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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수의 지리산 산책 ④] 제각각 색들이 어우러진 5월 회남재 숲에 내린 비

조동석 기자 (dscho@dailian.co.kr)
입력 2018.05.02 15:27 수정 2018.05.31 10:09

비오는 날에 사진기 들고 나갈 때면 가끔 생각나는 글귀가 있습니다.

‘비바람이 불고, 천둥 번개가 쳐도 미동각은 배달갑니다.’ 동네 중국 요리집 ‘미동각’에서 거저 준 판촉용 이쑤시개 통에 적힌 문구가 기가막혔습니다. 열렬한 배달정신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비오는 날에 사진 찍으러 가는 것이 열렬한 사진가 정신으로 나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나선겁니다.

딱히 정해진 바 없는 발걸음, 비내리는 숲길이 그럴듯한 회남재로 향했습니다. 회남재는 악양의 배후 산인 형제봉과 칠선봉의 사잇길입니다. 지금은 이름으로 유명한 청학동 사람들이 차 없던 시절에 악양으로 장보러 다니던 고갯길이었습니다.


여름 문턱에 다다른 숲에서 소나무, 잣나무, 참나무들이 빗물 먹은 연초록빛을 뿜어내고 있습니다. 발랄합니다.


그 틈에 아직 꽃잎을 떨구지 않은 벚나무들이 눈에 보였습니다. 비록 절정의 모습은 지나쳤어도 아직 우아한 기품으로 숲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흰색, 분홍색, 연초록색, 제각각의 색들이 한 몸을 이룬 숲에서 저도 한 자리 차지하고 걸었습니다.


비내리는 숲길. 습기 가득 먹은 공기의 청량함. 그 길 위에서 숨쉬기와 걷기.

우산 쓰고, 사진기 들고, 흙물이 발에 채이는 번잡함도 즐거운 걸음걸음입니다. 이 순간을 즐기려고 비를 뚫고 예까지 왔나봅니다.

길은 걸어야 길입니다. 걷지 않으면 그냥 땅입니다. 땅은 길이 아닙니다. 걸으니 좋습니다.



이창수 사진작가는

중앙대학교 사진학과를 졸업했다. 샘이깊은물, 국민일보, 월간중앙에서 16년동안 사진기자를 지냈다. 2000년 지리산 자락인 하동군 악양골 노전마을에 정착했고, 자연과 시대의 삶을 진정한 마음으로 드러내려는 사진을 즐기며 걷는 사람이다.

히말라야 14좌의 베이스캠프까지 길을 걸으며 히말라야와 그곳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담는 사진작가. 지리산학교 선생, 국립순천대학교 사진예술학과 외래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조동석 기자 (dscho@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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