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치하의 ‘북한 번영’은 백일몽일 뿐
입력 2018.05.14 05:32
수정 2018.05.15 09:49
<칼럼>중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통제‧폐쇄‧폭압체제
최소한 개혁‧개방 필요하지만 북한이 그걸 감내할 수 있나
[1] 미국 덕분이었던 것은 맞지만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말했다.
“북한이 빠르게 비핵화를 하는 과감한 조치를 한다면, 미국은 북한이 우리의 우방인 한국과 같은 수준의 번영을 달성하도록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
미국이 도와주면 북한도 한국 정도의 경제 수준에 이를 수 있다는 말이다. 이 말은 미국이 오늘의 한국을 있게 했다는 뜻이 된다. 이건 분명한 사실이다. 미국이 태평양 전쟁에서 승리했기 때문에 우리는 일제의 식민통치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우리가 북한 김일성이 저지른 6‧25전쟁에서 한반도 남쪽의 이 둥지를 지켜낸 것도 미국 덕분이었다. 전쟁이 휩쓸고 간 폐허 위에서 우리가 북한처럼 대량 아사(餓死)의 참변을 면하고 굶주림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게 해 준 나라 또한 미국이었다. 온통 허무주의‧패배의식‧무력감에만 함몰돼 있던 우리가 세계 유수의 경제강국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조국 근대화의 역사’ 속에서도 미국은 드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렇게 다 인정하겠는데, 그래도 폼페이오의 자부심인지 자만심인지는 좀 거북하다. 미국의 힘만으로 한국의 번영이 이뤄졌다고 여긴다면 엄청난 오해다. 미국인들은 서운하게 들을 수도 있겠지만 한국 발전의 주역은 한국인이었다. 우리 앞 세대와 우리 세대가 피와 땀과 눈물로 이뤄낸 것이 바로 ‘한강의 기적’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넘은 산과 강은 일일이 셀 수조차 없다. 발전의 방법론에서 심하게 맞섰고, 목표를 두고도 격렬하게 다퉜다. 경제 성장과 비례해서 이념적 정치적 저항도 커졌다. 이 때문에 정치체제는 오히려 경화(硬化)됐다. 엄청나게 부푼 경제 볼륨과 성장의 성과들이 체제의 버팀목 역할을 했지만 권위주의적 리더십의 경착륙(硬着陸)은 예정된 코스였다. 경제발전은 정치 민주화의 요구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리더 스스로도 경제적 성공이 혁혁해질수록 자신의 정치적 종말이 가까워진다는 것을 예감했을 것이다.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는 선택지도 있었겠으나 그것은 가난의 고통을 연장시키는 것일 뿐이라고 여겼을 법하다. 결과론이지만 앞에서 이끄는 이들은 지혜롭고 자기 희생적이었으며 따르는 사람들은 심지가 굳고 근면성실했다.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낸 또 하나의 동력은 우리 자신들의 역량이었다. 지능연구 전문가 리처드 린 명예교수(영국 얼스터大)가 최근 발표한 논문을 인용해서 언론들이 보도한 각국 국민들의 지능수준이 흥미롭다. 한국인의 IQ는 평균 106으로 홍콩의 107 다음이고, 일본과 북한의 105 바로 위인 세계 최상위 수준이라고 한다. 지력(知力)은 곧 발전의 원동력이다. 유일한, 그렇지만 엄청난 자산을 가졌었다고 하겠다. 하긴 저마다 똑똑한 탓에 공동의 과제를 정하고 흔쾌한 동의를 얻어내는 과정이 복잡하고 어렵다는 단점도 드러나긴 했다. 따라서 발전을 계속해 나가려면 유능한 리더십이 필수적이다.
[2] 북한 빈곤은 폭정이 부른 재앙
북한의 경우는 조사가 불가능해서 한국과 일본을 기준으로 추산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경제적으로는 세계 최빈국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해방 당시 천연자원, 공업화 수준 등에서 북한은 우리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경제력이 우리를 앞질렀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가 명목 GNI(Gross National Income)로 45배, 1인당 GNI로는 22배나 북한을 압도하고 있다(2016년 기준, 한국은행).
이유를 일일이 찾아내 설명하자면 한없이 복잡해지겠지만 상식의 눈으로 보자면 가장 큰 원인이 저급한 리더십에 있다. 세습왕조를 만들기 위해 통치자 우상화 작업을 벌이면서부터 경제동력은 급속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사이비 신정체제 아래서 창의력은 죄악이 된다. 수령유일사상, 수령뇌수론이 모든 인민은 물론, 당‧정‧군의 간부들까지 단순세포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당연히 사회주의 경제체제도 한몫했다. 이런 시스템 하에서는 모든 부문에서 발전 추동력이 작동하지 않는다. 중앙의 계획과 지시에 복종하는 이외엔 어떠한 자율성도 재량권도 주어지지 않는 탓이다. 경제성장을 일정수준까지는 강제로 끌어올릴 수 있지만 지속적이지는 못하다. 구소련과 동구권의 70여년에 걸친 공산주의 실험이 참담하게 실패한 것만으로도 설명은 부족하지 않다.
그런데 북한은 공산체제 가운데서도 가장 나쁜 측면만 고집해 왔다. 전체주의적 지배체제‧ 세습왕조‧유사신정(類似神政)은 같은 공산권 내에서도 특별한 것이었다. 국가 체계를 작동시키는 가장 강력하고 직접적인 동력은 공포였다. 그것이 계속 효력을 내게 하려면 공포의 단위를 높일 수밖에 없다. 고사총 처형, 화염방사기 시체처리 등의 극악한 수단이 그 같은 필요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이런 사회의 경제 발전을 기대한다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다. 모든 분야의 시스템이 극단적 동맥경화증에 걸린 상태에서 무엇 하나 제대로 작동될 리가 없다. 그나마 ‘고난의 행군’이 재연되지 않고 있는 것은 통제력의 이완 탓일 듯하다. 국가 배급체제가 붕괴되면서 주민들은 강을 건너 중국으로 넘어가거나 장마당을 펼치기 시작했다. 정권측은 물론 이를 강력히 규제했지만 배급력이 없어지면서 통제력도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사회에 미국과 한국, 일본, 그리고 여타 주요 선진국들이 경제적 지원을 한다고 해서 급속한 성장이 이뤄질 수 있을까? 미국이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는 북한에 대한 무지의 소치다. 세계 정보력의 정점에 있는 미국 정부의 리더들이 그러기야 하겠는가. 아마도 자신감이 지나치거나 아니면 기만술일지도 모른다. 설령 북한이 미국의 조건을 모두 성실하게 충족시킨다 해도 무지개 꿈이 현실화되기는 어렵다.
[3] 현 체제로 한국 수준 어림없다
김정은은 핵 포기의 조건(아마도 제1의)으로 ‘체제보장’을 제시했다. 이는 앞으로도 김정은 1인 지배체제‧3대 세습체제‧전사회적 통제 체제를 유지하겠다는 선언이다. 군사적으로 북한을 압박하거나 선전선동으로 그들을 궁지에 모는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은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주민의 저항을 우리가 어떻게 하겠는가. 그것까지 책임지라는 건 내정간섭을 해달라는 말이 된다. 더욱이 그것은 주민탄압 동조나 다를 바 없다.
현 체제 하에서 학정 완화는 불가능하다. 공포지수가 낮아지면 저항지수는 올라간다. 세계 최상위의 지능을 가졌다는 북한 동포들 아닌가. 저항의 방법을 찾아내는 데도 그 지능은 발휘되게 마련이다. 학정‧폭정에 대한 책임추궁을 제압하려면 다시 공포수단을 동원해야 한다. 폭정의 악순환을 끊는 길은 현 체제의 포기뿐이다. 그걸 김정은이 수용할 리 만무하다. 그의 그늘에서 권력과 영화를 누리는 북한 체제의 간부군(群) 또한 같은 입장일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의 기적적인 경제 성공은 수많은 시행착오‧갈등‧대결을 겪는 가운데 이뤄졌다. 엄청난 수업료를 납부하고서야 가까스로 오른 산이다. 쉽게 기적이라고들 하지만 우리에게는 참으로 험난한 길이었다. 북한이라고 이런 과정을 건너뛸 수 있겠는가. 압제의 세월이 엄청나게 길었던 만큼 발전의 논리를 수용하고 실천하는 데는 우리보다 훨씬 많은 수업료가 요구될 게 뻔하다.
경제적으로는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라는 것을 택하되 정치는 공산체제를 유지하는 중국방식도 있지 않은가라고 따질 것인가. 시진핑 국가주석이 마오쩌둥의 길을 걸으려 한다는 것은 중국의 정치적 장래가 어둡다는 반증이 아닐까. 경제발전에 따라 점증하는 중국인들의 자유욕구가 권위주의적 체제의 강화로 제압되지 않으리라는 데 중국 정권의 고민이 있을 터이다.
더욱이 북한은 중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통제‧폐쇄‧폭압체제를 고집하고 있다. 경제발전을 위해선 최소한의 개혁‧개방이 필요하지만 북한은 그걸 감내할 수 있는 체제가 아니다. 그게 안 되면 ‘한국 수준의 번영’은커녕 현재의 빈곤상황을 탈출하기도 어렵다. 체제 유지의 조건 위에서 우리와 미국이 대대적인 지원을 한다면 그건 김정은과 집권세력의 통치력 강화 자금이 되고 만다. 독재비용을 우리가 대고, 강화된 독재의 짐은 북한 주민들이 지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
미국은 다시 북한 체제의 정체를 들여다봐야 한다. 협상성공의 외양을 꾸미기 위해 예정된 배신을 간과해선 안 된다. 트럼프 자신이 역대 정부를 비판했듯이, 훗날 차기‧차차기 정부, 그리고 세계 전략가들의 조소를 받지 않기 위해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또 고민할 일이다.
‘체제 보장’에 합의하기보다는 개혁개방 이후 김정은이 안게 될 부담을 어떻게 해소해 줄 것인지를 논의하는 게 더 효과적이고 솔직한 협상 자세라고 생각된다. 북한 체제의 경착륙이 불가피해 보일 경우 김정은의 신변안전책을 함께 모색해 주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 그게 김정은과 북한 동포들을 동시에 구할 수 있는 길일 것이다. 폭정 경착륙의 양상은 세계인 모두가 목격했다. 루마니아의 니콜라에 차우세스쿠,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리비아의 무아마르 알 카다피….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