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기획┃시청자투표 딜레마②] “돈 벌어주는 효자”…공정성 보다 수익창출 우선
입력 2020.04.07 10:46
수정 2020.04.07 10:48
시청자 투표 제도, 명분 만들기 위한 수단에 불과
방송사, 무관심 보다 논란 반겨
투표 및 심사의 공정성과 관련된 잡음들이 꾸준히 발생함에도 방송사는 여전히 오디션의 미래를 밝게 내다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작은 규모의 기획사에게는 방송사에서 진행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동아줄 역할을 한다. 수많은 신인이 나오고 소리 없이 사라지는 현 가요계에서 ‘프로듀스 101’ 시리즈와 같은 프로그램에 참여함으로써 쉽게 팬덤을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방송사는 중소형 기획사의 연습생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만들고, 투표 시스템을 도입해 팬덤을 형성한다. 또 팬덤이 고정적인 시청률과 인지도를 책임지면서 크고 작은 스폰서들이 프로그램에 결합한다. 그 결과는 엄청난 수익으로 연결된다. 이 구조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방송사들은 시청자 참여를 기반으로 한 프로그램을 꾸준히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딜레마에 빠진 시청자 투표 시스템을 바로잡지도 않은 상태로 또 다시 유사 프로그램을 선보이는 행태에 있다. 엠넷은 최근 10대를 위한 경연 프로그램인 ‘10대 가수’ 제작하겠다고 밝혔다가 여론을 의식해 편성을 연기했다. 당장은 물러서는 액션을 취했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조만간 해당 프로그램의 하반기 편성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다수의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한 작가는 이런 행태는 방송사의 고질적인 문제라고 꼬집었다. 직접 참여했던 오디션 프로그램을 예로 들며 당초 공정성은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이번 ‘프로듀스 101’ 사태가 불거지면서 투표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생겨났지만, 당초 제작진 입장에서 기획할 때 ‘시청자 투표=공정한 심사’임을 보여주기 위한 수단이다. 하지만 공정성 보단 수익 창출을 위한 명분을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오디션 프로그램은)지원자를 추리는 과정에서부터 문제가 있다. 실제로 지원자들을 받긴 하지만, 내부에서 화제가 될 만한 인물들을 선정해 섭외한다. 방송의 재미를 위해 안정적인 장치들을 마련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 일반인들 사이에서 사실 그들이 돋보일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결국 투표 이전부터 어느 정도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는 말이다.
또 이 작가는 “방송이 막바지에 다다르면 내부에서 회의가 진행되면서 대중적인 인기와 투표 결과가 달라지는 경우에 생길 논란을 예상한다. 놀라운 건 일부 제작진은 오히려 반전의 결과가 나오는 걸 반긴다. 무관심 보다 논란이 되는 것이 훨씬 이득이라고 생각하는 부류라고 보면 된다”고 폭로했다.
시청자 투표는 참여율과 재미, 수익성 등에 기여하면서 필요성과 효과를 입증했다. 전문가들도 “(시청자 투표는)방송사 입장에서 절대 버릴 수 없는 아이템”이라고 말하면서도 그 바탕이 되어야 할 공정성은 뒷전으로 밀려났다고 입을 모은다.
이 작가 역시 “시청자 투표의 결과로 인해 발생하는 잡음에 비해 얻는 것들이 많기 때문에 절대 이 시스템을 벗어날 수 없다”고 단언하면서 “시청자 투표가 붙게 되면 억대가 넘는 문자 이용료가 발생하고, 화제성에 따라 엄청난 광고 수익을 거둘 수 있다. 심지어 프로그램에서 배출한 스타들이 방송사와 계약한 기간 동안 올리는 매출은 수백, 수천억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CJ ENM은 ‘프로듀스X101’ 방영 이후인 2019년 3분기에 매출액 1조 1531억 원, 영업이익 641억 원을 기록했다. TV조선의 ‘미스터트롯’의 경우 방송기간인 3개월 동안 120억 원이 넘는 광고 수익을 낸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앞으로 출연자들이 활동을 하면서 벌어들일 금액까지 더하면 ‘프로듀스X101’의 매출액도 가뿐히 넘어설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방송사 입장에서 재미와 수익을 고려하지 않을 순 없다. 하지만 적어도 시청자 투표를 내세운 프로그램이라면 우승자가 얼마나 공정한 과정을 통해 배출되었는가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진짜 무기는 공정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