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인터뷰] 정해인 "연애는 아날로그…천천히 오래"
입력 2019.08.23 09:21
수정 2019.08.24 15:12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서 현우 역
"모든 캐릭터에 내 모습 녹여내"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서 현우 역
"모든 캐릭터에 내 모습 녹여내"
"넌 어떻게 그렇게 웃니?"
여자가 묻자 남자는 환하게 웃는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깨끗해지는 청정 미소. 배우 정해인(31)은 특유의 해맑은 미소와 선한 얼굴이 장점이다
그의 매력은 멜로물에서 유독 빛난다. 한 여자만을 사랑하는 순애보, 사람을 대하는 따뜻한 태도는 정해인에게 꼭 맞은 옷이었다. 이번 작품에서도 그렇다. 상처가 있는 청년을 자기만의 매력으로 소화했다. 어루만져 주고 싶고,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기게 한다.
정해인 김고은 주연의 '유열의 음악앨범'(감독 정지우)은 라디오를 매개로 한 소중한 기억과 기적과도 같은 시간, 그리고 인연을 그린 감성 멜로물. 공감 가는 현실적인 이야기와 두 배우의 감성 연기가 잘 어우러졌다는 평가를 얻는다. 정해인은 다가가도 다가갈 수 없던 '엇갈리는 인연'의 그 남자 현우 역을 맡았다.
22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정해인은 "영화를 관객 입장에서 처음 봤는데 보고 나서 감독님께 '감사하다'고 말했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밥 잘 사주는 예쁜누나'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그는 차기작으로 '유열의 음악앨범'을 택했다. 수많은 러브콜을 받은 끝에 내린 결정이다. 정 감독은 정해인 캐스팅에 공을 들였다. 해외 팬미팅까지 갈 정도였다니, 말 다 했다. 감독은 팬미팅에서 그를 관찰했다.
정 감독에 대해선 "저에게 '해인 님'이라고 부르며 인간적인 배려를 해주셨다. 배우가 연기할 수 있는 영역을 최대치로 넓혀주셨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2014년 TV조선 '백년의 신부'로 데뷔한 그는 '삼총사'(2014), '블러드'(2015), '그래, 그런거야'(2016), '불야성'(2016), '당신이 잠든 사이에'(2017), '슬기로운 감빵생활'(2018) 등에 출연하며 앞만 보고 달렸다.
지난해 출연한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누나'로 큰 사랑을 받은 그는 올해 '봄밤', 그리고 이번 영화에 출연하며 멜로 배우의 정점을 찍었다.
배우는 "연기는 하면 할수록 재밌고, 작품 할 때마다 인간 정해인으로서 배울 점을 얻는다"며 "안판석 감독님, 손예진 선배한테 배운 점을 습득해 대중에게 빨리 선보이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유열의 음악앨범'은 정해인의 첫 스크린 주연작이다. 그는 "큰 스크린에서 평가를 받아야 해서 어깨가 무거웠다"며 "드라마를 통해 이름을 알렸는데 영화로 넘어와 책임감이 더 컸다. 관객분들이 어떻게 보실까 너무 떨리고 긴장된다"고 고백했다.
정해인이 맡은 현우는 어릴 적 상처 때문에 중요한 순간 흔들린다. 미수와 잘 되려던 찰나 둘 사이를 헤집는 것도 상처다. 배우는 영화 속 현우에게 100% 공감했다.
가장 힘들었던 캐릭터는 '봄밤' 유지호였다. 극 중 아이가 있는 아빠 역할을 맡아 부성애를 연기해야만 했다. 경험이 없던 터라 힘들었고, 조심스러웠다. 배우들, 감독과 많은 대화를 하면서 유지호를 이해했다.
영화에서 가장 힘든 장면을 묻자 후반부 달리는 신을 꼽았다. 미수를 잡아야만 하는 현우의 애타는 심정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정해인이 달리니 애틋함이 배가 됐다. "언덕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달렸는데 죽는 줄 알았어요(웃음)."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는 현우가 경찰서에서 나온 뒤 친구들에게 소리를 지르면서 '멀쩡하게 좀 살자'라는 대사를 뱉는 신을 꼽았다. 친구들에게 한 말이지만 스스로 한 외침이란다. 미수에게 '가진 게 많으면 더 가지고 싶겠지만 난 강력한 한두 개 만 있으면 된다. 내게 너가 그렇다'고 한 장면을 찍을 때도 행복했다.
이전 작품들과 비슷한 멜로 장르이지만 캐릭터는 사뭇 다르다. 멜로에 연이어 출연했다고 해서 굳이 다른 모습을 연기하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글의 힘을 믿고 따라갈 뿐이다. 모든 캐릭터에 '인간 정해인'의 모습이 스며든단다.
정해인은 "좋은 작품에 출연하는 것 자체가 행복하다"며 "연기를 하고 싶지만 기회가 없어서 힘들어하는 분이 많다"고 말했다.
연이어 멜로 작품을 하면서 사랑에 대해 생각해봤을 법하다. "이번 작품은 사람과 청춘에 대해서 되짚어볼 수 있는 기회였죠. 작품을 찍으면서 사랑의 의미에 대해서 고찰하곤 합니다. 실제 연애 스타일도 아날로그적이죠. 사람을 오래 보는 스타일입니다. 저도 현우처럼 사람이나 물건을 오래 봐요. 정을 붙이면 웬만해선 떼진 않죠."
그간 멜로물에서 정해인이 맡은 역할을 보면 판타지적이다. 맑고 순수한 면은 그만의 매력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어두운 아픈 상처가 얼핏 보인다. "인간이 항상 밝을 수는 없잖아요. 자연스러운 부분을 녹여서 보여드리고 싶어요. 이번 작품에선 흔들리는 청춘을 붙잡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노력했습니다."
손예진, 한지민, 김고은 등과 멜로물에서 호흡해 환상의 케미를 보여줬다. 비결을 묻자 "상대 배우를 배려하며 연기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김고은과는 '도깨비'에 이어 두 번째 호흡이다. 그간 연상의 누나들과 호흡하나 이번에 동갑내기와 멜로 연기를 펼쳤다. 둘은 실제 연인 같은 케미를 뽐낸다. 정 감독과 이미 한번 호흡한 김고은에게는 도움을 받았다. 촬영장에 빨리 적응하게끔 큰 역할을 했다고.
영화에서 미수와 현우는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경험을 한다. 불안정한 상황에 있는 미수는 안정을 찾으려하고, 현우는 땅에 떨어진 자존감을 붙잡으려 한다. 정해인은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 자존감이 바닥을 친 상황에서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를 봐달라"고 했다. "촬영장에서 자존감이 떨어진 적이 많아요. 연기가 안 될 때 자존감이 흔들리죠. 인간 정해인이 흔들리면 버틸 수 없어요. 자존감을 회복하는 원천은 가족입니다."
정해인은 데뷔 후 비교적 빨리 사랑도 받고 지금의 위치까지 올라왔다. "감사하다"고 말한 그는 '톱스타'라는 수식어에 대해 "이제 고작 6년 연기했기에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한 분야에서 10년 이상 연기해야 연기 장인이라고 생각한다. 만족하는 순간 자만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많은 사랑을 받은 비결을 묻자 '캐릭터'라고 꼽았다. 캐릭터가 멋있어서 사랑받았단다. 극 중 캐릭터와 인간 정해인의 간극 속에서 사람 정해인을 지키려고 채찍질한다.
정해인은 '밥 잘 사주는 예쁜누나' 인터뷰 당시 너무 큰 사랑을 받아서 도망가고 싶을 정도로 부담스럽다고 토로한 바 있다. 지금은 어떨까 궁금했다. "도망치고 싶지 않아요. 다만, 순간순간 들뜨고 좌절하지 않으려 해요. 일희일비하지 않으려는 거죠."
'국민 연하남'이라는 수식어는 자칫하면 소비될 수 있다. 배우는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틀에 얽매이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내년 상반기 개봉할 영화 '시동'에서는 지금까지 모습과는 다른 모습을 선보일 거예요. 새로운 정해인을 보여드릴 겁니다."
누구나 알고 친해지고 싶고, 다가가고 싶은 정해인은 어떤 사람일까.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자란 청년"이라는 맑은 답이 돌아왔다. "부모님은 저의 이야기를 묵묵하게 들어주시는 분이시죠. 힘들 때마다 가족의 힘으로 이겨내요."
JTBC '비긴어게인3'를 통해 버스킹에 첫 도전했다. 예고편에서 그는 노래까지 잘했다. 쑥스러워한 그는 "최선을 다했다"며 맑은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