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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룡열전⑤] '하와이 출신 오바마처럼'…원희룡, 무르익는 대권 꿈

정도원 기자
입력 2020.07.22 07:24 수정 2020.07.23 13:28

날달걀 맞아도 선처 호소…포용력 있는 정치인

중도 외연 확장성 넓고, 젊은 나이에 경륜 풍부

'스토리 있는 삶' 대권주자의 필수요소도 갖춰

자천타천으로 범보수 진영의 잠룡(潛龍)으로 거론되는 인사들. 사진 왼쪽 위부터 홍준표 무소속 의원, 김태호 무소속 의원, 나경원 미래통합당 전 원내대표, 유승민 전 의원, 원희룡 제주도지사,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오세훈 전 서울특별시장, 홍정욱 전 의원,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김병준 전 비상대책위원장, 윤석열 검찰총장, 황교안 미래통합당 전 대표. 순서는 원내와 선수(選數)를 우선으로 하되, 선수가 같을 경우 성명 가나다순이다. ⓒ데일리안 사진DB 자천타천으로 범보수 진영의 잠룡(潛龍)으로 거론되는 인사들. 사진 왼쪽 위부터 홍준표 무소속 의원, 김태호 무소속 의원, 나경원 미래통합당 전 원내대표, 유승민 전 의원, 원희룡 제주도지사,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오세훈 전 서울특별시장, 홍정욱 전 의원,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김병준 전 비상대책위원장, 윤석열 검찰총장, 황교안 미래통합당 전 대표. 순서는 원내와 선수(選數)를 우선으로 하되, 선수가 같을 경우 성명 가나다순이다. ⓒ데일리안 사진DB

미래통합당 당헌 제73조는 대선 240일 전부터 대선예비후보 등록을 받도록 규정한다. 20대 대선은 2022년 3월 9일이다. 역산하면 통합당의 대선예비후보 등록은 내년 7월 12일부터다. 우리나라 적통(嫡統) 보수정당의 대권 레이스가 불과 1년 앞으로 성큼 다가온 것이다.


최근 통합당 내에서는 흥행과 감동, 확장성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대선후보 경선을 하자는 논의가 물밑에서 한창이다. 한 종합편성채널의 인기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인 '미스터트롯'처럼 하자는 목소리도 높다. 기류로 볼 때 대선후보 경선 일정이 당헌에 정해진 것보다 더 빨라지면 빨라졌지, 늦어질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원희룡 제주도지사와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달 23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사회안전망 4.0 정책토론회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날 김종인 위원장은 축사에서 "원희룡 지사가 기본소득의 실현 가능성과 한계가 무엇인지 검토하셔서 우리 미래통합당이 앞으로 기본소득을 어떤 형태로 끌고 갈 것인가 하는 방향을 제시해주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자료사진).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원희룡 제주도지사와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달 23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사회안전망 4.0 정책토론회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날 김종인 위원장은 축사에서 "원희룡 지사가 기본소득의 실현 가능성과 한계가 무엇인지 검토하셔서 우리 미래통합당이 앞으로 기본소득을 어떤 형태로 끌고 갈 것인가 하는 방향을 제시해주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자료사진).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원희룡 제주도지사를 향한 통합당 안팎의 주목도가 높아지고 있다. 최근 통합당 의원들에게 차기 대권주자에 관해 물으면 두세 손가락 안에는 원 지사가 꼭 포함된다. 한 통합당 3선 의원은 "원 지사는 우리가 갖고 있는 가장 좋은 카드 중 하나"라며 "그 중에서도 '기스'가 가장 나지 않은 카드"라고 설명했다.


대권주자로서도 본격적으로 탄력을 받고 있다. 데일리안이 지난달 28~30일 알앤써치에 의뢰해 야권 차기 정치지도자 적합도를 설문한 결과, 원희룡 지사는 6.1%의 지지율을 얻어 홍준표 의원(12.7%), 유승민 전 의원(9.3%),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8.6%), 황교안 통합당 전 대표(7.5%) 등 주요 대권주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지난해 이런 류의 설문에서 원 지사가 1%대 지지율을 보인 적도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괄목할만한 성장이다. 여론조사와 관련해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대권주자로서 원희룡 지사의 강점은 △스토리 있는 삶 △젊은 나이에 비해 원숙한 경륜 △선거전의 강자 △중도로의 확장성이 넓은 포용의 정치인이라는 점 등이 꼽힌다.


원 지사가 나고 자란 남제주군 중문면(당시)은 1978년까지 전기가 들어오지 않은 궁벽한 곳이었다. 집안도 빚더미라 채권자가 집안으로 짓쳐들어와 마루바닥에 칼을 꽂고 채무 상환을 협박하는 흡사 영화와 같은 장면을 보며 자라야 했다. 이러한 집안 형편 속에서도 원 지사는 제주일고에서 1등을 놓치지 않고 마침내 대입 학력고사에서 수석을 하며 서울법대에 진학했다.


82학번으로 입학한 원 지사는 신군부 집권이라는 '시대의 모순' 속에서 '모범생의 길'을 거부했다. 학생운동을 하다가 수석입학자로서는 최초로 정학 처분도 받았다. 경인공단에 위장취업을 해서 노동운동을 하기도 했다.


1987년 직선제 개헌으로 절차적 민주주의가 쟁취되자 오랜 고민 끝에 운동의 삶을 접고 생활인의 삶으로 복귀했다. 단기간의 수험 생활 끝에 34회 사법시험에서 수석을 했다. 어려운 집안 형편에 오랫동안 학생운동-노동운동을 한 게 마음에 걸렸던 듯, 원 지사는 수석 합격 소감으로 "그동안 마음고생을 시켜드린 부모님께 작으나마 위안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기쁘다"는 말을 남겼다.


굴곡진 삶을 거쳐 검사로 임관한 원희룡 지사는 '모교 선배' 이회창 총재의 부름에 응해 2000년 야당 한나라당을 통해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3선 의원을 하며 국회 외교통일위원장과 집권여당 사무총장을 지냈다. 최고위원도 여당일 때 한 차례, 야당일 때 한 차례 했다. 특별자치도지사로서 광범위한 권한을 갖는 제주도지사를 하며 입법·행정·사법을 두루 섭렵했다.


원 지사는 1964년생으로 보수 진영의 차기 대권주자 중 가장 젊은 축에 속한다. 홍준표(53년생) 의원, 김병준(54년생) 전 비상대책위원장, 김동연(57년생) 전 경제부총리, 황교안(57년생) 전 대표, 유승민(58년생) 전 의원 등 50년대생은 물론이고, 오세훈(61년생) 전 시장, 윤석열(61년생) 검찰총장, 김태호(62년생) 의원, 안철수(62년생) 국민의당 대표, 나경원(63년생) 전 원내대표보다도 젊다.


하지만 정치 경력은 위에 언급된 인사 중 크게 꿀릴만한 상대가 없고, 오히려 대다수의 인사들보다 경륜이 깊다. 홍정욱(70년생) 전 의원이 주요 대권주자 중에서는 유일하게 원 지사보다 젊은데, 홍 전 의원의 정치 경력은 초선 의원이 전부라는 점에서 원 지사와는 비교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원희룡 지사는 선거전에 강한 면모를 보여온 정치인이다. 지난 대선에서 정치·선거 경험이 전무한 인사에게 기대를 걸었다가, 해당 인사가 20일만에 선거전을 '드롭'하면서 힘 한 번 못 써보고 대선을 날렸던 '악몽'이 있는 보수 진영의 '선택'을 받는데 유리한 요소다.


원 지사는 서울 양천갑에서 16~18대 총선에 걸쳐 내리 3선을 할 때, 고른 득표율로 꾸준히 과반을 넘겼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이 몰아치던 2004년 총선에서 56.6%의 득표율로 당선됐고, 반대로 서울 전역에서 한나라당 깃발이 꽂히던 2008년 총선에서도 52.1%를 득표했다. 원 지사가 지역구를 내놓은 뒤, 보수정당은 20~21대 총선에 걸쳐 양천갑에서 연패했다.


제주도지사 선거도 두 차례 연속 과반 득표로 승리했다. 특히 2018년 도지사 선거는 보수정당 후보가 두 명이나 출마한 가운데 무소속으로 뛰었는데도 51.7%의 득표를 얻어 문대림 더불어민주당 후보(40.0%)를 압도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러한 원희룡 지사의 득표력은 중도나 합리적 진보까지도 끌어당길 수 있는 확장성이 넓은 '포용의 정치인'이라는 점으로부터 비롯됐다는 게 중론이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를 예방해 개원 축하 연설을 하고 돌아가는 길에 한 국민으로부터 항의의 뜻으로 신발을 투척당해 논란이 됐다. 경찰은 이 국민을 상대로 구속영장을 청구해 '심기 경호'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문 대통령은 영장이 기각될 때까지 아무런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원 지사도 도지사로 재직하던 중에 봉변을 겪은 적이 있다. 성산읍 제2제주공항을 반대하는 단체의 부위원장이 원 지사에게 날달걀을 던져 맞춘 뒤 달려들어 안면을 폭행했다. 당시 해당 인사는 흉기까지 소지하고 있었다. 해당 인사에 대한 구속영장이 신청되자, 원 지사는 선처를 호소했다. 우리 사회의 국론 분열이 나날이 심해지는 와중에 현 정권과는 대조적인 관용적 면모라는 지적이다.


고향은 노력해 옮길 수도 없는데…'잔인한 단점'
하와이 출신 오바마도 일리노이를 '버팀목' 삼아
내리 3선에 시장도 도전했던 '서울 풍향'에 주목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지난 2018년 지방선거 당시 무소속 후보로 출마해 한경면사무소 앞 거리에서 주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며 인사하고 있다(자료사진).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지난 2018년 지방선거 당시 무소속 후보로 출마해 한경면사무소 앞 거리에서 주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며 인사하고 있다(자료사진).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대권주자로서 원희룡 지사가 극복하거나 경계해야 할 과제로는 △스토리 살려내기 △출신 및 활동 지역이 갖는 한계 등이 거론된다.


'흙수저 출신의 자수성가 스토리' 그 자체인 원희룡 지사의 굴곡진 인생은 장점이기도 하지만, 요즘 세태에 맞지 않게 잘못 활용하려 들면 단점으로 돌변할 우려도 있다.


홍준표 무소속 의원은 대선 캠페인을 하고 있던 지난 2017년 4월 페이스북을 통해 "나는 흙수저 출신으로 무학인 아버지와 문맹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고학으로 학교를 다녔고, 유산 1원도 받지 않고 독고다이로 검사·국회의원·집권여당 원내대표·당대표·경남지사·대통령 후보까지 된 사람"이라며 "야들아, 내가 너희들의 롤모델이다"라고 외쳤다.


이 포스팅은 당시 홍 의원을 '꼰대' '노력충(노력 부족 탓을 하는 기성세대를 지칭하는 조어)'으로 인식되게끔 만들면서, 의도했던 바와는 달리 젊은층에서 극도의 감표(減票) 효과를 불러일으켰다는 분석이다. 다행히도 홍 의원은 대선 이후 이같은 메시지를 내지 않으면서 젊은층에서 지지도를 회복해가고 있다. 요즘 젊은층이 본받을 수 없는 인생 스토리를 갖고 있는 원 지사도 타산지석으로 여길만한 사례라는 지적이다.


최근 통합당의 한 의원은 사석에서 "이낙연 의원에 비해 원희룡 지사가 대선후보로 부족할 게 뭐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출신지가 제주라는 것"이라는 지적에는 "그게 좀…"이라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지역'이 대선의 결정적 변수였던 우리 정치에서 원희룡 지사가 '제주 출신'이라는 점은 잔인한 측면이 있다. 소통이 부족하다든지, 이미지가 좋지 않다든지, 인지도가 떨어진다든지 하는 점은 노력으로 극복하려 시도할 수라도 있다. 그러나 '고향'은 떼서 옮기지도 못한다.


제주의 유권자 수는 50만명이다. 부산울산경남(유권자 660만명)은 물론 대구경북(유권자 427만명)·광주전남북(유권자 423만명)·대전충남북(433만명)과도 비교하기 어렵다. 정주영 전 통일국민당 총재가 기반했던 강원(유권자 127만명)에 비해서도 '홈그라운드'가 반토막이다.


'큰 선거' 경험이 많은 통합당 핵심 관계자는 "원 지사의 경우 결국 상대가 누구냐, 민주당에서 후보가 누가 되느냐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서울이 '원희룡의 일리노이'가 돼주느냐도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라고 내다봤다.


무슨 뜻일까. 미국이나 유럽의 선진국에서도 지역은 정치의 중요 변수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1980년 대선에서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에게 완패했지만 고향인 조지아에서는 이겼다. 월터 먼데일 전 부통령도 1984년 대선에서 레이건 전 대통령에게 49개 주(州)에서 참패했지만, 오로지 자신의 고향 미네소타 1개 주(州)에서만큼은 신승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하와이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하와이에서 나왔다. '큰 꿈'을 품게 된 오바마는 고향인 하와이 대신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의 연고지인 일리노이 주에서 정치를 시작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주의원과 연방 상원의원을 한 일리노이 주는 대표적인 '스윙 스테이트'인데도, 두 차례의 대통령 선거에서 일관해서 민주당을 지지하며 오바마 전 대통령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줬다.


원희룡 지사도 2014년 지방선거에서 제주로 낙향하기 전까지는 서울에서 줄곧 정치를 했다. 서울 양천갑에서 내리 3선을 했으며, 서울시장 경선에 도전하기도 했다. 나날이 탄력이 붙고 있는 원 지사의 대권 행보에 '오바마의 일리노이'처럼 서울 민심이 반응할지는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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