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로 끝났던 '이니셜 정치'…이낙연이 되살리나
입력 2020.02.10 06:00
수정 2020.02.10 05:57
김영삼(YS) 김대중(DJ) 김종필(JP) 후 '공식유통' 없어
'종로출마' 이낙연, 대선 같은 총선캠프가 부른 '과욕'
정치인 이니셜 약칭은 한 시대를 풍미한 김영삼(YS), 김대중(DJ), 김종필(JP)의 '3김 시대'에 본격적으로 사용되다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나쳐 이명박 전 대통령(MB)에서 소멸됐다. 일부 인사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GH'로 부르기도 했지만, 공식 유통되진 못했다. 오히려 박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을 불러 "그냥 박 대통령으로 불러달라"고 언론사에 요청하기도 했다.
그렇게 정치인의 이니셜 약칭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니셜 약칭이 사라진 데에는 "주요 정치인들의 이니셜 발음이 어렵고, 쉽게 와 닿지 않는다"는 표면적 이유도 있지만, '권력 내려놓기 경쟁'이 치열해진 최근 정치권 분위기도 작용했다. 영문 이니셜 약칭이 자칫 '권위의 상징'으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실제 현역 정치인 중에 아직까지 영어 이니셜로 불리는 인물은 없다. 최고 권력에 오른 문재인 대통령도 'JI'로 불리진 않는다. 오히려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이니'(문 대통령 이름의 마지막 글자 '인'을 부르는 애칭), '문프'(문재인 프레지던트)로 통한다. 지난 대선에서는 유권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서기 위해 '재인씨'로 홍보하기도 했다.
'NY' 띄우는 이낙연…'대선 같은 총선캠프'가 부른 과욕
최근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자신의 영어 이니셜인 'NY' 띄우기에 나섰다. 이 전 총리 선거캠프에서는 'NY'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면서 홍보전을 펴고 있다. 캠프 사람들은 이 전 총리를 'NY'라고 부르고, 온라인 지지자 모임을 'NY(낙연) 서포터즈'로 명명하기도 했다.
"쉽고 편하게 불리려고", "대중성을 얻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차기 대선후보 지지율 선두를 달리고 있는 이 전 총리 캠프의 '과욕'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미 이들의 마음은 총선을 넘어 2년 뒤 대선캠프에 가 있는 상황이다.
복수의 정치평론가는 "이니셜 약칭은 과거 '3김 시대'의 권위주의적 느낌을 줄 수 있다"고 한목소리로 지적했다. 전직 청와대 관계자는 "이 전 총리의 평소 캐릭터를 고려하면, 벌써부터 대통령처럼 이름을 입에 올리기 어려운 존재라는 느낌"이라고 지적했다. 야당에선 "낙연이 아니라 '낙엽'의 NY가 아니냐"는 조소 섞인 반응도 나온다.
무엇보다 정치인이 스스로 띄운다고 해서 이니셜이 통용되는 건 아니다. 지난 1992년 대선 당시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YS, DJ와 어깨를 나란히 했지만 이들과 달리 영문 약칭으로 불리지 않았다. 정 전 회장은 당시 신문제목에 'YS', 'DJ'가 나오는 것을 보고 "나도 CY(주영)라고 불러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CY'는 공식 유통되지 않았다. '왕 회장'마저도 정치판에선 이니셜로 통하지 못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