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빈, 일베에서 자란 괴물이었나
입력 2020.03.26 08:20
수정 2020.03.26 09:27
혐오 표현 일상화로 범죄 경각심이나 죄의식 희석
인간존엄성 개념과 시민의식 내면화 교육의 정상화 필요
악랄한 디지털 성범죄를 저지른 조주빈이 일베 성향이었다는 보도들이 나온다. 한 매체는 조주빈이 고교시절 일베의 혐오 용어를 쓰다 다른 학생과 다툰 적도 있다는 조주빈 지인의 인터뷰를 보도했다. 복수 지인들의 증언이라면서, 조주빈이 고교시절엔 극우 성향 커뮤니티 활동을 드러내놓고 하다가 대학 입학 후에 탈바꿈을 했다는 내용도 보도됐다.
조주빈의 군대 후임이라고 주장한 사람도 조주빈이 일베 회원이라고 했다. 작년에 여고생 피해자 2명으로부터 영상 삭제 의뢰를 받아 조주빈과 접촉했다는 디지털장의사는, 조주빈이 일베 용어, 욕설을 자주 해서 대화가 어려울 지경이었다고 증언했다.
이러한 내용들을 보면 조주빈이 청소년기에 일베의 영향을 많이 받다가, 성인이 된 후 학보사 기자생활을 하며 본 모습을 숨긴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조주빈 사건은 일베의 잘못된 문화가 현실에서 실현된 사례로 해석할 수 있다.
일베에서 나타나는 반인륜적인 표현들이 여러 차례 물의를 빚었었다. 특정 지역 사람들에 대한 혐오 표현을 서슴없이 쓰면서 인격을 무시하는 행태를 보였다. 세월호 사건 당시엔 희생자를 조롱하는 표현도 문제가 됐다. 광주민주화운동 시신을 조롱하기도 했다. 여성을 마치 사물처럼 대상화하는 태도도 문제가 됐다. 여친인증이라며 여성의 사진을 손가락 인증과 함께 무단으로 올리는 행위도 나타나 파문이 일었었다. 이런 일들이 가벼운 놀이처럼 표현됐다.
심각한 우려가 계속 제기돼왔다. 이런 표현들을 쓰며 반복적으로 대화를 나누고,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젖어 살면 인간 존엄성에 대한 의식이 약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혐오 표현이 일상적으로 쓰이는 것을 보면서, 범죄에 대한 경각심이나 죄의식도 희석될 수 있다.
특히 사회의식이 제대로 자리 잡지 않은 청소년기에 이런 문화에 빠져들면 인간관이 근본적으로 왜곡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우리나라는 이미 교육 붕괴 상태여서, 학교에서 인간존엄성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다. ‘약자를 밝고 올라서서 누려라. 경쟁에 지면 너는 평생 하찮은 루저로 살 것이다’라는 극단적인 승자독식 경쟁논리만 세뇌 당한다.
거기다가 시민의식을 기르는 사회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렇게 취약한 상태에서 일베처럼 차별적이고 인간을 경시하는 혐오 언어가 오가는 곳에 젖어들면 반사회적인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그래서 일베의 악영향에 대한 우려가 진작부터 제기됐던 것이다.
이번에 조주빈이 보여준, 여성을 인격이 아닌 사물처럼 대하는 모습이라든가, n번방 회원들이 보여준 소시오패스와도 같은 모습들이 바로 그런 반사회적 태도다. 이번 사건은, 인터넷에 난무하는 혐오 표현들을 방치하면 그것이 현실에서 실현될 수도 있다는 경각심을 갖게 한다.
지금 당장은 관련자들부터 색출해서 뿌리를 뽑고, 형량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근본적으론 일베와 같은 곳에서 별 생각 없이 쓰이는 혐오 표현들이 청소년과 청년의 의식세계를 좀먹지 않도록 차단하고, 인간존엄성 개념과 시민의식을 확고히 내면화할 수 있도록 교육을 정상화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괴물은 계속 나타날 것이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