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정규직 전환?’ 정부 숫자 압박에 늘어난 건 ‘무기계약직’
입력 2019.04.02 06:00
수정 2019.04.01 17:58
국토부 산하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무기계약직 ‘무더기’ 증가
무기계약직으로 ‘고용안정지표’ 늘리기…“정규직화 진정한 의미 퇴색”
국토부 산하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무기계약직 ‘무더기’ 증가
무기계약직으로 ‘고용안정지표’ 늘리기…“정규직화 진정한 의미 퇴색”
작년 5월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주최로 열린 ‘위기에 처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화, 정부 책임 촉구 및 공공운수노조 투쟁 선포 기자회견’에 참석한 안명자 교육공무직본부 본부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문재인 정부의 핵심 공약 중 하나다. 이에 정권 초기 부터 공공기관들이 앞 다퉈 정규직 전환 사업을 진행 하고 있다.
이 가운데 국토교통부 산하기관의 정규직 전환자들이 정규직이 아닌 무기계약직으로 대거 전환된 사실이 확인됐다.
정부 산하 기관들은 정규직 전환 실적이 경영평가에 반영되기 때문에 정부가 제시한 가이드라인 대로 목표치를 달성 하기 위한 속도를 낼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무리한 압박을 가하고, 비정상적인 전환 결과에는 뒷짐을 진 채 숫자만 카운팅 하고 있다.
무기계약직은 고용기간의 측면에선 정규직과 동일하지만 ‘고용의 질’은 확연히 구분되기 때문에 정규직 전환의 진정한 의미는 퇴색됐다는 지적을 피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국토부 산하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무기계약직 ‘무더기’ 증가
작년 말 기준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17만4868명의 정규직 전환 결정이 완료됐다. 이는 2020년 정규직 전환 목표(20만5000명)의 85.4%에 해당한다.
2일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국토부 산하기관 대부분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로 무기계약직 인원이 무더기로 늘어난 상태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작년 4분기 기준 무기계약직 인원이 36명(현재 35명)으로 나타났다. 해당 인원은 지난해 정규직으로 전환됐다고 발표된 직원들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최근 2년간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1754명(2017년 1261명, 2018년 493명)이 모두 무기계약직으로 확인됐다.
한국철도시설공단이 지난해 정규직 전환한 347명도 현재 무기계약직인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교통안전공단도 작년 정규직으로 전환된 224명이 무기계약직에 포함됐다.
한국도로공사(EX)의 경우 올해 1월 1일부로 정규직이 된 안전업무 관련 직원 912명은 모두 무기계약직 형태로 전환됐다.
한국감정원도 마찬가지로 지난해 비정규직에서 정규직 전환된 33명이 모두 무기계약직인 상태다.
한국철도공사(KORAIL)는 지난해 정규직 전환 대상자 6769명 중 안전업무 관련 직원 1513명은 무기계약직이 아닌 일반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하지만 나머지 5256명은 계열사를 통해 직접고용 했다. 한국철도공사는 지난해 4분기 기준 무기계약직이 0명이지만, 계열사들은 ▲코레일관광개발 78명 ▲코레일네트웍스 1757.8명 ▲코레일로지스 39명 ▲코레일유통 117명 ▲코레일테크 542명의 무기계약직을 포함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1호 정규직 전환 사업장인 인천국제공항공사도 인천공항운영서비스, 인천공항시설관리 등 자회사를 통해 3119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자회사의 경우 경영공시를 따로 공개하지 않아 무기계약직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상태다.
◆법적문제 없지만 무기계약직과 정규직은 달라…“아쉬움 남아”
공공기관 입장에서는 정부 정책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을 따를 수밖에 없긴 하다. 더욱이 정규직 전환은 추가적인 예산이 크게 투입되지도 않으면서 경영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기존에 비정규직 용역직원을 고용할 때 드는 비용을 ‘용역사비’라고 한다”며 “직접고용 방식으로 바꿀 때 드는 인건비는 용역사비로 대체되는 수준이기 때문에 정규직 전환에 추가 비용이 크게 발생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경영평가 점수에 영향을 주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을 따를 수밖에 없다”면서 “무기계약직도 정규직이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정규직과 무기계약직은 다르다. 경영공시에도 정규직, 무기계약직, 비정규직으로 따로 구분된다.
쉽게 말해 무기계약직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있는 직군이다. 고용기간 측면으로만 보면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로 정규직과 무기계약직은 동일하다. 그러나 무기계약직은 연봉이나 승급 등 정규직과는 처우가 달라 별도의 직군으로 분류된다.
정부에서 발표한 ‘공공부문 정규직 가이드라인’에서도 큰 틀에서 무기계약직은 정규직 안에 포함돼 있긴 하지만 그 안에서 따로 분류된다. 특히 ‘무기계약직 등 차별해소 및 처우개선 사항’이 포함돼 있는 만큼 무기계약직이 일반 정규직보다 현저히 낮은 처우를 받고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때문에 정확한 표현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아닌 ‘비정규직의 무기계약직 전환’인 셈이다. 하지만 해당 공공기관들은 모두 ‘정규직 전환’으로 발표했다. 이에 눈가림식으로 숫자 채우기에 급급하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또한 일부 공공기관이 활용하고 있는 계열사 또는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 전환방식은 ‘또 다른 용역업체’ 설립과 다를 바 없다는 비판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정주호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비정규직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한 것은 고용의 안정성 측면에서 재계약의 부담을 덜어준 것 뿐이다”며 “연봉이나 처우, 복지 등 고용의 질과 같은 종합적인 측면에서는 비정규직과 크게 다를 바 없기 때문에 일종의 ‘고용 안정화 지표’를 높이기 위한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다만 업무 내용이 다른데 일반 정규직과 동일한 처우를 해줄 경우 기존 정규직들의 반발을 살 순 있다”고 덧붙였다.
류하경 민변 변호사는 “무기계약직은 법률상 용어는 아니지만 복리후생 측면에서 정규직과 차이가 있다”며 “요즘에 정규직화 한다고 하면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동일한 업무를 하면서 무기계약직과 정규직으로 나뉠 경우 불법이지만 업무 내용이 다를 경우 불법은 아니다”며 “하지만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의 취지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아쉬움은 남는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