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수석님, 수사권이 없는데 임의제출을 받는다고요?
입력 2019.01.06 03:00
수정 2019.01.06 20:05
靑특감반은 검찰 같은 수사권 가지고 있지 않아
수사권 전제된 휴대폰 임의제출, 애초에 불가능
조국, 잘못된 발언 바로잡고 검찰 조사 임해야
靑특감반은 검찰 같은 수사권 가지고 있지 않아
수사권 전제된 휴대폰 임의제출, 애초에 불가능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지난달 31일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최교일 자유한국당 의원과 '휴대전화 임의제출'을 놓고 공방을 벌였다.
최교일 의원은 민정수석실 산하의 청와대 특별감찰반이 외교부·기획재정부·보건복지부 공무원들의 휴대전화를 빼앗아 포렌식한 것을 문제삼았다. 조국 수석은 "우리는 강제수사권이 없어 임의제출을 요청한 것"이라며 "자필로 서면 동의를 제출하며, 우리가 겁박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맞섰다.
경찰관이 "잠시 서까지 같이 가실까요"라고 물었을 때, 함께 가면 '임의동행'이 된다. 경찰이나 검찰에서 출석요구서가 왔을 때 조사를 받으러 나가면 '임의출석'이다.
이처럼 형사법 관련해 '임의'라는 것은 수사권이 있는 경찰·검찰 등이 영장 등 강제력에 의하지 않고 어떤 요구를 했을 때 따르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임의제출'도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하고 집행할 수 있는 강제수사권이 있는데, 굳이 영장을 발부받지 않고 제출을 요구했을 때 따르는 것이다. 수사권이 없는 사람이 제출하라고 요구했을 때는 자필 서면동의 아니라 설령 혈서를 썼다고 하더라도 '임의제출'이 될 수는 없다.
조국 수석 본인이 시인했듯이 청와대 특별감찰반에는 강제수사권은 물론 수사권 자체가 없다. 법원에 구속영장도, 압수수색영장도 청구할 수 없다. 수사권이 전제되지 않은 '임의제출'이란 존재할 수 없는 개념이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임의제출이란 수사권이 전제되는 개념"이라며 "수사권 없는 청와대 특별감찰반은 임의로 휴대전화기를 포렌식할 수가 없고, 포렌식할 목적으로 임의제출을 받았다면 그 자체로 불법"이라고 설명했다.
정승윤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3일 페이스북에서 "임의제출은 압수의 한 종류"라며 "임의제출의 대전제는 수사권이 있는 검사와 사법경찰관리에게만 허용된다"라고 부연했다.
이어 "조국 수석 말대로 '동의가 불법을 조각한다'는 논거에 따르면, 사기업 업주도 직원들의 휴대전화를 (자필 서면동의만 받으면) 임의제출 받을 수 있다는 것인데, 건전한 상식을 가진 시민이라면 이러한 결론에 동의할 수 없을 것"이라며 "공무원 개인의 휴대전화를 임의제출 받은 행위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라고 결론을 내렸다.
형사법 전공으로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교수까지 지낸 조국 수석이 어떻게 "강제수사권이 없어 임의제출을 요청했다"는 말을 했을까. 이렇게 짧은 문장에서 모순을 빚기도 쉽지 않다. 알면서도 모른 척한 것일까, 정말 몰랐을까.
사기업업주도 휴대폰 임의제출받는 세상 원하나
조국, 잘못된 발언 바로잡고 검찰 조사 임해야
조 수석의 오상방위(誤想防衛)에 대한 추억이 떠오른다. 조 수석이 서울법대 교수 시절, 형법총론을 강의하면서 있지도 않은 오상방위에 관한 조문을 법전에서 찾다가 실패했다는 일화다. 본인이 직접 부인했다고도 하며, 조 수석이 형법총론을 설강했던 학기와 소문이 서로 말이 맞지 않는 문제도 있어,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믿지는 않고 있다.
문제는 왜 그런 소문이 생명력을 얻어 그 무렵의 재학생·졸업생들 사이에 널리 퍼지게 됐느냐는 점이다. 한 변호사는 "(조 수석 재직 당시 함께 형사법을 담당했던) 신동운 교수나 이용식 교수가 그랬다고 누가 소문을 지어냈다면 실없는 소리 취급을 당했을 것"이라며 "조국 교수니까 (소문이 살았다)"라고 말했다.
조 수석이 2011년 4월 트위터에 당시 제리 로이스터 전 감독의 뒤를 이어 롯데 자이언츠의 지휘봉을 잡은 양승호 감독을 향해 "적응기간을 많이 드리고 방관할 수는 없다. 프로 아닌가"라고 일갈했을 때, 학내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조국 교수님, 그만 본업에 충실해달라"는 반응이 올라오기도 했다.
누구보다 그를 가까이에서 겪었을 학생들의 시선이 이렇다. 그럼에도 조 수석이 수사권이 전제되지 않은 임의제출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몰라서 국회에서 그런 발언을 했을 것이라고 믿고 싶지는 않다. 프로 아닌가.
그렇지만 서울대 법대 형법학 교수를 지냈으며, 청와대 민정수석인 그가 국민에게 생중계되는 국회 회의장에 나와 "강제수사권이 없어 임의제출을 요청했다. 자필로 서면 동의를 제출한다"고 말한 탓에 사회에서는 한바탕 혼란이 일 우려가 있다.
회사 감사팀에서는 직장인들의 자필 서면동의를 받은 뒤 휴대전화를 '임의제출' 받으려 들 것이다. 아르바이트생이 근무시간 중에 휴대전화로 '딴짓'을 했나 싶어 업주가 자필 서면동의를 받고 휴대전화를 '임의제출' 받으려 할 수도 있다.
당 사무총장이 사무처 당직자의 자필 서면동의를 받고, 국회의원이 의원실 보좌진의 자필 서면동의를 받고 휴대전화를 '임의제출' 받는 일도 상상할 수 있겠다.
조국 수석은 지난 2011년 9월 한 영화 전문 온라인 커뮤니티에 자신을 비방하는 사용자가 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가입해 "나의 전공은 형법"이라며 "제대로 사과하지 않는다면 나의 지식과 시간을 투여해 형사처벌 받도록 할 수 밖에 없다"고 경고해서 해당 사용자의 사과문을 받아낸 적이 있다.
조 수석이 온라인 커뮤니티 사용자로부터 사과문을 받아내기 위함이 아니라, 국민에게 올바른 지식을 알리는데 "나의 전공은 형법"이라고 내세우는 모습을 봤으면 좋겠다.
지금이라도 조 수석이 기자회견을 자청해 "국회에서의 내 발언은 사실 잘못됐다. 수사권이 없는 그 누구도, 설령 자필 서면동의를 받더라도, 다른 사람의 휴대전화를 마음대로 '임의제출' 받을 수 없다"며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와 관련한 나의 혐의에 대해서는 검찰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제대로 알린다면 전공을 제대로 살리는 길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