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무 회장 별세] 'LG웨이' 새로 연 '혁신적 보수'
입력 2018.05.20 11:18
수정 2018.05.20 12:11
주요 고비마다 '선제적 대응'으로 성장 이끌어
'인화'와 '승부사' 면모 공존
주요 고비마다 '선제적 대응'으로 성장 이끌어
'인화'와 '승부사' 면모 공존
20일 오전 별세한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보수적인 LG가의 유교적 가풍을 이어받으면서도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혁신으로 회사를 성장시킨 ‘혁신적 보수’의 모범사례로 이름을 남긴 인물이다.
1945년 2월10일 경상남도 진주에서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의 장남으로 태어난 구본무 회장은 창업주인 구인회 전 회장과 구자경 명예회장의 뒤를 이어 장자승계 원칙에 따라 1995년 LG그룹의 총수의 자리에 올랐다.
구본무 회장은 계열사 부장에서 시작해 20년간 다양한 업무를 거쳐 차근차근 단계를 밟으며 경영수업을 쌓은 뒤 그룹 전체의 지휘를 맡은 ‘준비된 CEO’이기도 했다.
연세대학교를 거쳐 미국 애슐랜드대학교를 졸업하고, 클리블랜드 주립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은 구 회장은 1975년 LG화학 심사과 부장으로 LG에서의 근무를 시작해 1979년 LG화학 유지총괄본부 본부장, 1980년 LG전자 기획심사본부 본부장을 거쳤다.
이후 1981년 LG전자 이사로, 1984년 LG전자 일본 동경주재 상무로, 1986년에 회장실 부사장으로, 1989년 LG그룹 부회장으로 승진하는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1995년 LG그룹 회장직에 올랐다.
지금의 ‘LG시대’는 구본무 회장이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 회장은 회장취임 직전인 1994년 부회장으로서 그룹 명칭을 ‘럭키금성’에서 ‘LG’로 바꾸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그룹 CI 변경 작업이 진행되자 “이미 국내에서 ‘럭키금성’이 널리 알려져 있는데 굳이 바꿔야 하는가”하며 주변의 반대도 심했었다. 하지만 구 회장은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CI 변경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해 뚝심 있게 추진했다.
당시 심벌마크를 선정하는 과정에서도 구 회장의 의지가 많이 반영됐다. 그는 여러 가지 안들 중에 세계, 미래, 젊음, 인간, 기술 등의 의미를 포용하고 경영이념인 ‘고객을 위한 가치창조’ ‘인간존중의 경영’을 형상화했다고 판단하고 현재 LG의 심벌마크인 ‘미래의 얼굴’을 최종적으로 결정해 CI를 완성했다.
LG의 상징과도 같은 ‘정도경영’ 역시 구본무 회장이 남긴 유산이다. 구 회장은 신년사 등 그룹과 관련된 공식석상에 설 때마다 ‘정도경영’을 강조해왔으며, 실제로 취임 직후 ‘LG윤리규범’을 제정하고 사이버 신문고를 운영하는 등 기업 내 투명 경영을 체계화했다.
구 회장의 의지에 따라 LG그룹은 각 계열사 별로 구 회장의 철학이 잘 스며들 수 있도록 정도경영 담당인원을 두고 있다. LG그룹 22곳 계열사 가운데 정도경영 담당은 8명에 이른다.
이처럼 ‘정도경영’을 중시한 구 회장의 경영방침 덕에 LG는 국내 대기업들 가운데 기업 총수와 관련된 부정적 이슈에서 가장 자유로워 일명 ‘오너리스크’를 겪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2016년 10월부터 재계를 뒤흔든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인해 다른 대기업들이 줄줄이 검찰 수사를 받는 상황에도 LG그룹은 구본무 회장이 참고인 조사를 받은 것 외에 특별한 어려움을 겪지 않아 ‘무풍지대’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선제적 지주회사체제 도입도 구본무 회장이 주창한 ‘정도경영’의 일환이다. 구 회장은 외환위기를 맞은 1997년 말부터 지주회사체제로의 전환을 추진했으며, 2003년 (주)LG를 정점으로 하는 지주회사체제 구축을 완료했다.
구 회장은 지주회사 출범 직후 계열사 임직원들에게 “사업 포트폴리오를 정하는 일과 대장을 정하는 일만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LG는 김쌍수 전 LG 부회장, 조성진 LG전자 부회장, 권영수 LG유플러스 부회장 등 유능한 전문경영인들을 다수 배출했다.
최근 국내 대기업들이 순환출자고리를 끊고 지배구조를 개편하기 위해 애를 먹는 상황에서 이미 15년 전부터 지주회사체제를 도입한 구본무 회장의 업적은 더 높이 평가받는다.
구 회장의 이미지는 흔히 온화하고 보수적인 면이 많이 부각되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개혁적이고 승부욕이 강한 완벽주의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룹 CI 변경과 선제적 지주회사제 도입을 통해 개혁 성향을 보여준 구 회장은 신사업 육성에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1998년 말 정부의 빅딜 논의로 반도체사업의 유지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LCD 전문기업 ‘LG LCD’를 설립해 1년 후 네덜란드 필립스로부터 16억달러 규모의 외자 유치에 성공하고 2008년에는 단독법인인 ‘LG 디스플레이’를 출범시켜 임직원 3만여명, 연매출 20조원 이상의 세계 1위 디스플레이 기업으로 성장시킨 것은 구 회장의 승부사 기질을 보여준 단적인 예다.
2005년 2000억원의 손실을 내는 등 부진했던 배터리 사업도 끈질기게 투자해 LG화학을 전기차 배터리 부문 세계 1위 기업으로 성장시킨 것도 구본무 회장의 뚝심을 보여준 사례다.
재계 한 관계자는 “구본무 회장은 인화로 대변되는 다소 보수적인 LG가의 가풍을 이으면서도 끊임없이 혁신에 매진하고 그룹을 성장시키는 한편 지속성장가능한 구조를 만들었다”면서 “LG가 겉으로 조용해 보이지만 중요 고비마다 구 회장이 보여준 선제적 대응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안정적 성장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