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룰 완화로 헤지펀드 기업공격 우려…3% 룰로 강화해야”
입력 2020.02.11 11:00
수정 2020.02.11 12:49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으로 주주행동주의 이용 전망
5% 룰을 완화한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으로 인한 헤지펀드의 기업공격을 막기 위해 기관투자자 공시의무를 3%로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국경제연구원(원장 권태신)은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에게 의뢰한 ‘주주행동주의에 대한 대응과 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의 문제점’ 연구보고서를 통해 주식 대량보유 신고제를 3%로 낮추는 동시에 1일내 신고로 기관투자자 공시의무를 강화해야 한다고 11일 밝혔다.
보고서는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으로 주주행동주의를 이용한 단기실적주의를 지향하는 헤지펀드의 기업공격을 우려했다.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으로 5% 룰이 국민연금 등 공적기금에 대해 월별 약식으로 보고하는 것으로 완화돼 주주행동주의가 고조된다는 것이다.
헤지펀드 행동주의를 통해 주주와 경영진의 대리인비용을 감소시키고 주주가치를 높이는 것을 기대하지만 단기실적주의로 회사의 지속가능성과 일반 주주의 이익을 훼손시킨 사례가 더 많다는 주장이다.
헤지펀드의 타깃이 비윤리적이고 법적으로 문제가 많은 기업을 대상으로 하기보다는 수익성이 좋으나 업계 대비 배당성향이 낮고 현금보유 비중이 높은 우량한 기업을 대상으로 작전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보고서는 이 같은 헤지펀드의 단기 실적주의는 기업의 미래 지속가능성을 훼손하고 투자 및 고용감소로 이어지고 있다고 전망했다. 대표적으로 듀폰은 헤지펀드 공격 이후 비용절감을 통해 단기주가를 상승시켜 주주이익을 증대시키기 위해 연구개발(R&D) 투자를 급격히 줄이고 기술연구소를 폐쇄해 수천 명의 일자리가 사라졌다고 보고서는 설명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헤지펀드로 인한 기업의 인위적 구조조정의 사례도 존재한다. 행동주의 펀드 ‘자나파트너스’는 미국의 홀푸드 경영진에게 주가 상승 압력을 넣었고 이후 아마존에게 기업을 매각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헤지펀드의 요구로 인한 경영진 교체 사례 역시 제너럴일렉트릭(GE), 포드자동차, AIG, 야후 등에서 찾을 수 있다.
보고서는 헤지펀드의 주요 활동 무대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데 주목했다.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에 따르면 아시아 기업에 대한 경영개입 사례는 2011년 대비 2018년 10배 이상 급증하면서 글로벌 평균의 두 배를 훨씬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준선 교수는 “삼성전자·현대차·SK하이닉스 등 4대 그룹 상장사 55개 가운데 19개(35%)는 대주주 지분보다 외국인 지분이 높아 헤지펀드에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며 “차등의결권 주식이나 포이즌 필 같은 방어수단이 없기 때문에 자기주식 매수를 통해 경영권을 방어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기주식 신탁을 통한 간접적인 자기주식 매수를 포함할 경우 기업들이 자기회사 주식을 되사는 데 사용한 금액은 2017년 8조1000억원, 2018년 상반기에만 3조6000억원에 달한다고 보고서는 설명했다.
보고서는 최근 기업들의 배당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것 역시 외부로부터의 경영권 위협이 높아진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안정적인 장기 주식투자를 촉진한다는 측면에서 기업의 배당수준을 높여나가는 것이 바람직할 수도 있으나 자기주식 매수와 배당의 확대는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 잠재력을 저하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헤지펀드들의 활동 자유에 따른 부작용 개선방안으로 최 교수는 의결권 연대행사 금지와 공시의무 강화를 주장했다.
보고서는 최근 헤지펀드들의 공격 경향은 ‘이리떼 전술’ 또는 ‘이리떼 행동주의’로 불린다고 설명했다. 이는 헤지펀드들이 증권 감독당국에 신고해야 할 비율(미국 10%·한국 5%) 이하 지분을 보유하며 공시의무를 회피하다 타깃 회사를 공격하는 전술을 구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전략으로 2015년에만 미국 상장회사 중 343개가 공격을 받았고, 2016년 상반기에 113개 회사가 공격을 받았고 아시아 지역의 피해도 불과 7년 만에 10배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의결권 연대행사 금지를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주식 대량보유 신고제도에서 5%룰은 3% 룰로 변경하고 1일 내에 신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를 위반할 때에는 의결권을 박탈하는 것으로 공시의무의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차등의결권과 포이즌 필 제도 등 기업 경영권 방어 장치의 도입을 촉구했다. 최 교수는 “국민연금에게 주주권행사를 쉽게 하려는 의도로 최근 자본시장법 시행령과 국민연금법 시행령이 개정됐으나 이는 상위법 위반의 문제가 있다”며 “관련 법제의 개선이 시급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