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발사르탄 사태…식약처 '뒷북' 대응 논란
입력 2019.09.29 06:00
수정 2019.09.29 10:16
발사르탄 혈압약 검출 동일 성분 NDMA 검출
식약처 조사결과 열흘 만에 번복
국내에서 144만명이 복용하는 라니티딘 계열 의약품 269종에 대해 당국이 유통중단 조치를 내렸다. 그러나 이는 국내에서 유통 중인 잔탁과 그 원료에서 N-니트로소디메틸아민(NDMA)이 검출되지 않았다고 밝혔던 16일 정부 조사결과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어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26일 위궤양 치료제나 역류성 식도염 치료제의 주원료로 사용되는 국내 유통 라니티딘(Ranitidine) 성분 원료의약품을 수거·검사한 결과, NDMA가 잠정 관리 기준을 초과 검출됐다고 밝혔다.
라니티딘은 위산의 분비를 억제하는 성분이고 NDMA는 독성을 가진 공업용 화학물질로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가 지정한 인체발암 추정물질이다. 라니티딘 내 NDMA 허용 기준치는 '0.16PPM 이하'다.
식약처는 라니티딘 성분 의약품에서 NDMA가 미량 검출됐다는 미국 FDA의 발표 이후 국내로 수입되거나 국내에서 제조돼 유통 중인 라니티딘 성분 원료의약품을 수거해 검사했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국내 유통중인 라니티딘 성분 원료의약품 7종에서 NDMA가 잠정관리기준(0.16ppm)을 초과해 검출됐다. 최대 53.50ppm까지 검출된 의약품도 있었다.
라니티딘 성품 의약품에서 NDMA가 검출됨에 따라 식약처는 국내 유통중인 라니티딘 원료의약품 7종과 이를 사용한 완제의약품 269품목 전체에 대해 잠정적으로 제조·수입·판매 중지 및 회수 조치하고, 처방을 제한하도록 했다. 또 이미 처방·조제된 약품은 다른 위장약으로 교환해주도록 했다.
"식약처, 제2의 발사르탄 사태 막겠다더니…"
NDMA는 지난해 발사르탄 계열 혈압약에서도 검출돼 파문을 일으켰던 성분이다. 정부가 발사르탄 사태에 이어 또 다시 의약품 안전문제에 부실 대응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해에도 외국 기관이 먼저 라니티딘의 위험성을 지적한 뒤에야 조사에 나섰었다.
앞서 식약처는 지난 16일 시중에 판매 중인 잔탁 등에 대해 일부 수거 검사를 한 후 불검출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한의사협회는 23일 회원들에게 문제의 성분이 포함된 의약품을 처방하지 말 것을 권고했다. 대한약사회도 25일 판매주의보를 내렸다. 의료 현장의 대응이 오히려 정부보다 빨랐던 셈이다.
이에 대해 식약처는 잔탁 29개 제품과 라니티딘 6개를 수거해 검사한 후 NDMA가 불검출됐다고 발표했던 데 대해 NDMA 성분 특성을 언급하며 해명했다.
NDMA는 실온에서 보관하면 14일 이후부터는 스스로 분해되기 시작하므로 추적이 쉽지 않고, 완제품 의약품에서도 상태가 변할 수 있는 불안정한 성분이어서 검출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번 검사에서도 NDMA가 검출된 것은 사실이지만, 제조단위(로트)별로는 검출되지 않은 것도 있고 일부에서는 최대 53.50ppm까지 나타나는 등 검출량의 편차가 매우 컸다고 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식약처의 뒷북 대응 때문에 제약사들도 환자들도 혼란스러운 상황"이라며 "오리지널 의약품인 잔탁의 타격이 크겠지만 복제약 중에서 가장 잘 팔리던 대웅제약의 알비스정도 판매가 중단되면서 매출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이나 독일, 호주에서는 NDMA로 인한 즉각적인 위험이 없다며 판매중단 조치는 내리지 않았다"면서 "식약처가 늑장대응에 과잉대응까지 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