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직권남용죄를 언제까지 보검으로 쓸 것인가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18.12.04 06:00 수정 2018.12.03 18:01

<칼럼> 어떻게든 죄 만들려 악착같이 찾고 적용

압수수색도 '증거' 찾는 게 아니라 '혐의' 찾아

'죄형법정주의'의 엄격함, 완전히 다르게 이해

<칼럼> 어떻게든 죄 만들려 악착같이 찾고 적용
압수수색도 '증거' 찾는 게 아니라 '혐의' 찾아
'죄형법정주의'의 엄격함, 완전히 다르게 이해


대법원 전경. 작금의 사법 실태에 비춰볼 때, 자유 평등 정의라는 단어가 생경하게 다가온다(자료사진).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대법원 전경. 작금의 사법 실태에 비춰볼 때, 자유 평등 정의라는 단어가 생경하게 다가온다(자료사진).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필자는 다른 일도 하지만 변호사 일도 하다보니 지난 3일 오전 직권남용죄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또 한 분의 전 정부 고위직의 영장실질심사 법정에 변호인으로 직접 나갔다.

4년 전 세월호 사고와 관련된 혐의다. 세월호를 침몰시킨 책임이 아니라 사고 이후에 소관 임무를 잘못 수행했다는 혐의다. 자신은 통상적 업무를 했는데 검찰은 직권남용죄로 문제삼고 있단다.

당사자는 더했겠지만 필자 역시 고민에 잠을 설쳤다. 어떻게 변론하면 구속영장이 기각되게 할 수 있을까,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보지만 혹시 영장이 기각되면 재청구한다고 주변을 뒤져 곤욕을 더 치르지는 않을까, 그래도 일단은 영장은 기각해달라고 악을 써야 하나 등 변호인으로서 많은 고민이 들었다.

맡은 사건도 많지 않고 특히 영장심사 법정에 가는 일은 드물지만 이 분이 처음에 도움을 청해왔을 때 필자는 선뜻 돕겠다고 했다. 언제까지 우리가 세월호 문제로 당시 공직자의 업무수행을 문제삼아야 하는지도 한심하고, 직권남용죄와 같이 추상적인 죄목을 마치 보검처럼 이렇게 남용하는 것도 언제까지일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죄형법정주의가 대원칙인 것은 아무리 잘못을 해도 법에 그것이 죄(罪)로 규정되어 있어야 형(刑) 즉 벌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어떤 행위가 잘못이고 죄가 되는지는 정말 '엄격하게' 해석해서 범인을 놓치더라도 억울한 사람이 나오지 않게 해야 한다고 법대 다닐 때, 그리고 고시 공부를 할 때 배웠다.

검사로 재직할 때 필자도 처음에는 경험 부족으로 실수가 왜 없었겠는가. 그래도 어느 시점부터는 사람을 벌하고 구속할 때 형법 조항을 엄격하게 해석·적용하라는 의미를 이런 식으로 이해하고 후배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쳤었다.

죄가 되는 쪽이 아니라 죄가 안 되는 것은 아닌지를 먼저 따져보라, 죄가 안 되는 것으로 볼 논리나 사정은 없는지, 벌을 주기 애매하거나 곤란한 사유는 없는지 등을 이렇게 저렇게 최대한 따져보고 그래도 죄가 된다고 판단되면 기소를 하든지 구속을 하든지 하라고…….

이 말을 좀 유식하게 표현하면 형사소송법 교과서에 나오는 "의심스러울 때는 피의자의 이익으로"다.

그런데 요즘 실태를 보면 그 반대로 어떻게든 죄가 되는 것 아닌가 하면서 죄로 만들 논리를 악착같이 찾고 적용하고, 압수수색도 '증거'를 찾는게 아니라 '혐의'를 찾는 것 같고, 죄가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 더러 나와도 어떻게든 내가 보고 싶고 믿고 싶은 방향으로만 밀고 나가는 경우가 너무나 많아보인다.

그것을 엄격한 법집행으로 착각한다. 법이 엄격해야 한다는 의미를 완전히 다르게 이해하는 것이다.

직권남용죄니 정치관여죄니 하는 추상적 죄명으로 과거의 공무수행을 단죄하는 경향이 이렇게 자꾸 높아만 가면 우리 사회를 오늘의 수준까지 만들어 온 공직자들의 도전과 혁신 정신, 그리고 법에서도 허용하는 재량적 판단이 점점 사라지게 될 것이다.

어떤 권력이든 그 권력은 유한하지만, 알고도 혹은 모르게 그 권력을 남용하는 해악으로 우리 공동체의 발전과 성장이 멈추게 될까봐 그것이 걱정이다.

글/ 석동현 전 서울동부지방검찰청 검사장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댓글 0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