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 문화 외면한 고구려 드라마
입력 2007.04.29 11:30
수정 2013.05.22 16:49
´주몽´도 ´연개소문´도 ´대조영´도 중국 드라마인지 구분이 되지 않아
80년대 리얼리즘론이 한창 유행일 때, 대중문화속 드라마와 영화, 소설에 식사 장면이 없다는 비판이 단골로 지적되던 일이 있었다. 식사 장면을 강조하는 이유는 사람은 먹어야 일-노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유물론에 충실한 시각이었다. 세상의 분별 기준을 물질, 즉 경제적 관점에서 삼는 습성이기도 했다.
이러한 시각은 아니더라도, 사람이 삼시 세끼를 먹는 고민으로 하루를 보내곤 한다. 세끼 이상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이 일상인지 모른다. 먹는 문제만큼 인간을 괴롭히고 즐겁게 하는 것도 없다.
최근 밥상머리 교육론이 회자되었다. 대전에 위치한 한 중학교에서 좋은 반응이 있다고 한다. 교사들과 학생들이 점심을 같이 들며 대화하면서 문화적 격차를 줄이고, 왕따문제를 해결하기도 했다고 한다.
밀턴 허시는 밥상머리에서 가족들과 좀더 나은 제품을 위한 대화를 빈번하게 했다. 이 때문에 탄생한 것이 ´허시 초콜릿´ 이다. 중국의 전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중국 총리는 외교 담판할 때면 푸짐하게 식사를 접대해 상대방을 심리적 이완 상태에 놓고, 외교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고 한다. 말을 붙이자면 ´밥상머리 외교´가 될 것이다. 이는 밥상의 간접적 효과도 크다는 말쯤이다.
하지만 드라마에는 여전히 식사 장면이 잘 등장하지 않는다. 뭘 먹고 움직일까 싶다. 김수현 드라마에서는 되도록이면 밥상 머리에서 모든 대화가 일어나는 장면이 이채롭다. 대가족의 식사자리에는 여전히 밥상머리 교육이 나온다. 마치 정주영 회장이 아침 식사할 때마다 밥상 머리 교육을 했던 것과 같아 보인다. 자녀들이 얼마나 지루했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물론 밥상머리 교육은 핵가족 시대인 오늘날의 현실에서는 오히려 비현실적이기도 하다.
유물사관에 따르지 않아도 선사(禪師)들은 하루 밥 세끼 먹는 것이 깨달음과 도의 시작이라고 했다. 전근대적 사회에서는 밥상머리 교육이 필수였을 것이다. 하지만 전근대 혹은 고대를 다루는 드라마와 영화는 번번하게 배신한다. 아예 밥먹는 장면은 없기 일쑤이다. 무엇을 먹고 저렇게 가열차게 움직일까 신기하기도 하다.
드라마 <대조영>이나 <연개소문>에서는 주로 귀족이나 왕족들의 음식이 대거 등장할 뿐, 일반 백성들이 무엇을 먹었는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더구나 연회 장면에서는 모형 안주들만 즐비하다. 주식이 쌀인지, 옥수수인지도 불분명하다. 뭔가를 먹었다는 정도다. 군사들이 먹는 군량미의 구체적인 내용도 나타나지 않는다. <주몽>에서는 군사력 증강 차원에서, 새로운 식량으로 육포를 등장시켰을 뿐이다. 고구려라면 적어도 단백질 공급원으로 중요한 된장이나 콩 음식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새삼 콩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역사적 접근이나 영토적 접근보다 문화사적 접근도 중요하다는 점 때문이다. 특히 음식문화가 강조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우리의 된장은 고구려 문화 계승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지난 2004년 9월 16일 고구려연구재단이 주최한 제1회 고구려사 국제학술회의에서 중국 동북공정의 주요 이론가인 쑨진지는 "고구려 영토의 3분의 2와 인구의 4분의3이 중국에 흡수됐다. 흡수된 70만-80만 고구려인은 한족(漢族)문화에 흡수됐고, 고구려 산성 터 등 문화유적도 대부분 중국의 영토에 있으므로 고구려 문화 역시 중국이 계승했다"고 주장했다.
우리 측은 고구려를 한반도의 독립국가로 인정한 중국 측의 역사적 사료들을 들어 중국 측의 주장을 반박했다. 또한 "쑨진지의 주장은 영토중심주의적 사고일 뿐이고, 역사의 계승이란 역사적 맥락의 계승이므로 과거 역사의 계승과 영토적 주권은 분명하게 다르다"고 주장했다.
역사의 계승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문화의 계승성이다. 문화만큼 민족과 공동체의 정체성과 일치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학술대회에 참석 하지는 않았지만 조희승 조선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고구려사 연구실장은 그의 논문에서 고구려인의 온돌과 발 방아 사용, 오곡 중심의 식생활 등은 한민족의 고유한 풍습이라는 사실을 통해 고구려는 한민족의 국가라고 강조했다.
그의 논문에서 든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콩을 중심으로 한 발효 문화가 움직일 수 없는 예다. 특히 된장은 고구려의 후예임을 증명하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다. 고구려의 된장을 계승하고 있는 것은 중국이 아니라 한국이다.
2004년 9월 8일 한국 된장의 국제규격화가 중국과 일본의 견제로 실패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된장(Doenjang)이라는 고유명사를 사용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중국이나 일본, 동남아에도 장이 있다는 이유를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례(周禮)’와 ‘논어(論語)’에 장은 짐승이나 조류의 살코기를 소금에 절여 만든 육장이다. 일본의 미소는 한국에서 넘어간 된장의 종류이다. 동남아의 장은 물고기로 만든 어장이다.
된장이 세계적으로 이름을 얻게 된 것은 콩-대두로 발효시킨 식품이기 때문이다. 육장이나 어장이 유명해진 것은 아니다. 삼국지 위지 등 중국 고대 문헌들에는 고구려 사람들은 선장양(善醬釀) 즉, 발효 식품을 잘 만든다고 했다. 고구려 벽화에는 여기저기 항아리에 담긴 식품을 볼 수 있다. 중국 문헌들은 일찍부터 된장을 시(豉)라 하여 외래품이라고 적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진 일이다. 그들은 된장냄새를 고려취(高麗臭)라고 했다.
고대 이래 근대까지 대두의 주 생산지이고, 대두문화가 고도로 발달한 지역은 바로 옛 고구려 영토였던 만주지방과 한반도였다. 콩은 뿌리에 뿌리혹박테리아가 있어서 척박한 땅일수록 잘 자라기에 만주 지방에서도 잘 자랐다. 대두의 발효 식품인 장문화가 이어져 발달해왔다는 것은 문화적으로 고구려를 잇는 민족의 문화임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다. 중국 민족과 문화 자체가 다름을 의미한다.
이렇게 사회 문화적인 일치성은 국가 이전에 민족과 공동체 정체성의 움직일 수 없는 증거이므로 더 많이 우리 일상에서 이를 체계화하는 작업이 고구려사를 지키기 측면에서도 필요하다. 또한 일상의 전통문화를 잘 계승하는 것이 고구려를 지키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고구려 드라마에서는 이 콩 된장이나 콩 식품을 제대로 보여준 적이 없다. 문화적 상상력이 부족한 것인지 아니면 관심이 없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아니, 된장에 대한 주도권을 상실하는 현재의 모습은 없고 과거의 고구려에만 집착한다. 콩만이 아니라 문화사 차원에서 정체성과 자긍심을 불러일으키기에는 부족함이 많다. 소프트 파워 차원에서 접근하기 보다는 칼싸움이나 무력 책략 짜기에만 골몰한다. 고구려 드라마로써 차별성이 없고, 다만 권력 드라마일 뿐 배경만 고구려다.
어디 콩 음식만일까? 고구려는 독특한 온돌 문화를 만들어왔고, 이것은 고려를 거쳐 조선 전반에 이르렀고 찜질방으로 이어졌다. 발해도 구들과 온들 방식을 통해 고구려 계승성을 증명해왔다. 그러나 고구려 드라마들에는 이러한 방문화가 등장하지 않는다. 따라서 <주몽>, <연개소문>은 물론 발해건국기를 다룬 <대조영>에 이르기까지 모두 입식(立式)의 생활 모습이다. 구들장에 몸을 데우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으니 더욱 고구려 드라마 같지 않다. 중국 드라마인지 구분이 되지 않고 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