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인터뷰] 김명민 "현실과 타협 없어…소신 지킬 것"
입력 2017.06.12 09:02
수정 2017.06.13 10:11
영화 '하루'서 딸 살리려 고군분투하는 준영 역
"탄탄한 시나리오에 끌려…감정 소모 컸던 작품"
영화 '하루'서 딸 살리려 고군분투하는 준영 역
"탄탄한 시나리오에 끌려…감정 소모 컸던 작품"
"박수칠 때 떠나고 싶어요. 어릴 적 우상 같은 존재가 어느 순간 현실과 타협하고, 변한 모습으로 눈앞에 나타난다면 너무 슬플 것 같거든요. 항상 좋은 모습으로만 남고 싶어요. 떠날 때를 정확히 알고 싶은 생각이 간절합니다."
'연기 본좌' 김명민(44)은 솔직했다. 많은 배우가 죽을 때까지 연기하고 싶다는 정형화된 답변을 내놓을 때, 김명민은 자기만의 단단한 소신을 들려줬다. 변치 않는 선배들처럼 될 자신이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해서 연기를 쉽게 포기한다는 의미도 아니다. '한 때 이런 배우가 있었다'라고 기억되고 싶단다.
타임 루프(time loop·시간 반복) 소재 미스터리 스릴러 '하루'로 돌아온 김명민을 9일 서울 팔판동에서 만났다.
'하루'는 매일 눈을 뜨면 딸이 사고를 당하기 2시간 전을 반복하는 남자가 어떻게 해도 바뀌지 않는 시간에 갇힌 또 다른 남자를 만나 하루에 얽힌 비밀을 추적해 나가는 이야기. 김명민은 극 중 세계적으로 유명한 흉부외과 전문의 준영 역을 맡아 딸을 살리려는 아빠의 간절한 마음을 온몸으로 연기했다.
인터뷰 중 죽음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김명민은 '죽음'과 '사후세계'를 생각해 본 적 없다고 털어놨다. 만약 사후세계가 있다면 그곳에서도 똑같이 연기할 듯하단다. 연기 말고 다른 관심사는 없냐고 물었더니 사업에 관심 있다는 의외의 답변을 들려줬다.
제대 후 이태원의 한 스키복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김명민은 특유의 '수완'으로 정직원보다 더 높은 매출을 올렸다. 당시 가게 사장으로부터 동업하자는 얘기도 들었다고.
그러면서 그는 연기에 대한 철학을 술술 풀어냈다. "어렸을 때부터 연기해서 배우의 꿈을 쉽게 포기하진 않을 겁니다. 근데 60~70세까지 연기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좋은 모습일 때 떠나고 싶거든요. 제 연기 철학은 현실, 그리고 돈과 타협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작품이 미뤄지고, 엎어졌을 때 3년간 쉰 적이 있어요. 그때도 소신을 지켰습니다. 만약 현실과 타협했다면 돈을 좇아서 하고 싶지도 않은 작품에 출연했을 거예요. 달콤한 유혹에 빠지는 순간, 배우는 퇴보합니다. 저 자신이 나태해지고, 현실에 안주하려고 할 때마다 마음을 잡아요. 연기할 때까진 제대로 하고 싶어요."
과거 온갖 악재가 겹쳐 뉴질랜드 이민을 결심한 그는 '불멸의 이순신'(2004)이라는 운명적인 작품을 만나 지금의 김명민이 됐다. 일이 안 풀릴 때 그는 자기 자신에게 화살을 쏘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내가 부족해서 그래', '나 때문이야'라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는 물었다. 하지만 연기에 대한 갈증은 놓지 않았다.
1년 만에 영화 '하루'를 처음 본 그는 "타임루프 소재는 모 아니면 도"라며 "식상한 소재이지만 시나리오가 워낙 탄탄해서 출연했다"고 밝혔다.
딸이 눈앞에서 죽는 반복되는 설정을 매번 다르게, 어떻게 연기하느냐가 관건이었다. 출연을 결정한 후에도 '괜히 출연했나'라고 고민하기도 했다. "'하루'는 할리우드 영화만큼의 스펙터클은 없지만 드라마가 있어요. 앞뒤가 딱딱 들어맞는 시나리오라서 부끄럽지 않은 작품입니다. 한 치의 오차가 생겨도 망가지는 작품이라서 제겐 모험이었죠. 근데 뭐 인생에서 안전한 길만 갈 순 없잖아요?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똑같은 상황을 계속 연기해야만 했던 배우는 '타임루프'가 될 때마다 혼란, 절망, 위기, 절박 등 키워드를 정해 놓고 매번 다르게 연기했다. "죽은 딸을 두고,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계획을 짠다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준영인 오지랖이 참 넓은 아빠예요. 하하. 부성애라는 게 마음은 똑같지만 다른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이거든요. 실제 상황이라면 준영이처럼 안 했을 겁니다."
공항 무빙워크는 100번이나 왔다 갔다 했다. "다신 타임루프 소재의 영화는 하지 않겠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시간 차를 계산하면서 세세한 것까지 신경 써야 했다.
영화의 메인 장소인 박문여고 사거리를 언급하자 "어휴~"라는 한숨을 내뱉었다. "말할 것도 없어요. 너무 괴로웠습니다. 거기서 어떻게 찍었는지 모르겠어요. 똑같은 하루가 계속 됐는데 저 자신이 타임루프에 빠진 듯해서 고통스러웠습니다. 뭐가 현실이고, 영화인지 분간이 안 됐죠. 감정 소모도 컸고요. 근데 이게 우리 영화입니다. 한 번 달리면 멈출 수 없죠."
강식(유재명)과의 대결은 하루의 비밀을 쥐고 있는 열쇠다. 김명민은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라 죄를 짓게 된 인간의 운명을 담은 영화"라며 "스릴러이지만 가족의 따뜻한 정을 그렸다. '하루가 반복된다'는 설정을 판타지적으로 풀어냈다"고 설명했다.
강식과 준영 사이엔 논란을 일으킬 법한 과거 얘기도 나온다. 이 설정에 동의했냐고 물었더니 "가장 극적인 부성애는 이기적"이라는 답으로 대신했다. "그 상황에서는 딸밖에 안 보였을 겁니다. 해선 안 될 행동이라는 생각과 해도 된다는 생각이 동시에 든 거죠. "
민철 역의 변요한과는 '육룡이 나르샤'(2015~2016)에 이어 두 번째 호흡이다. 제작보고회 때 김명민은 변요한을 영화에 추천했다고 밝혔다. '육룡이 나르샤' 때 변요한은 김명민을 지키는 호위무사였다. 김명민은 "민철 역을 열정과 패기가 넘쳐야 하는 동시에 연기 구멍이 없는 배우여야 했다"며 "변요한이 연기에 임하는 자세는 또래 배우 중 최고"라고 치켜세웠다.
김명민은 엠엠엔터테인먼트를 운영 중이기도 하다. 엔터테인먼트 수장인 그의 사업 철학은 연기 신념만큼 확고했다. "문어발처럼 확장하고 싶지 않아요. 될 만한 친구를 데려다가 집중적으로 봐주고 싶습니다. 제가 먼 길을 돌아와서 여기까지 왔다면, 소속사 친구들에겐 지름길을 알려 주고 싶어요. 방치하고 싶지도 않고요. 내실이 탄탄한 소속사로 키우고 싶답니다."
SBS 6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그는 '불멸의 이순신'(2004)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뒤 '하얀거탑'(2007), '베토벤 바이러스'(2008), '내 사랑 내 곁에'(2009),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2011), '연가시'(2012), '드라마의 제왕'(2012), '개과천선'(2014), '조선명탐정 : 사라진 놉의 딸'(2015), '육룡이 나르샤' 등에 출연하며 소처럼 일했다.
올여름 영화 'V.I.P.' 개봉을 앞두고 있고, '물괴'는 촬영 중이다. 8월 즈음엔 '조선명탐정3' 촬영에 들어간다. 배우는 "열심히 달려야죠"라며 의지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