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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기획┃시청자투표 딜레마①] 시청률은 높은데, 신뢰도는 ‘바닥’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입력 2020.04.07 10:46 수정 2020.04.07 10:48

오디션 프로그램 성공 뒤 씁쓸한 뒷맛

조작-공정성 논란 연이어 불거지는 이유

ⓒTV조선 ⓒTV조선

오디션 프로그램의 성공 뒤엔 늘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참가자들의 당락을 결정짓는 것에 시청자들의 의견을 반영하겠다며 도입한 ‘시청자 투표’는 프로그램의 성공과 몰락을 동시에 안겨준다. 오디션프로그램의 부흥을 이끌었던 엠넷 ‘슈퍼스타K’ 시리즈부터 최근 폭발적인 화제성을 보인 TV조선 ‘미스터트롯’까지 대부분의 오디션 프로그램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지금의 오디션 프로그램들을 살펴보면 기본적으로 ‘불신’이 자리하고 있다. 방송이 시작되고, 마무리되는 과정에서 조금의 허점만 보이면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조작 논란’ ‘공정성 논란’이 고개를 드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에 떨어진 것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건 엠넷 ‘프로듀스101’ 사태지만, 사실상 이런 포맷이 처음 시도되었을 때부터 생긴 고름이 겹겹이 쌓여 결국 터져버린 셈이다.


딜레마에 빠진 시청자 투표의 현 상황을 살펴보려면, 오디션 프로그램의 시작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2009년 문을 연 오디션 서바이벌 시리즈 ‘슈퍼스타K’는 한국 오디션 프로그램의 상징으로 불린다. 이전에도 경쟁을 콘셉트로 한 프로그램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본격적인 오디션 부흥기를 연 프로그램으로 읽힌다. 이후 ‘슈퍼스타K’는 시즌8까지 총 7년 동안 매년 방송됐다.


당시 순위조작 까진 아니었지만, 편집으로 거짓 상황을 만들며 ‘악마의 편집’ 논란이 있었다. 그럼에도 시즌1은 1%만 넘겨도 성공했다고 평가받던 당시 케이블 분위기에서 역대 최고 시청률인 7.7%를 기록했고, 시즌2, 3은 케이블 사상 시청률 10%를 넘기며(시즌2 결승전 당시 시청률은 18%) 신드롬을 일으켰다. 공교롭게도 시즌1부터 시즌3를 만든 사람은 시청자투표 조작으로 몰락한 ‘프로듀스 101’의 책임피디인 김용범 피디다.


그 사이 CJ ENM은 2012년 ‘보이스코리아’ 시리즈, 2012년부터 현재까지 방영되고 있는 ‘쇼미더머니’ 시리즈, 2015년 ‘언프리티 랩스타’ 시리즈, 2016년부터 ‘프로듀스 101’ 시리즈, ‘소년 24’, 2017년 ‘아이돌학교’ ‘고등래퍼’ 시리즈까지 비슷한 경연프로그램들을 꾸준히 생산해왔다. 음악 이외의 분야로도 가지를 뻗었다. ‘댄싱9’ 시리즈와 tvN ‘코리아 갓 탤런트’ ‘오페라 스타’, 온스타일 ‘도전 수퍼모델 코리아’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 올리브 ‘마스터셰프 코리아’ ‘한식대첩’ 등 수많은 경연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SBS, MBC ⓒSBS, MBC

케이블 오디션 프로그램의 인기에 편승하려는 지상파의 시도도 곳곳에서 이루어졌다. ‘슈퍼스타K’를 그대로 벤치마킹한 MBC ‘위대한 탄생’, KBS ‘TOP밴드’ 시리즈와 ‘내 생애 마지막 오디션, SBS ’K팝스타‘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이밖에도 서바이벌 포맷의 MBC의 ‘나는 가수다’ ‘복면가왕’ ‘신입사원’ ‘집드림’, SBS ‘신의 목소리’ ‘다이나믹 듀오’ ‘빅토리’ ‘김연아의 키스 앤 크라이’, KBS ‘불후의 명곡’ ‘노래싸움 승부’ 등 다양한 경연 프로그램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같은 포맷의 오디션 프로그램이 계속해서 론칭되고 폐지되기를 반복하면서 시청자들이 체감하는 피로는 극에 달했다. 타 채널의 오디션 프로그램은 물론 오디션 프로그램의 원조격으로 불리는 ‘슈퍼스타K’도 시즌4부터는 시청률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결국 2013년의 시즌5는 본선 시청률이 2%를 오갈정도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오디션 서바이벌에서 시청자들의 이탈이 발생하자 엠넷은 즉각 프로그램 재편에 나섰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쇼미더머니’ 시리즈였고, 이후 아이돌의 데뷔를 전재로 연예 기획사와 협력해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아이돌 ‘팬덤’의 위력을 수치로 확인하자 곧바로 매니지먼트 등의 영역으로 자신들의 권한을 대폭 확장한 ‘프로듀스 101’ 시리즈를 만들게 된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조작’으로 법의 테두리에 묶이게 된 ‘프로듀스 101’는 ‘슈퍼스타K’의 초창기 성공을 이끌었던 김용범 CP의 작품이다. 시청자의 참여도가 흥행과 직결된다는 공식을 파악한 후 만들어진 이 프로그램은 ‘국민 프로듀서’라는 말을 만들어가며 시청자 참여를 극대화했다. 이전엔 자극적인 편집으로 시청자를 끌어 모았고, 그 동력을 확인하자 시청자를 이용한 수익으로 상상도 못할 매출을 만들어내기에 이른 것이다.


하지만 의혹으로만 가득했던 오디션 프로그램의 민낯이 드러난 이후 신뢰도는 결코 회복하기 힘든 수준으로 치달았다. 최근 종영한 ‘미스터트롯’도 시청자들의 참여를 유도해 프로그램의 인기를 견인했는데, 최종 투표의 점수 산정 및 집계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하자 곧바로 ‘조작’을 의심하는 여론이 형성됐다.


결국 기존의 스타, 인재 배출의 등용문이었던 방송국과 방송 프로그램이 매니지먼트 등에 관여하게 되면서 시청률 외의 부가적인 수익구조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단순 관람자에서 참여자로 주체성이 극대화된 시청자들은 방송사의 중계자로서의 역할에 의심을 품게 된 모양새다.


‘쇼미더머니’ 시즌4 이상윤 PD는 2015년 프로그램 제작발표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PD로서 프로그램을 둘러싼 논란은 만족스럽다. 어느 정도의 논란은 필요하다. 관심이 있다는 의미다.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면 이 프로그램이 이 자리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이 시점에서 다시 되묻고 싶다. 공정성을 잃은 프로그램의 성공을 과연 자랑스럽다고 말할 수 있을까.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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