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수교 25주년] ‘비중 커진 중국파’ 떠나는 한국 엘리트들
입력 2017.08.23 08:07
수정 2017.08.25 09:07
축구에서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국, 매력적인 시장 슈퍼리그
국내 감독과 선수들의 활발한 중국 진출, 이면에는 비난도 존재
25년 전만 해도 중국 축구에서 한국은 넘을 수 없는 벽과도 같았다. 한중수교가 체결된 1992년 당시 중국 베이징에서 열렸던 다이너스티컵에서도 중국은 한국에 0-2로 패하며 14년째 승리를 거두는 데 실패했다.
그때만 해도 한국 축구는 아시아에서는 절대 강자였다. 라이벌 일본조차 실력에서는 한국보다 한 수 아래인 시기, 중국은 적수로 꼽기에는 부족한 것이 너무도 많은 상대였다.
25년이 지난 현재 중국은 한국이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수준까지 치고 올라왔다. 한국 축구는 중국과의 역대전적에서 32전 18승12무2패로 아직까지 압도적인 승률을 기록하고 있지만 결코 얕잡아 볼 수 없는 상대가 됐다.
무서운 성장 중국 축구, 슈퍼리그 투자가 일으킨 나비효과
2008년까지 27경기 연속 중국전 무패 행진을 내달렸던 대표팀은 2010년 2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동아시아선수권 대회서 사상 첫 패배를 당하게 된다. 스코어 역시 0-3이라 충격이 상당했다.
그때만 해도 어쩌다 한 번 패한 우연의 일치라는 시선이 팽배했다. 실제 이후 대표팀은 다시 2승 1무를 거두면서 중국에 계속해서 ‘공한증’을 심어줬다.
최근 들어 다시 중국은 한국을 바짝 추격했다. 지난 9월 서울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 2-3으로 아쉽게 패한 중국은 지난 3월 창사에서 한국을 1-0으로 잡아내며 또 다시 쇼크를 안겼다. 중국 축구가 한국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본격적인 시그널이다.
중국 축구의 무서운 성장에는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 아래 이뤄지고 있는 ‘축구굴기’ 정책이 한몫 하고 있다.
실제 중국 슈퍼리그는 정부의 ‘축구굴기’ 사업의 일환으로 공격적인 투자를 통해 세계 정상급 선수는 물론, 이름난 명장까지 모셔오는 데 공을 들였다. 실제 슈퍼리그가 외국인 선수와 감독 영입, 이들의 연봉 지급을 위해 쓴 돈만 총 41억4000만 위안(약 7023억 원)에 이를 정도다.
2002 한일월드컵에서 브라질을 우승으로 이끈 루이스 펠리프 스콜라리 감독을 비롯해 잉글랜드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던 스벤 예란 에릭손 상하이 상강 감독, 바이에른 뮌헨 사령탑 출신 펠릭스 마가트 산둥 루넝 감독, 프리미어리그서 한 때 대표팀 주장 기성용을 지도했던 거스 포옛 상하이 선화 감독 등이 중국 슈퍼리그에 안착했다.
선수로는 브라질 대표팀 공격수 헐크와 미드필드 오스카(이상 상하이 상강), 첼시에서 뛰던 하미레스(장쑤 쑤닝), 맨유와 맨시티에서 활약했던 테베즈(상하이 선화)까지 세계적인 스타들 대다수가 이제는 중국 무대를 누비고 있다.
이는 자국민들의 축구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세계적인 스타 선수들과 함께 뛰고 명장들의 지도를 받으면서 이제 중국은 더는 한국 축구를 두려워하지 않는 분위기다.
중국에 부는 축구한류, 선택지로 자리 잡은 슈퍼리그
축구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로 중국은 이제 국내 지도자들과 선수들에게도 매력적인 시장이 됐다. 비록 세계적인 선수와 명장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거금이라는 금전의 유혹과 새로운 도전이라는 당근은 국내 축구인들의 중국 진출을 활발하게 하는 촉매제가 됐다.
현재는 불명예 퇴진했지만 한국 축구의 유망한 지도자로 손꼽힌 홍명보 감독과 최용수 감독이 중국서 한 때 지휘봉을 잡는 등 지난 시즌 슈퍼리그 16개 팀 중 5개 팀 감독이 한국인이었다. 이는 리그 최다이기도 하다.
슈퍼리그의 외국인 선수 출전 제한으로 전보다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중국에 진출한 국가대표급 선수들 역시 10명 가까이 됐다.
옌볜에서 뛰던 윤빛가람과 김승대는 최근 국내로 복귀했고, 광저우 푸리에서 뛰던 장현수가 J리그로 무대를 옮겼지만 아직도 축구 슈퍼리그에는 홍정호(장쑤 쑤닝), 정우영(충칭), 황석호(톈진), 김주영(허베이), 김기희(상하이 선화), 장현수(광저우 에버그란데), 권경원(텐진 콴잔) 등 대표급 선수들이 몸담고 있다.
한국과 중국이 수교할 당시만 해도 슈퍼리그 진출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축구에 있어서 두 수 아래로 여겨졌던 중국에 진출할 이유가 전혀 없었고, 오히려 2000년대 이후 중국 대표급 선수들의 K리그 진출이 활발하게 이뤄졌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중국도 선수들에게 있어 유럽 못지않은 매력적인 선택지로 자리 잡았다. 실제 제안이 왔을 때 대다수의 선수들이 중국행을 마다하지 않았다. 한중 수교 이후 무역 뿐 아니라 축구에서도 중국은 우리나라의 최대 교역국이 됐고, 여전히 슈퍼리그는 선수나 감독 모두에게 매력적인 시장이다.
논란의 중국화, 비난을 잠재울 길은 실력 뿐
다만 중국행을 선택하는 대표급 선수들에 대한 국내 축구 팬들의 시선은 여전히 곱지 못하다. 특히 슈퍼리그 소속들이 대표팀에서 부진을 면치 못하면서 “실력이 중국 선수들에 맞춰졌다”는 중국화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이는 아직까지 축구에 있어서는 중국에 한수 위라 생각하는 팬들의 자존심이기도 하다.
선수들이 중국을 선택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거액의 연봉과 막대한 성장을 이룬 슈퍼리그에서 세계적 기량을 갖춘 선수들과 명장을 접할 수 있는 기회, 그리고 뜨거운 축구 열기 등이다.
한국과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점으로 대표팀 합류가 용이하다는 점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실제 유럽에서 13시간 이상 비행기를 타고 국내에 들어오는 유럽파가 2시간 안에 합류할 수 있는 중국파보다 A매치 1~2경기를 높고 봤을 때 경기력이 월등히 뛰어나다고 보기는 어렵다.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이란전(8월 31일)과 우즈베키스탄전(9월 5일)에 나설 대표팀 명단 중에 중국파는 5명이 신태용 감독의 선택을 받았다. 이들 중 4명이 중앙 수비수 자원이다.
K리거 가운데 중앙 수비수 자원이 21살의 김민재(전북 현대) 뿐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사실상 최종예선 2연전서 대표팀 후방은 중국파로 꾸려질 가능성이 크다. 또한 이번 조기소집에 대다수의 중국파가 합류할 수 있는 여건 역시 대표팀에는 큰 호재가 아닐 수 없다. 중국파를 부정적인 시선으로만 놓고 보기엔 무리가 따르는 이유다.
반면 팬들의 비난 역시 무시할 부분은 못된다. 특히 국가로부터 병역혜택을 받은 선수들이 유럽에서 도전하며 국위선양을 하지 않고, 젊은 나이에 돈을 쫓아 중국으로 가는 듯한 인상이 못마땅한 눈치다. 여기에 최근 A매치에서 경기력 논란까지 등에 업으면서 중국파를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다.
결국 비딱한 시선을 돌릴 수 있는 길은 실력으로 증명하는 길이다. 뛰어난 경기력으로 한국을 러시아 월드컵 본선 무대로 올려놓는데 기여할 수 있다면 시선이 바뀌는 것은 한 순간이다. 더불어 중국파에게는 경기력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