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카카오톡
블로그
페이스북
X
주소복사

[볼 만해?] 꼭 해야 할 이야기…영화 '아이캔스피크'

부수정 기자
입력 2017.09.24 08:30
수정 2017.09.28 14:13

나문희·이제훈 주연…김현석 감독 연출

위안부 피해자 아픔 감동적으로 그려

나문희, 이제훈 주연의 영화 '아이캔스피크'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과 용기를 감동적으로 그려냈다.ⓒ리틀빅픽처스

영화 '아이캔스피크' 리뷰
배우 나문희·이제훈 주연


아픈 역사, 무거운 소재를 영화화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의미만 추구하다 보면 영화적 재미가 떨어지고, 반대로 영화적 재미에만 집중하다 보면 소재를 갖다 쓴 의미가 사라진다.

잊어서는 안 될 아픈 역사를 따뜻한 드라마로 만든 '아이캔스피크'는 재미와 감동, 그리고 의미까지 세 마리 토끼를 잡은 수작이다. 추석을 겨냥한 평범한 휴먼 드라마로 생각하면 오산. 아무 생각 없이 즐기다가 후반부에 눈물을 펑펑 쏟는 자신을 마주할 것이다.

옥분(나문희)은 온 동네를 휘저으며 무려 8000건에 달하는 민원을 넣어 '도깨비 할매'로 불린다. 구청 직원들은 옥분만 등장하면 피하기 바쁘다. 20여년간 누구도 막을 수 없었던 옥분 앞에 원칙주의자 9급 공무원 민재(이제훈)가 나타난다.

민재는 옥분의 민원을 자신만의 원칙대로 처리하기로 하고, 옥분은 그런 민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옥분은 민재의 유창한 영어 실력을 보고 민재에게 자신의 영어 선생님이 돼 달라고 부탁한다. 민재는 옥분을 피하려 하지만 동생 영재(성유빈)를 챙기는 옥분의 모습에 그의 영어 선생님이 되기로 한다.

나문희, 이제훈 주연의 영화 '아이캔스피크'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과 용기를 감동적으로 그려냈다.ⓒ리틀빅픽처스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CJ문화재단이 주관하고 여성가족부가 후원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75:1의 경쟁률을 뚫고 당선됐다. 실제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와 고 김군자 할머니의 증언을 계기로 2007년 미 하원이 일본군 위안부 사죄 결의안을 채택했던 것을 모티브로 했다.

초반부만 보면 할머니가 영어를 배우려 좌충우돌하는 코미디 영화인 듯하다. 하지만 옥분이 영어를 배우려는 '진짜 이유'가 밝혀지면서 극장을 눈물바다로 만들어 버린다. 그 '진짜 이유'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겪은 상처와 고통에서 나온다.

'귀향'이 위안부 문제를 정공법으로 다뤘다면 '아이캔스피크'는 무겁고 잔혹한 분위기에서 벗어나 '휴먼스토리'로 풀어냈다.

영화는 옥분과 그 주변 사람들을 찬찬히 비추며 '우리는 과연 가슴 아픈 역사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라고 질문한다. 알고 있으면서도 애써 외면하진 않았는지 스스로 반성하는 계기가 된다.

옥분의 사연을 접한 동네 주민들, 구청 공무원들이 발 벗고 나서는 모습을 통해선 절망 속에서 피어나는 정과 희망의 메시지를 던진다. 인간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옥분이 아픈 상처를 드러내는 장면에선 관객들의 눈물이 마를 틈이 없다. 옥분은 죽을 만큼 아픈 상처로 인해 오랜 세월 혼자 지냈다. 그가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니는 이유는 '외로움' 때문이다. 겉으론 괄괄한 옥분이지만 속은 온갖 상처로 문드러졌다.

나문희, 이제훈 주연의 영화 '아이캔스피크'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과 용기를 감동적으로 그려냈다.ⓒ리틀빅픽처스

아픈 과거를 숨긴 채 가족들에게 버려져야만 했던 옥분이 "내 부모형제마저 날 버렸는데 어떻게 내가 떳떳할 수 있겠어?"라고 말하는 부분에선 가슴이 미어진다.

자신의 상처를 숨기기에만 급급했던 옥분은 친구 정심(손숙)이 아프자, 자신이 직접 미국 의회 청문회에 서서 그동안 하지 못했던, 그리고 하고 싶었던 말을 토해낸다. 이 장면은 영화의 백미로 실제 미국 버지니아주 리치먼드 의회에서 촬영됐다.

옥분은 말한다. "잊으면 내가 지는 거니께 잊으면 안 된다"고. 증거가 없다는 일본 측의 주장에는 "증거가 없다고요? 내가 바로 증거"라며 맞선다. 온몸에 맺힌 상처도 보여주며.

옥분은 "다시는 반복돼선 안 될 역사"라며 "꼭 기억해달라"고 힘주어 말한다. 일본 측에 원하는 건 큰 게 아니다. 잘못은 인정하는 것뿐. 하지만 일본은 아직도 제대로 된 사과조차 안 했다.

영화는 결말을 통해 말한다. 아무리 힘들지라도, 두 손 맞잡을 누군가가 있다면 살아 볼 '희망'은 있다고.

나문희, 이제훈 주연의 영화 '아이캔스피크'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과 용기를 감동적으로 그려냈다.ⓒ리틀빅픽처스

나문희의 연기엔 엄지가 올라간다. 코미디와 진지한 드라마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극의 중심을 꽉 잡는다. 나문희는 "대본을 읽다 보니 위안부 할머니들이 얼마나 지옥 같은 삶을 머리에 얹고 살았을까 가슴이 아팠다"면서 "배우로서, 영화로서 한몫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밝혔다.

이제훈은 나문희를 빛나게 해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거친 남성 캐릭터가 위주인 최근 한국 영화계에서 소금처럼 반짝이는 역할이다.

박철민, 정연주, 이지훈 등 구청 직원들의 맛깔나는 연기도 인상적이다.

'광식이 동생 광태'(2005), '시라노; 연애조작단'(2010), '쎄시봉'(2015) 등을 만든 김현석 감독이 연출했다.

김 감독은 "위안부에 대해 자세히 알아갈수록 두려워졌다"며 "코미디와 메시지가 물과 기름처럼 따로 놀지 않게 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강조했다.

이어 "영화엔 나옥분 할머니의 이야기도 있지만, 그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다. 할머니의 고통을 몰랐던 우리와 비슷한 존재들이다. 나 역시 이 가슴 아픈 역사를 자세히 들여다보기 전에는 정확히 몰랐다. 그런 우리의 모습도 함께 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9월 21일 개봉. 119분, 12세 관람가.

부수정 기자 (sjboo71@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댓글 0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