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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스웨덴은 진정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이석원 객원기자
입력 2019.05.25 06:25 수정 2019.05.25 06:28

<알쓸신잡-스웨덴㊿>5월 말 시작 백야로 태양의 향연 펼쳐져

북위 67도 북극권 도시 키루나, 24시간 해 지지 않는 신비 세계

<알쓸신잡-스웨덴㊿>5월 말 시작 백야로 태양의 향연 펼쳐져
북위 67도 북극권 도시 키루나, 24시간 해 지지 않는 신비 세계


스톡홀름 시청사가 건너다보이는 이바르 로스 공원(Ivar Los Park). 여름이 시작되면 많은 사람들이 태양을 맞기 위해 모이는 대표적인 곳이다.ⓒ 스톡홀름 시청사가 건너다보이는 이바르 로스 공원(Ivar Los Park). 여름이 시작되면 많은 사람들이 태양을 맞기 위해 모이는 대표적인 곳이다.ⓒ

스톡홀름을 기준으로 2019년 5월 24일 해 뜨는 시간은 오전 3시 57분, 해지는 시간은 오후 9시 33분. (참고 지난 해 12월 23일 기준 해 뜨는 시간 오전 8시 40분, 해 지는 시간 오후 2시 47분.)

바야흐로 스웨덴에 백야가 시작됐다. 북유럽은 이제 서서히 태양이지지 않는 무한한 태양의 향연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스웨덴은 남북으로 국토의 길이가 1570km, 최북단이 북위 69도이고, 최남단이 북위 55.5도다. 강원도 고성(북위 38.5도)에서 제주 서귀포(북위 33.2도)까지가 620km 정도인 남한을 참고한다면, 같은 기간이라도 스웨덴 전국의 기후를 하나로 규정할 수는 없다. 그래도 5월 말부터 스웨덴은 백야의 계절이 시작이다.

백야가 좀 더 극심한 북쪽 도시 키루나(Kiruna)는 요즘 새벽 1시 30분 경 해가 떠서 자정 무렵 해가 진다.

이런 현상은 6월 20일을 전후해서 극에 달한다. 그 때쯤 스톡홀름의 해 뜨고 지는 시간이 지금의 키루나 정도가 되고, 키루나는 해가 뜨고 지는 게 없어진다. 이때부터 3개월 이상 스톡홀름의 북쪽은 해가 지지 않는다. 서쪽으로 기울던 해는 지평선(또는 수평선) 위에서 평행으로 이동하다가 사라지지 않고 다시 떠오른다. 이게 진짜 백야인 것이다.

백야는 단지 태양이 떠 있는 시간의 의미보다 그 태양이 인간과 대지에 직접 드러나는 시간의 의미가 강하다. 즉 일조량의 문제다. 스웨덴의 6, 7, 8월은 건기다. 가끔 소나기가 잠깐 오기는 하지만, 3개월여의 시간동안 새파란 하늘에는 예쁜 모양의 새하얀 구름 조금과 극단적으로 빛나는 태양뿐이다. 워낙 습도가 낮다보니 찜통더위는 없어도 햇볕은 말할 수 없이 강렬하다.

스톡홀름 대학교 캠퍼스. 수업을 마친 학생들은 실내 도서관이나 카페보다도 푸른 풀밭에서 독서하고, 토론하고, 과제를 한다. 그들의 의상을 보면 학교가 아니라 해변인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스톡홀름 대학교 캠퍼스. 수업을 마친 학생들은 실내 도서관이나 카페보다도 푸른 풀밭에서 독서하고, 토론하고, 과제를 한다. 그들의 의상을 보면 학교가 아니라 해변인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스웨덴의 하늘이 찬란하게 빛나면 스웨덴 사람들은 모두 집 밖으로 쏟아져 나온다. 호숫가 바위나 짙푸른 초원은 물론 도심의 카페와 술집의 바깥자리며, 하다못해 거리의 벤치와 건물의 계단에도 몰려있다. 이미 집 발코니 뙤약볕 아래서 그릴을 꺼내 고기를 굽고, 훌훌 옷을 벗어던진 채 손에는 맥주를 들고 태양을 만끽한다.

해변이나 강가가 아니더라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최소한의 옷을 입는다. 그렇게 직장에서 일을 하고, 학교에서 공부를 한다. 그리고 그대로 거리에서, 숲에서, 호숫가나 건물의 발코니에서 온몸으로 태양을 받는다.

아무리 뙤약볕이라도 그늘을 찾는 이들은 없다. 아마 어느 공원의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있는 사람이라면 십중팔구는 한국 사람을 비롯한 아시아 사람일 것이다. 스웨덴 사람들은 그늘을 피해 햇빛을 찾는다. 해바라기라도 저렇게까지는 아닐 텐데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6, 7, 8월에 스웨덴 사람들이 ‘집단 과다 노출증’에라도 걸린 양, 뙤약볕에 제 살 익히는 카니발리즘 환자인 양 온몸으로 태양을 찾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지난 가을과 겨울과 봄을 이어온 긴 어둠과 흐린 날씨 때문이다. 백야를 그리워하게 만드는 극야 때문이다.

북위 67도에 있는 스웨덴의 북부 최대 도시 키루나는 9월 20일 경인 추분부터 다음 해 3월 20일 경인 춘분까지 극야의 계절이다. 10월 정도까지는 오전 11시가 넘어야 해가 뜨고, 오후 2시면 해가 지는 날이 많다. 세 시간 쯤 해가 떠 있다고는 하지만 낮이라고 부르기도 어렵다. 흐린 날이 부지기수라 어슴푸레 하다. 동지를 즈음한 12월 20일에 이르면 사실상 아예 해가 뜨지 않는다.

일조량은 비타민의 자연 섭취와 직결한다. 태양을 온몸으로 받지 않은 사람은 태양을 온몸으로 받은 사람에 비해 비타민이 부족하다. 비타민이 부족한 사람의 경우 우울증에 걸리기 쉽다는 것은 의학계 정설이다.

스톡홀름 인근 시그투나라는 오래된 마을의 호숫가 공원. 가족이 함께 나와 불밭에서 태양을 만끽하고 있다.ⓒ 스톡홀름 인근 시그투나라는 오래된 마을의 호숫가 공원. 가족이 함께 나와 불밭에서 태양을 만끽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복지 국가라고 불리는 스웨덴에서 과거 한국 보다 자살률이 높았던 것, 유럽 최고의 우울증 발병률 국가인 것이 바로 그 태양 때문이다. 6, 7, 8월을 뺀 나머지 9개월의 상당부분 태양을 접하지 못하고 사는 환경 때문이다.

그래서 스웨덴 사람들은 6, 7, 8월만 되면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미친 듯이 해를 온몸으로 맞아야 했다. 그리고 가능하면 옷이 몸을 가리지 말아야 했다. 겨울잠에 들기 전의 동물처럼, 그 몸에 햇빛을 충분히 저장해야 했다. 그것은 ‘태양을 즐기는’ 차원이 아니라 생존의 의미였는지도 모른다.

스웨덴 사람들은 별로 축복받지 못한 자연 환경 속에서도 가급적이면 밝고 친절하다. 그런 극단적인 자연 환경 조차 신에게서 받은 축복으로 생각하고, 그 축복을 즐기려고 애쓴다. 과거 자살하는, 하려는 사람도 많았고, 우울증이 범람한 탓에 길에서 이상행동을 보이는 사람도 많았지만, 그래도 스웨덴 사람들은 긍정적인 사고가 보편적이다.

예년보다 훨씬 태양의 축복이 빨리 찾아온 스웨덴의 거리는 사람도, 자연도 밝다. 작렬하는 태양 아래서, 해가 지지 않는 황홀함 아래서 맥주 한 잔 움켜쥐고 충분히 웃는다. 이 여름을 지나고 나서 찾아오는 긴 어둠의 시간에도 행복하려고.

글/이석원 스웨덴 객원기자

이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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