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실험 OUT"…식품 넘어 화장품도 '비건' 바람
입력 2018.08.19 06:00
수정 2018.08.19 06:07
동물실험 규제 및 기업 자발적 참여 증가…비건 화장품 시장 성장세
'착한 소비' 트렌드 확대…동물 보호 캠페인으로 인식 변화 이끌기도
# "마스카라가 눈 점막을 자극하는 정도를 평가하는 실험에 쓰이는 토끼는 수개월간 마스카라를 바르다 눈이 멀어버린다고 해요. 아름다워지기 위해 쓰는 화장품 이면에는 잔인한 동물실험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 '크루얼티 프리(Cruelty Free·동물실험을 하지 않은)'의 비건 제품만 쓰고 있어요."
동물성 성분을 사용하지 않고, 제품개발에도 동물 실험을 활용하지 않는 '비건 화장품'이 국내외 시장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다. '착한 소비' 풍토가 확산되면서 먹는 것뿐 아니라 입고 바르는 것까지 제조 과정의 윤리성을 따지는 소비자가 증가한 영향이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전세계 비건 화장품 시장은 연평균 6.3% 성장하고 있으며, 오는 2025년에는 208억 달러(약 23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연합(EU)은 2013년부터 동물실험을 한 화장품의 역내 판매를 금지하고 있다. 지난 5월 유럽의회는 오는 2023년까지 세계적으로 동물실험이 근절되도록 EU가 외교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유럽의회는 전세계 국가 중 80%가 여전히 동물실험을 거친 화장품 판매를 허용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우리나라 현행 화장품법은 작년 2월부터 동물실험을 금지하고 있지만 대체 실험법이 없는 경우 등에 한해서는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사용된 실험 동물의 수도 308만여 마리로 전년 대비 7.1% 증가했다.
법적 규제가 도입되기 이전부터 국내 기업들은 자발적으로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아모레퍼시픽은 2008년부터 화장품 원료와 완제품에 대한 동물실험을 금지하고 있고, 2013년부터는 협력업체에 대해서도 같은 방침을 적용하고 있다. LG생활건강도 2012년 이래로 전 제품에 동물실험을 하지 않고 있다.
유해성분이나 환경 파괴 등에 경각심을 느끼는 소비자가 늘면서 '착한 성분'의 인기는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H&B스토어 올리브영은 올해 1분기 스킨케어 카테고리에서 성분으로 차별화한 제품들의 매출이 전분기(2017년 4분기)에 비해 200% 증가했다. 대부분 자연 유래 성분의 저자극 화장품으로, 올리브영에 입점한지 1년도 되지 않은 중소기업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동물실험을 하지 않고 유해성분을 배제했다는 점을 부각한 스타트업 '이즈앤트리'는 입점 첫 달에 비하면 월 매출이 13배 뛰었다.
천연·유기농 성분을 사용하는 일부 화장품 기업들은 자사 제품을 홍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동물실험을 잔혹성을 알리는 캠페인에 나서며 업계 안팎의 인식 변화를 이끌고 있다.
미국 바디케어 브랜드 닥터 브로너스는 동물실험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동물성 원료를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2014년에는 모든 상품에 대해 미국 비영리단체 '비건 액션'의 비건 인증을 받았고, 영국의 '비건 소사이어티'에도 가입했다.
매년 수익의 일부를 동물보호 단체에 기부하고, 공장식 축산으로 고통 받는 동물을 구조하는 활동도 진행 중이다. 지난해 닥터 브로너스 미국 본사는 멸종 위기종인 쥐돌고래 보호를 위해 국제해양야생동물보호단체 '씨 셰퍼드'의 캠페인에 쓰일 선박 비용 전액을 기부하기도 했다.
영국계 화장품 브랜드 더바디샵은 지난 4월 열린 반려견 마라톤 '댕댕런'을 후원했다. 마라톤 행사 당일에는 별도 부스를 마련해 국제연합(UN)에 화장품 동물실험 금지와 관련된 청원을 위한 서명 운동도 진행했다. 향후 800만명의 서명이 모이면 UN에 청원을 제출할 계획이다.
1976년 론칭한 더바디샵은 동물과 환경을 보호하고 윤리적인 제품을 만든다는 게 브랜드 철학이다. 국내에선 배우 공유와 함께 화장품 동물실험 반대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발색이나 지속성 테스트에 동물실험이 활용되는 색조 화장품에서 비건을 고집하는 제품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프리미엄 뷰티 브랜드 디어달리아는 '천연 성분의 메이크업 제품은 기능성과 심미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고정관념에 반기를 들고 클린 뷰티(Clean Beauty)를 지향하고 있다.
닥터 브로너스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기업들의 비윤리적이고 무책임한 동물실험을 멈추는 데 큰 영향을 발휘하고 있다"며 "화장품, 생활용품 등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제품에 죄 없는 동물들의 희생이 따르지는 않았는지 관심을 갖는 것만으로 우리는 동물보호에 일조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