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승리 반가운 슈틸리케호 '왠지 모를 씁쓸함'
입력 2017.06.13 10:06
수정 2017.06.13 10:07
탄탄한 수비와 날카로운 역습, 케이로스 지도력 부러워
[이란-우즈벡]이란 축구가 부럽게 느껴진 한판이다.
이란이 13일 오전(한국시각) 테헤란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A조 8차전 우즈베키스탄과 경기에서 2-0 승리했다. 이로써 이란은 6승 2무를 기록, 아시아에서는 가장 먼저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했다.
우즈베키스탄은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처럼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승리를 노렸지만, 초반부터 운이 따르지 않았다. 주전 수비수 스타니슬라프 안드레예프가 전반 2분 만에 부상으로 빠져 일찌감치 교체 카드 한 장을 써야 했다.
이란은 탄탄한 수비를 바탕으로 측면을 활용한 빠른 역습과 세트피스를 통해 분위기를 가져갔다. 전반 22분에는 선제골까지 터뜨렸다. 우즈베키스탄 수비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뒷공간을 노린 침투 패스가 나왔고, ‘에이스’ 사르다르 아즈문이 침착하게 득점으로 연결했다.
우즈베키스탄은 공격의 해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전방에 위치한 테무르쿠자 압두홀리코프와 이고르 세르게예프를 앞세워 공격을 노렸지만, 페널티박스 부근을 촘촘하게 에워싼 이란의 수비를 뚫지 못했다. 세트피스를 활용하지 않으면, 페널티박스 안쪽으로 볼을 투입하는 것조차 힘겨울 정도였다.
이란은 위기를 맞이했다. 전반 종료 직전, 주전 공격수 알리레자 자한바크시가 부상으로 교체, 전력 손실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이란은 흔들리지 않았다. 후반 2분 메흐디 타레미가 페널티킥을 얻어내 이른 시간 추가골 기회를 잡았다. 키커로 나선 마수드 쇼자에이의 킥이 허공을 갈랐지만 문제가 없었다.
이란은 1골이면,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최종예선에서 단 1골도 내주지 않은 수비력을 바탕으로 빠른 역습을 멈추지 않았다. 마침내 후반 45분에는 추가골을 만들어냈다. 페널티박스 좌측 부근에서 볼을 잡아낸 타레미가 간결한 드리블로 수비수를 따돌리며 슈팅까지 연결해 골문을 갈랐다. 페널티킥을 얻어낸 데 이어 추가골까지 터뜨리면서, 자국 리그 득점왕의 힘을 제대로 보여줬다.
이란이 정말 강하다.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레바논 원정에서 패했고, 우즈베키스탄에 홈에서 졌던 과거는 없다. 2011년 4월 카를로스 케이로스 감독 부임 이후 수비를 바탕으로 한 빠른 역습 축구가 빛을 발하고 있다. 아시아 무대에서만큼은 이란의 수비를 뚫어낼 수 있는 팀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다.
아즈문이란 특급 공격수는 승리까지 가져다준다. 화려한 개인기를 앞세워 90분 내내 돋보이는 선수는 아니지만, 결정적인 기회는 놓치지 않는다. 역습 상황에서 스피드와 침착한 골 결정력을 뽐내며 승부를 결정짓는다. 올 시즌 러시아 무대서 37경기 10골을 넣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바이에른 뮌헨과 만났던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에서 골맛도 봤다.
아즈문의 장점을 120% 활용하는 케이로스 감독의 역량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수비적인 축구로 일관하는 듯하지만 역습의 완성도가 점점 높아진다. 상대 수비 뒷공간을 노리는 침투 패스로 아즈문을 활용하고, 측면과 세트피스를 통해 공격의 다양성을 더한다. 개인기가 좋은 타레미와 자한바크시도 적극적으로 활용, 아즈문에게 집중될 수 있는 수비를 분산시킨다.
이날 경기 결과는 슈틸리케호에 행운이 따랐다고 볼 수 있다. 카타르전에서 승리를 거둔다면, 우즈베키스탄과 승점차를 4로 벌리면서 이란(홈)과 우즈베키스탄(원정)전에 대한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다. 아즈문이 경고 누적으로 인해 한국전에 결장한다는 것도 행운이다.
그러나 어딘지 모를 씁쓸함을 숨길 수가 없다. 한국 축구가 아시아 최종예선에서도 ‘경우의 수’를 따져야 하고, 다른 팀의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는 것이 정말 아쉽다. 경기를 거듭할수록 단단한 수비와 날카로운 역습, 결정력을 자랑하며, 자신들의 축구가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는 이란과 ‘아시아의 호랑이’가 대비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