 07:00 수정 2020.05.12 05:58

'낙천 예비후보 기탁금 반환' 헌재결정 있는데도

중앙선관위도 "못 돌려준다" 회신…뒤늦게 번복

"평소 신뢰 쌓았으면 조작설 메아리 못 얻을 것"

민경욱 미래통합당 의원이 11일 오후 의원회관에서 열린 ''4·15 총선 개표조작 의혹 진상규명과 국민주권회복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자료사진).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민경욱 미래통합당 의원이 11일 오후 의원회관에서 열린 ''4·15 총선 개표조작 의혹 진상규명과 국민주권회복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자료사진).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19대 국회의원으로 새누리당 원내부대표를 지낸 김제식 변호사는 올해 4·15 총선에서 인천 남동갑 출마를 준비했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다.


김 변호사는 인천 남동갑에 미래통합당 예비후보로 등록하면서 300만원의 사전 기탁금을 냈다. 추후 정당의 공천을 받아 정식 후보가 되면 1200만원을 추가로 기탁해, 공직선거법 제56조 1항 2호에 규정된 국회의원 후보 기탁금 1500만원을 채우는 방식이다.


그런데 '김형오 공관위'에서 인천 남동갑에 유정복 전 인천광역시장을 전략공천했다. 김제식 변호사는 당내 경선조차 치르지 못했다. 이에 예비후보에서 사퇴하면서 인천 남동구 선관위에 300만원의 기탁금 반환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8년 1월 "예비후보가 당내 경선에 패하는 등의 사유로 후보로 등록할 수 없는 경우에는 기탁금을 반환해야 한다"고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반환 거절은 헌재 결정의 취지에 맞지 않는 위헌적 행정행위다. 황당했던 김제식 변호사는 중앙선관위에 재질의했다. 중앙선관위도 "반환할 수 없다"고 회신해왔다.


김제식 변호사가 중앙선관위의 회신에 분개해 소송을 준비하던 차에, 지난 8일 돌연 인천 남동구 선관위에서 "기탁금을 반환하겠다"며 "반환받고자 하는 계좌번호를 회신해달라"고 연락을 해왔다. 김 변호사는 "반갑기도 하고 한편 놀랍기도 해서 전화를 걸었다"며 "(인천 남동구 선관위에서) 후보자로 추천(공천)하지 않은 명단을 정당에서 보내와서 이를 근거로 (기탁금 반환을) 보내는 것이라는 답을 들었다"고 전했다.


선관위는 그 자신이 예비후보와 본 후보의 등록을 받는 헌법기관이다. 선거가 끝나고 한 달 가까이 돼서 정당이 낙천자 명단을 보내와야 비로소 기탁금 반환에 나선다는 것은 지나치게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자세일 뿐만 아니라, 애초에 "돌려줄 수 없다"고 회신까지 했던 것은 국민의 신뢰 상실을 자초하는 행위다.


김 변호사는 11일 데일리안과 통화에서 "헌법재판소에서 이미 '돌려주라'고 결정했으니 당연히 돌려줬어야 하는 것인데, 돌려주지 않겠다고 했다가 정당에서 '이 사람들 공천 못 받았다'고 알려와야 비로소 내준다니 중앙선관위가 당의 눈치를 보는 사람들이냐"라며 "이러니 이번에 무슨 사전투표 의혹에 휘말리면서 신뢰를 잃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아울러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대법관이 겸하고 있으며, 각급 선관위도 법률전문가인 부장판사가 위원장을 맡고 있는데도 이런 일이 벌어졌다"며 "평소에 국민의 신뢰를 높이 쌓았더라면 21대 국회의원 선거의 사전투표 조작 가능성에 대한 의문도 큰 메아리를 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쓴소리를 했다.


중앙선관위 인적 구성도 국민 불신·의혹 부추겨
여당, 더 이상 '발목잡기' 말고 김대년 임명해야
선관위, 투표용지 등 의혹에 적극 해명 나서야


김제식 변호사의 고언(苦言)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천 연수을에서 낙선한 민경욱 통합당 의원은 이날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사전투표 부정선거 의혹 관련, 이른바 '빼박 증거'를 공개했다. 민 의원은 이날 현장에서 관리자의 날인도 돼 있지 않고 기표도 돼 있지 않은 사전투표용지 십수 장을 꺼내들었다.


이러한 투표용지는 원칙적으로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되는 물건이다. 사전투표용지는 사전투표소 현장에서 인쇄하므로 '여분'이 존재할 수 없다. 게다가 투표용지는 부정선거를 방지하기 위해 기표 실수 등 어떠한 이유로도 재발급을 하지 않는다.


이날 현장에서 한 유튜버가 "(부정선거 의혹을) 일부는 국민들의 제보로 파악했고, 일부는 기도로 계시받았다"고 주장한 것은 의혹의 신빙성을 극도로 떨어뜨린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도 페이스북에 "태산명동에 서일필"이라며 "선관위에 투표용지 관리 잘하라고 하고 끝낼 일"이라고 일축했다.


다만 부정선거는 아니더라도 이날 공개된 투표용지가 진품(眞品)이라는 전제가 맞다면 선관위의 투표용지 관리에 잘못이 있었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이날 의원회관에는 인파가 대거 몰려 한바탕 소란이 빚어졌다.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이토록 부정선거 의혹을 확신하게끔 하는 것일까. 헌법재판소도 "돌려주라"고 결정했던 예비후보 기탁금을 거듭 "돌려주지 못하겠다"고 했다가 갑자기 "돌려주겠다"는 모습, 나와서는 안될 장소에서 갖고 있어서는 안될 사람의 손에 들려진 투표용지 등이 선관위에 대한 불신을 차곡차곡 쌓이게끔 하고 있다.


그 근원에는 중앙선관위의 인적 구성에 대한 불신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캠프의 특보로 활동했다는 의혹이 있는 조해주 중앙선거관리위원은 문 대통령의 추천으로 상임위원으로 잘만 활동하고 있는 반면, 야당인 미래통합당이 국회 몫으로 추천한 김대년 후보자는 집권여당 더불어민주당의 결사 반대로 끝끝내 총선 때까지 중앙선관위원으로 임명되지 못했다.


선거 관리의 공정성과 중립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집권여당과 중앙선관위의 맹성(猛省)이 절실하다.


집권여당은 더 이상 '발목잡기'를 하지 말고 국회 몫으로 야당이 추천한 중앙선관위원 후보자의 임명 문제를 신속히 처리해야 한다. 중앙선관위는 예비후보자의 기탁금 반환과 관련한 입장 번복 등에 대해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고, 민 의원이 이날 공개한 투표용지가 어떠한 경위로 그 자리에 있게 된 것인지를 포함해 현재 제기되는 각종 의혹들을 한 점 의문이 없도록 적극적인 해명에 나서야 할 것이다.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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