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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 경고등 켜졌는데...정부, 은행에 '혁신 혁신 혁신'만 압박

이충재 기자 (cj5128@empal.com)
입력 2020.02.19 06:00
수정 2020.02.18 21:45

금융위, 청와대 업무보고서 "아직도 담보에만 의존" 질책

경기불황에 '중소부실대출' 위험 커졌지만 기조변화 없어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2019년 12월 1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 관련 금융권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은행은 아직도 담보에만 의존하고 있다. 벤처투자 규모도 선진국에 비해 적고, 여전히 부동산 위주의 금융이 지속되고 있다. 보다 과감한 혁신이 필요한 상황이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17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하며 이같이 말했다. 시중은행을 향해 정부의 '혁신금융'을 주문하며 기존 담보 위주의 대출에서 벗어나 중소‧벤처기술 등에 투자하라는 고강도 압박이다. 금융당국의 이 같은 주문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해 업무보고에서도 "중소기업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등 정부 경제정책 기조에 맞춘 발언이 이어졌다.


경기불황에 '부실' 위험 커졌는데도 "혁신 혁신 혁신"


하지만 최근 은행권의 내부사정을 들여다보면 '혁신'이 아닌 '안정'에 무게를 둘 때라는 지적이 나온다. 경기 침체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여파까지 겹친 실물 경기 위축으로 금융권 전반에 한기가 돌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은행권의 중소기업 대출은 크게 늘어난 반면 연체율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경기에 민감한 중소기업의 부실 가능성이 높아지며 은행권의 건전성 관리에도 경고음이 켜진 상황이다.


금융감독원의 '2019년 정기 신용위험평가 결과'에 따르면 부실 가능성으로 법정관리를 받아야 하는 기업은 210곳으로 지난해 대비 20개 늘어났고, 부실징후기업 중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95.7%에 달했다.


기업의 부실은 은행권으로 전이될 수밖에 없다. 특히 IBK기업은행의 경우, 대출에서 발생한 부실 규모가 3조원에 육박하면서 위험에 노출됐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기업은행이 보유한 부실 대출채권은 2조9715억원으로 1년 새 2287억원이 늘었다. 이는 다른 시중은행의 두 배를 웃도는 수준이다.


지난해 기업은행의 특화 분야인 중소기업대출 규모는 역대 최대치를 경신하며 중소기업대출 잔액은 전년 말보다 7.3% 증가한 162조7000억원이었다.


이와 관련 한국금융연구이 지난해 발표한 '국내은행 건전성 관리에 유의할 필요' 보고서는 "정부의 가계대출 규제 일환으로 은행들이 규제 변화에 대비해 중소기업 대출을 늘리고 있다"며 "우량 중소기업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가 돼 은행이 비(非)외부감사 중소기업 대출을 늘리는 상황이어서 경기침체에 부실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녹색금융, 창조금융처럼...혁신금융에도 '한 발만' 담근다


애초에 시중은행이 정부의 혁신금융 정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기 쉽지 않다는 지적이 많았다. '안정'을 최우선 가치로 삼은 은행입장에서는 '혁신'에 따른 리스크가 부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근 은행권에도 기존 관행에서 벗어나 동산담보, 기술력 등을 가치 평가해 대출이 이뤄지는 경우가 점차 늘어나고 있지만, 정부가 원하는 '혁신금융'을 체감할 수준의 변화라고 보긴 어렵다.


더욱이 정권마다 바뀌는 금융정책에는 한발만 담그는 게 은행권의 오랜 관성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금융사들은 5년 주기로 '반짝'하는 금융정책에는 어떻게 대응해야할 지 익숙해질 정도"라며 "쳇바퀴를 도는 느낌"이라고 했다.


실제 노무현 정부 때는 '동북아 금융허브', 이명박 정부의 '녹색금융', 박근혜 정부의 '창조금융' 등 정권마다 내세운 금융정책 구호가 은행권에 울렸다가 소멸하는 일이 반복됐다. 은행은 관련 상품을 내놓는 등 호응했지만, 정권이 바뀌면 곧바로 상환했다.

이충재 기자 (cjle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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