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카카오톡
블로그
페이스북
X
주소복사

[기고] 해외운하 탐방기 - 미시시피강편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07.08.10 10:54
수정

<이명박-박근혜 정책 입체조명> 이명박의 ´한반도 대운하´<1>

박재광 미 위스콘신대 건설환경공학과 교수 "해외 사례 통한 객관적 데이터 제공"

박재광 미 위스콘신대 건설환경공학과 교수.
[들어가는 말]

내가 대학의 많은 일을 뒤로 하고 운하 답사에 나선 처음 동기는 단순하다. 첫째, 방학을 맞아 매일 빈둥거리는 아들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아버지로서의 의무감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인 아들은 위스콘신주 챔피언전에 전념한 덕에 아르바이트 자리를 놓쳤단다. 초등학교 때부터 입시공부에 시달렸던 내게 아들의 그런 여유가 곱게 보였을 리 없다. 아들과의 여행은 그러던 차에 결정된 것이다.

이번 답사의 주제를 ‘해외 운하’로 정한 것은 이왕이면 내 전공과 연관된 분야라야 결과가 유의미해질 수 있으며, 친정인 한국의 핫이슈로 떠오른 운하 타당성 공방에 대해 해당 분야 공학자로서 해외 사례를 통한 객관적인 데이터를 제공할 수 있다는 일종의 사명감 때문이다. 더구나 아들을 옴짝달싹 못하게 답사의 훌륭한 조수로 활용할 수도 있으니 금상첨화 아닌가.

22만km를 탄 10년 된 미니밴으로 미시시피강과 걸프만 연안수로, 텍사스를 방문하기로 했다. 이 차로 미국 많은 곳을 다녀 정도 들었고 믿음도 많다.

우선 한국 식품점에서 먹을 것을 잔뜩 사고 버너와 밥솥을 챙겨 여행을 시작했다. 미국에 산 지 23년째이지만 10여년 전부터 한국 음식에 대한 애착이 더 커졌다. 젊어서는 햄버거와 양식을 가리지 않고 먹었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한국에서 먹던 음식은 음식 이상의 의미다. 나는 법적으로는 미국 시민이다. 그러나 한국에 대한 애정은 날로 깊어간다. 시집 와서 친정 집을 생각하는 마음이 이와 같지 않을까. 친정이 잘 돼야 타국의 교포들도 떳떳하다.

아들과 함께 환경공학자로서 ‘한반도 대운하’에 대해 나름대로 판단을 내려보기로 작심한 이번 해외 운하 답사. 슬슬 시작해 보자.

1982년부터 3년 동안 영국에서 수학할 때 테임즈강의 수질개선에 영국 정부가 막대한 재정적 투자를 하는 것을 보고는 나라가 잘 살아야 환경보전도 가능하다는 점을 느꼈다. 그 당시 대처 수상이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방향을 선회하면서 야기된 많은 시위를 극복하지 못했다면 지금의 영국이 가능했을까. 그때 영국이 체질을 개선하지 않았다면 대영제국은 몰락하여 지금쯤 2류 국가로 전락했을지도 모른다.

대기오염 발생율 19배까지 감소
2002년 텍사스 유해물질 사고 건수 - 도로 1035건·기차 126건·운하 2건


미국은 유럽인들이 대륙 탐험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18세기부터 수로를 탐사하고 19세기 말부터는 본격적으로 강·호수·습지 등을 인위적으로 연결, 준설해 동부·중부·남부가 사방으로 관통하도록 만들었다. 대개는 유럽이 운하가 발달돼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미국도 운하를 매우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나라 중 하나다.

보스톤에서 플로리다 남단의 키웨스트까지 연결된 대서양 연안수로와 플로리다 아파라치만부터 텍사스 끝까지 연결된 걸프만 연안수로. 처음에는 ´해안을 따라가면 될 것을 왜 이런 수로를 건설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자세히 조사해보니 바다로는 일정 크기 이상의 배만 운행할 수 있으나, 연안수로는 일기의 영향을 덜 받고, 또 바지선 등 수심이 얕은 곳에서도 다닐 수 있는 배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국의 운하 운행에 이용되는 바지선.

텍사스 교통국에 따르면, 바지선 1척은 트럭 60대의 물량을 대체 수용할 수 있고 같은 양의 기름으로 9배나 더 먼 거리까지 화물을 운반할 수 있다. 대기오염 발생율도 7~19배까지 감소시키는 등 매우 효율적이고 경제적이며 환경친화적이라고 주장한다. 2002년 텍사스에서 발생한 유해물질 사고 건수로 보면 항공이 37건, 도로가 1035건, 기차가 126건이었으나 운하는 2건에 그쳐 가장 안전한 운송수단이라는 설명이다.

운하, 도로 발달한 미국의 친환경적인 보조운송수단

미국 중부 대평원에서 생산된 곡류는 미시시피강을 통해 걸프만으로 운송하거나 5대호와 기존의 하천을 이용한 운하를 통해 대서양으로 운반한다.

교통공학를 가르치는 우리 과 교수에 따르면, 도로는 승용차만 다니면 손상이 거의 없으나 화물차 때문에 수명이 수 년밖에 못 간다고 한다. 미국의 고속도로는 화물차의 천국이다. 미국 화물차의 길이는 한국 트럭의 2배 정도라서 옆을 지나칠 때마다 두려움이 앞선다. 미국 시카고에서 펜실베니아까지 가는 고속도로는 산악지대로, 매우 험하고 질주하는 트럭이 많아 가장 운전하기 싫은 도로다. 만일 5대호와 세인트로렌스강을 연결하는, 16개의 도크로 구성된 운하가 없었다면 트럭들이 줄을 서서 달리는 정말 무서운 도로가 됐을 것이다.

환경보전이란 면에서 산과 들판을 가로지르고 물을 건너는 도로보다 기존의 물길을 이용한 운하가 더 환경친화적이다.

고속도로 여러 곳에 사슴이 차에 치어 쓰러져 있다. 사람과 짐승이 공존하면서 발생하는 필연적인 사고다. 문득 ‘우리가 어떤 것 하나를 떼어내려고 할 때 우리는 곧 그것이 우주의 모든 것과 연관돼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한 ´시에라클럽´ 창시자 존 뮈어의 말이 떠오른다. 그는 인간만이 독보적으로 지구를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과 생태계의 보전에 대한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도로를 계속 건설하는 것보다 기존의 강을 연결해 물류를 운반하는 것이 환경보전 차원에서 더 좋은 방안인 것 같다. 한국의 4대 강도 예전에는 중요한 운송수단의 하나였다. 그러나 19세기 말~20세기 초, 땔감을 구하고 도로와 철로를 내면서 무분별하게 이루어진 벌목으로 토사가 하천으로 유입되고 그 결과 수심이 낮아져 큰 배가 못 다니게 됐다. 또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자연적으로 물길은 없어지고 말았다.

도로 건설, 자동차 소음, 배기가스에 의한 대기오염 등 20세기 현대문명이 야기한 환경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미국과 유럽이 물길을 지금까지도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한국도 이제라도 물길을 이용하는 지혜를 가졌으면 한다. 비(非)환경친화적인 도로를 무한정 건설할 수는 없지 않은가.

세인트루이스의 ‘관문’ 아치.

미시시피강은 길이가 3670km로 세계에서 14번째로 긴 강이나 산업 밀집도로 보면 환경적으로 가장 많은 부하를 받고 있다. 미시시피강에는 미네소타부터 뉴올리언즈까지 도크와 댐이 함께 있는 곳이 27개소이고 도크만 있는 곳이 10개소다. 댐을 만들어 홍수를 조절하고, 또 일정 수심을 유지하고 있지만 수위 차이 때문에 도크가 필요하다.

하류에는 주로 도크만 있고 댐은 없다. 도크와 댐이 함께 있어야 홍수가 나더라도 도크에 손상을 주지 않고 수량을 조절할 수 있으며, 상류의 수심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다.

도크는 1개만 있는 경우도 있으나 2개를 만들어 운항을 원만하게 하고, 또 선적에 이용하며, 유지·보수하는 과정에도 운하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곳이 많다.

캐나다의 운하는 운송수단으로 매우 많이 이용되고 있는데 겨울철에는 결빙으로 3개월 정도 운행을 못 하고 있다. 또한 도크 유지·보수로 수 일에서 2주까지 운하 운행을 중지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나다의 운하 의존도가 매우 높은 이유는 환경보전과 경제적인 측면에서의 이점 때문인 것 같다. 한국도 결빙이나 홍수 등으로 운하를 사용 못할 일수가 1~2개월 정도로 예상된다.

운하는 주로 포장할 필요가 없고 대량 운송을 요하는 곡류·유류·석탄 등과 무겁거나 부피가 큰 물건들을 운송하는데 유리하며, 기타 물류는 도로나 철도를 이용하는 운송수단에 비해 경쟁력이 없다.

첫번째 목적지는 미시시피강을 끼고 있는 가장 큰 도시 중의 하나인 세인트루이스다. 과거 미국의 중심에 위치해 번성한 도시였으나 현재는 쇠퇴하고 있다. 세인트루이스는 당시 상공업의 요지였으며, 운하를 통하는 물류는 모두 세인트루이스를 거쳐 간다고 하여 1966년 ‘관문(Gateway)’이라는 이름의, 높이와 스팬 길이가 각각 192m인 대형 아치형 기념탑을 세웠다. 또 그 안에는 공학적으로 기념비적인 곡선승강기를 설치하고 전망대도 만들어놨다.

저렴한 물류비용과 풍부한 물, 산업발달의 기본 요건

세인트루이스의 상수 취수탑.
예상한대로 정수장은 9.11테러 이후 방문이 불가능해 견학하지 못했다. 인구 100만이 넘는 미니아폴리스와 내가 사는 매디슨의 하수처리장 방류수가 도달하는 곳이 이곳 세인트루이스인데, 이곳을 지나는 강에서 수돗물을 취수해 공급하고 있다. 정수과정도 한국과 동일하지만 한국의 일부 정수장과 같은 고도처리는 하지 않는다. 운하로 사용되고, 또 상류에서 배출한 많은 도시의 하수처리장 방류수가 흘러들어 오는 이 강의 물로 만든 수돗물을 이곳 시민들은 거부감없이 마신다.

이곳에 사는 한국인들에 따르면, 미국에 온지 얼마 안된 사람은 정수기를 달거나 ´먹는 샘물´을 마시지만 수년 후에는 자연스럽게 수도꼭지에서 물을 받아 마신다고 한다. 이곳 수돗물 수질을 서울시의 일반 가정 수도꼭지에서 채취한 물 수질과 비교해보니 오히려 서울이 더 좋고 맛있는 물 기준에 근접해 있다. 한국의 유난한 물 불신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일 아닌가.

트럭과 기차로 운반된 곡류가 바지선을 이용해 전량 수출된다.

미시시피강에는 도박장으로 사용되는 선박들이 정박해 있는데 그 사이로 바지선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강폭은 300~1200m이며 곳곳에 모래사장이 노출돼 있어 지속적으로 준설해야만 선박 운행이 가능할 것 같다. 강의 양 옆으로는 곡물가공업체 및 기타 산업체들이 입주해 있고 바지선도 줄줄이 정박해 있다.

기차에서 옮겨 실은 곡류를 운반하는 바지선.

강가에는 노인이 한가롭게 낚시를 즐기고 있다. 물이 있는 곳은 자연스럽게 인간이 몰려 살게 된다. 미시시피강을 따라 산업이 발달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저렴한 물류비용과 풍부한 물은 산업체를 유치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요건이다.

세인트루이스도 도심을 재개발하고 지형학적 이점을 되살려 번영을 꿈꾸고 있는 듯 곳곳에 공사가 한창이다.

세인트루이스 정수장 취수지점 강 하류에서 낚시하고 있는 ´강태공´.

이제 미시시피강을 따라 엘비스 프레슬리의 고향인 멤피스와 미국에서 가장 못 산다는 미시시피주를 지나 뉴올리언즈로 향한다. 산 하나 없이 평평한 광야에 심어져 있는 곡식들을 보면서 미 대륙은 신이 축복을 내린 곳이라는 말이 다시 떠오른다.

만년 이상 비옥한 미 대륙에서 변변한 국가나 유적 하나 남기지 않고 자연 그대로 소부락을 형성하면서 평화롭게 산 인디언. 그리고 이민 역사 200여년 동안 미국 전역에 철도, 도로, 운하, 항만, 댐, 공항 등의 기반시설을 건설하고 수자원을 개발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나라를 만든 미국인. 미래의 역사학자들과 후대 사람들은 과연 이들 중 어느 쪽이 미 대륙에서 잘 살았다고 평가할까. 숙고해볼 일이다. [박재광 미 위스콘신대 건설환경공학과 교수]

'기고'를 네이버에서 지금 바로 구독해보세요!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관련기사

댓글 0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