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인터뷰] 조민수 "배우로서 잊히지 않아 행복해요"
입력 2018.06.27 09:11
수정 2018.06.29 09:32
영화 '마녀'서 닥터 백 역
"선물처럼 오는 기회 기뻐"
영화 '마녀'서 닥터 백 역
"선물처럼 오는 기회 기뻐"
배우 조민수(53)는 1986년 KBS 특채 탤런트로 데뷔했다. 시작은 꽤 화려했다. 이후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1990), '모래시계'(1995), '피아노'(2001),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2009), '내 딸 꽃님이'(2011), '피에타'(2012), '결혼의 여신'(2013), '관능의 법칙'(2013)등에 출연했다.
그가 주연한 '피에타'는 제69회 베니스국제영화제 폐막식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조민수는 이 영화에서 잊히지 않는 연기를 선보이며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배우가 이런 작품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오랜 공백기를 가져도 대중은 그 배우의 작품을 기억한다.
'관능의 법칙' 이후 '마녀'로 스크린에 복귀한 조민수(53)를 26일 서울 소격동에서 만났다.
'마녀'는 비밀을 간직한 여고생 자윤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담았다. 조민수는 자윤의 잃어버린 과거를 알고 있는 '닥터 백' 역을 맡았다. 원래 닥터 백 역은 남성 캐릭터였다. 조민수는 영화의 모든 신이 재밌고, 설렜다고 고백했다.
자윤을 중심으로 한 영화라 닥터 백의 전사는 없다. 배우는 성격, 스타일, 걸음걸이 등을 연구했다. "숙제 같은 캐릭터였는데 닥터 백을 살아 있는 사람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닥터 백은 사회성도 없고,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아본 적도 없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사랑을 줄 줄도 모르죠. 캐릭터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최대한 잘 표현하려고 노력했어요."
'마녀'는 기존 한국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스피디하고, 파워풀한 액션을 선보인다. 시리즈물의 가능성도 엿보이는 작품이다. 조민수는 "맞춤형 영화가 쏟아지는 요즘, '마녀' 같은 영화가 있어야 한다"면서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감독과 상의하며 이해했다"고 설명했다.
후반부 장면에 대해선 "세계의 확장성을 보여주고자 했다"며 "2부를 기다리게 하는 장면"이라고 강조했다.
오랜만에 스크린에 컴백한 그는 "남성 캐릭터를 내게 던져 줘서 고마웠다"며 "모든 게 고민이었지만, 또 모든 게 재밌었다"고 밝힌 바 있다. 배우는 영화에 대한 애착이 컸다. "'마녀'가 낯설지만 동양 히어로물 같은 느낌이 났으면 했어요. 낯설지만 우리가 한 번쯤 시도해 볼만한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대본을 봤을 때 호불호가 갈릴 것이라고 예상하긴 했습니다. 배우들끼리 후속편에 대해 상상하기도 했어요. 다들 욕심이 넘쳐요(웃음)."
배우는 박 감독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무엇보다 현장이 참 좋았고, 기록처럼 남을 작품이란다.
화려하게 데뷔한 조민수는 배우로서 복 많은 인생이라고 털어놨다. 하지만 '인간 조민수'로는 힘든 시간을 겪었다고 얘기했다. 소극적인 성격이었던 그는 경제활동을 위해 여상을 졸업했다. 이후 관계자에 의해 발탁됐고, 전자제품 모델로 연예계에 발을 내밀었다. 자아실현보
다 경제활동이 우선이었던 터라 광고 모델에 집중하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광고 모델로서의 가치도 떨어졌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당시 스물 두 살 이었는데 생활고였죠. 연기를 열심히 한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이쪽에서 활동하려면 연기해야 한대서 했어요. 근데 연기를 하려고 현장에 가니 너무 힘들더군요. 다들 절 이방인 취급해서 많이 울었습니다."
조금씩 배운 연기를 알아본 사람이 늘었다. 일이 봇물 터지듯 터졌다. 이후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창피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연기에 매진했다. 당시엔 지금처럼 매니지먼트가 없었다. 조민수는 오롯이 혼자였다. 혼자 겪어낸 덕에 단단해졌단다. 소심한 성격도 적극적으로
바꾸어야만 했다. 그래야 살아남으니까. "울지 않으려면 남성적인 성격으로 변해야 했어요. 스물에 시작한 사회생활이 너무 힘들었죠. 그래도 잊히지 않는 작품이 있는 건 배우 조민수에게 고마운 일입니다. 선물처럼 오는 기회가 있거든요. 배우는 작품으로 남는 존재거든요."
인간 조민수로는 어떨까. 조금은 슬픈 답변이 돌아왔다. "배우는 오랫동안 자기가 최고라는 착각 속에 살아요. 저는 혼자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견뎠어요. 마흔이 돼서야 사람이 됐죠. 호호. 어릴 때는 영악해서 잘 몰랐어요. 사람으로선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별로라고 생각해요. 옆에서 쓴소리하는 사람이 없으면 잘못된 길로 빠집니다."
요즘엔 대형 매니지먼트사가 연예인들을 상품처럼 만들어낸다. 배우는 "그런 시스템은 아이들을 성장을 아프게 만든다"면서 "후배들이 연예계를 떠날 때 마음이 아프고, 공감한다"고 했다. "그건 그들의 잘못이 아니에요. 다들 힘들어하고 아파합니다. 다만 표현을 안 하는 거죠."
4년 만에 활동을 시작한 그에게 '마녀'는 특히 고마운 작품이다. "다작 배우가 아니라서 앞으로 몇 작품을 더 할지는 모르겠어요. '마녀'는 기록이 될 만한 작품이 될 것 같아요. 주어지는 작품마다 최선을 다해서 잘 마무리할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