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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대만 탈원전 정책 폐기…한국은?

조재학 기자
입력 2018.11.26 13:50
수정 2018.11.26 19:32

대만의 탈원전 정책 폐기 “반면교사 삼아야”

입법절차 없이 추진된 탈원전 정책 수정해야

대만의 제3원전 전경.ⓒ연합뉴스

대만의 탈원전 정책 폐기 “반면교사 삼아야”
입법절차 없이 추진된 탈원전 정책 수정해야


대만 정부가 지난 24일 국민투표를 통해 탈원전 정책을 폐기함에 따라 국내에서도 현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탈원전 정책을 재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5일 대만 중앙선거위원회에 따르면 전날 지방선거와 함께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2025년까지 모든 원전 가동을 중단하도록 한 전기사업법 조항(95조 1항) 폐지에 동의하는가’를 묻는 안건이 가결됐다.

국민투표 결과 전체 유권자의 29.84%(유효 투표 참가자의 59.49%)인 589만5560명이 탈원전 조항 폐지를 찬성했다.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은 2016년 대선에서 “2025년까지 원전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공약했으며, 지난해 1월 전기사업법을 개정했다. 이후 대만에 있던 원전 6기 중 4기가 가동중단됐다. 또 대만 총 전력생산에서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2년 16.1%에서 지난해 8.3%로 절반가량 줄었다.

◆현실 직시한 대만 국민…이상 대신 현실 선택
대만 국민들이 탈원전 정책 폐기를 결정한 이유는 전력수급불안 등 이에 따른 부작용을 경험했기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20%를 상회하던 대만의 전력예비율은 2015년 적정예비율(15%)보다 낮은 11.5%로 하락했으며, 지난해 8월 8일 1.7%로 급감했다. 결국 지난해 8월 15일 대만에서는 약 5시간 동안 828만 가구가 정전되는 ‘대규모 정전(블랙아웃)’이 발생했다.

또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면서 동시에 석탄화력발전 비중을 줄이기에는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점도 주요원인으로 보인다.

차이잉원 정부는 탈원전을 하는 대신 2025년까지 액화천연가스(LNG) 비중을 전체 발전용량의 50%로,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20%로 늘린다는 목표를 내놓았다. 지난해 대만의 원전 비중은 8.3%로 2012년 대비 7.8%p 줄었지만, 석탄화력발전 비중은 지난해 46.6%로 2012년(48.5%)보다 1.9%p 감소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재생에너지 비중은 4.3%에서 4.6%로 큰 차이가 없었다.

대만 국민들은 이번 국민투표에서 ‘화력발전 생산량을 매년 평균 최소 1% 줄이는 데 동의하는가’라는 안건을 76%의 찬성으로 가결했다. 미세먼지와 온실가스를 상대적으로 많이 배출하는 석탄화력발전 대신 원전을 선택한 것이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깨끗하고 안전한’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면 이상적이겠지만 현실에서는 비용이 들고, 부작용도 따른다”며 “대만 국민들은 현실을 즉시하고 이상을 포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주 교수는 “국내에서도 국민 10명 중 7명이 ‘원전 확대 또는 유지’를 찬성하고 있다”며 “‘원전 제로(0)’를 지지하는 국민은 6.7%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한국과 판박이 대만…전문가 “반면교사 삼아야”
에너지 의존도가 높고 전력계통이 고립된 대만은 한국과 상황이 유사하다.

대만은 에너지사용량의 95% 이상을 수입 에너지에 의존하고 있다. 국가간 전력계통망이 연계된 유럽과 달리 전력계통이 고립된 섬이라는 점도 한국과 대만이 가진 맹점이다. 당장 전력수요가 급상승하면 주변국가에서 전기를 사올 수 없어 대규모 정전을 막을 길이 없다.

특히 대만은 ‘불의 고리’로 불리는 환태평양지진대에 속해 있다는 점에서 한국보다 원전을 운영하기에는 불리한 조건이다. 대만 제1원전과 제2원전은 수도 타이베이에서 반경 30㎞ 내에 위치해 있다.

전력수급 측면에서 조건이 동일하지만 한국보다 지진에 대한 불안감이 큰 대만이 탈원전 정책 폐기를 결정한 것이 국내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안정적인 전력수급을 최우선 과제로 삼은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발전설비 확충을 추진한 결과 당장 전력수급에는 이상이 없지만, ‘재생에너지 3020’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면 2030년에는 전력수급불안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과 교수 “정부는 탈원전 정책이 60년간 진행되는 장기정책이라고 한다. 60년은 5년 정권이 12번 바뀌는 시간”이라며 “5년 내 성과가 나오는 정책이라면 추진할 수 있지만, 장기정책을 국민적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해선 곤란하다”고 말했다.

◆법 개정으로 추진한 대만…정권의 의지뿐인 한국
대만의 탈원전 정책 추진과 폐기 과정에서 입법절차를 거친 반면 한국은 입법기관인 국회를 무시한 채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만 정부는 지난해 1월 ‘2025년까지 모든 원전 가동 중단’을 골자로 전기사업법을 개정했다. 대규모 정전 사태를 겪으며 탈원전 정책에 대한 반대 의견이 거세지자 탈원전 정책 폐기를 지난 24일 국민투표 안건에 상정했다.

반면 한국은 지난해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권고안에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와 함께 원전 비중 축소를 담았다. 이어 탈원전 정책을 주요내용으로 한 에너지전환 로드맵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됐고, 지난해 말 월성 1호기 조기폐쇄와 신규 원전 백지화, 노후 원전 수명 연장 불허 등을 담은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수립됐다.

정용훈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는 “대만은 입법절차를 통해 ‘탈원전’법을 만들고, 법안 폐기를 위해 국민투표를 진행했다”며 “한국은 정권의 의지로만 추진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 교수는 “탈원전 정책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떠안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원자력 산업이 없는 대만과 달리 한국은 탈원전 정책 추진으로 원자력 산업계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점도 문제로 거론된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도 “해외에서 원전을 수입한 대만과 달리 한국은 원자력 산업을 육성해왔다”며 “대만의 탈원전은 에너지믹스에서 원전을 제외시키는 정도이지만, 한국은 산업 붕괴를 초래할 수 있는 중대한 문제”라고 말했다.

조재학 기자 (2jh@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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