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대기업 옥죄기' 본격화...재계 한숨만 푹푹
입력 2017.12.22 15:13
수정 2017.12.22 15:19
공정위-중기부 대기업 압박 수위 높여...규제 철폐-노동 개혁 뒷전
법인세율 인상으로 역행...기업 경영환경 악화 우려 커져
공정위-중기부 대기업 압박 수위 높여...규제 철폐-노동 개혁 뒷전
법인세율 인상으로 역행...기업 경영환경 악화 우려 커져
정부가 대기업들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면서 재계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과거 내렸던 결정을 뒤집는가 하면 새로 신설된 중소벤처기업부는 중소기업 보호를 명목으로 대기업을 개혁 대상으로 삼는 등 전방위적인 공세가 이어지고 있다.
22일 재계에 따르면 공정위와 중기부가 대기업들을 압박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대기업들의 부담이 커지고 있으며 이러한 정부의 정책으로 기업 경영 환경이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공정위는 전날인 21일 지난 2015년 12월 발표했던 ‘순환출자 가이드라인’을 변경하기로 결정하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따른 삼성물산 주식 처분 건에 대해 당초 내렸던 결정을 뒤집었다.
순환출자 가이드라인은 계열사간 인수합병(M&A)으로 순환출자 고리가 새롭게 형성되거나 기존 고리가 강화되는 경우에 관련 해석과 조치 사항을 담고 있다. 지난 2014년 7월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대기업집단에 소속된 회사의 신규 순환출자는 금지됐지만 계열사간 합병으로 순환출자고리가 새롭게 형성되거나 고리가 강화될 경우에 대한 해석은 명확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삼성은 지난 2015년 9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으로 삼성그룹의 순환출자 고리에 변화가 생기자 공정위에 유권해석을 의뢰했고 이에 공정위가 가이드라인을 만든 것이다.
◆기존 결정 손쉽게 뒤집는 공정위, 기업들 혼란 초래
공정위는 당시 가이드라인을 만들면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간 합병으로 인해 기존 순환출자 고리가 강화된 것으로 판단해 삼성SDI가 보유한 삼성물산 주식 총 904만2758주 중에 500만주를 매각하도록 결정했다.
하지만 공정위는 이번에는 기존 고리의 강화가 아닌 신규 형성으로 해석하면서 삼성SDI가 나머지 404만2758주도 처분해야 한다고 결정을 뒤집었다. 당초 쟁점이었던 순환출자 고리 내 소멸법인(삼성물산)과 고리 밖 존속법인(제일모직, 합병 후 삼성물산으로 사명 변경)이 합병할 경우, 기존 고리의 강화로 봤던 것을 신규 형성으로 판단을 바꾼 것이다.
공정위는 스스로 과거 판단이 잘못됐음을 인정하고 이를 바로 잡는 것으로 보고 있지만 재계에서는 이미 한 번 내려진 판단과 결정을 소급해서 뒤집는 것은 행정기관으로서의 신뢰성을 스스로 저버리는 것으로 보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행정기관이 내린 결정은 지속가능한 것으로 믿을 수 있어야 한다는 ‘신뢰보호의 원칙’에 위반될 소지가 있다고 보고 있다. 또 행정권의 남용 문제도 제기되면서 소송 가능성도 충분하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행정기관이 과거 잘못된 판단을 바로 잡기 위한 조치는 가능하다고 본다”면서도 “하지만 이는 결정을 바꿔야 할 정도로 당시 판단이 명백한 오류가 있었음을 보다 명확히 한 뒤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정위의 이번 결정 번복으로 기업들의 혼란도 커질 전망이다. 가이드라인이 변경되면서 당장 주식을 추가 처분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삼성은 물론, 롯데 등 향후 적용 가능성이 있는 기업들도 당초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공정위가 합리적인 이유 없이 기존 결정을 뒤집는 것은 스스로 일관성이 없다는 것을 자인하는 격”이라면서 “한 번 내려진 결정을 손바닥 뒤집듯이 쉽게 바꾼다면 이해당사자들의 혼란은 커질 수 밖에 없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기부도 대기업 압박에 가세...법인세 인상 등 거꾸로 가는 경영환경
새정부들어 신설된 중소벤처기업부도 대기업들을 압박하고 나섰다. 홍종학 중기부 장관은 21일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탈취 문제를 ‘1호 정책’으로 추진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이를 위해 공정위·특허청·경찰청 등이 참여하는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중기부가 대기업들을 중소기업의 기술을 빼가는 집단으로 규정하면서 개혁 대상으로 치부한 것으로 대·중·소기업 상생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고 재계는 우려하고 있다.
재계는 정부가 대기업들에 대해 채찍만을 꺼내들고 당근을 주는데는 소홀히 하고 있다며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최근 법인세를 놓고 이뤄진 한국과 미국 정부간 상반된 행보가 대표적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법인세 최고 세율을 내년부터 현행 35%에서 21%로 대폭 인하하는 것을 골자로 한 세제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번 세제 법안은 향후 10년간 1조5000억달러(약 1627조5000억원)에 달하는 감세조치를 단행한다는 것인데 이 중 3분의 2에 달하는 1조달러가 법인세 관련 부분이다.
반면 국내에서는 국회가 최근 과세표준 3000억원 초과 구간을 신설, 국내 기업의 법인세 최고세율을 기존 22%에서 25%로 인상하는 안을 통과시키며 선진국들의 법인세 인하와 역행하는 조치를 취한 것이다.
또 정부가 대기업들에게 세수확대와 고용창출 등 요구사항은 많은 반면 기업 경쟁력 향상을 위한 규제 철폐와 노동 개혁 관련 논의는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고 재계는 지적한다. 재계는 그동안 대통령과의 면담 등을 통해 정부에 이를 요청해 왔으나 아직 진전은 없는 상황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규제 철폐와 노동 개혁 모두 정부와 국회 등에서 논의돼야 하지만 뚜렷하게 나오는 것이 없는 상황”이라며 “기업들의 경영 환경이 개선이 아니라 점점 악화될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