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 불출마 선언한 박원순, 왜?
입력 2017.01.26 12:34
수정 2017.01.26 12:44
"당원으로서 돕겠다" 경선 룰 문제 한마디도 언급 안해...'낮은 지지율 벽'이 결정타
“국민의 염원인 정권교체를 위해 더불어민주당의 당원으로서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3분도 채 되지 않은 회견문 낭독을 끝으로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둘러 국회 기자회견장을 떠났다. 경선 룰에 대해선 단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간 지도부 결정에 반발하며 논의에도 불참하던 강경한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박 시장의 이번 대선 출마는 다소 갑작스럽게 발표됐다. 전날 정오까지만 해도 간담회를 열고 ‘청년 기본소득 30만원’ 공약을 발표하는 등 대권 행보에 한창이었다. 하지만 같은 날 민주당 당무위원회가 경선 룰을 확정하자,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불출마 의사를 굳히고 회견 일정을 계획했다고 한다. 박 시장 측 관계자는 “어제 밤(25일) 늦게 불출마 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이처럼 박 시장이 불출마 결심을 굳힌 데는 ‘낮은 지지율의 벽’이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게 중론이다. 그간 박 시장은 경선 규칙을 문제 삼으며 공식 논의 석상에도 불참해왔다. 지난 13일에는 추미애 대표와 단독으로 만나 ‘촛불공동경선’을 제안하는가 하면, 최근엔 김부겸 의원·이재명 성남시장과 야권공동정부 구상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며 타 후보들의 입장표명을 요구하기도 했다.
타 후보들과의 지지율이 근소한 차이로 뒤쳐진다면, 설사 경선 룰이 확정됐다 해도 내부적으로도 계속적인 문제제기를 할 ‘명분’을 얻을 수 있고, 룰 변경을 통해 반전을 점쳐볼 수도 있다. 또한 지지율을 바탕으로 비문(비 문재인)진영 후보들과 연대해 더 강력한 문제를 제기할 원동력도 생긴다. 문제는 낮은 지지율이었다. 실제 박 시장의 경우, 각종 대선 후보 지지율 관련 여론조사에서 3%대를 넘기지 못하며 소폭 하락을 거듭하는 모습이다.
박 시장의 사퇴가 급작스러운 만큼, 일각에선 박 시장이 본인 의사와는 달리, 당의 요청에 따라 출마 가능성을 내비쳤다 중도하차 했다는 추측까지 나온다. 당 차원에서 박 시장의 경선 참여 자체가 당과 본인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경선 참여 필요성을 압박했다는 것이다. 다만 박 시장이 일찍이 촛불 정국에서부터 존재감 드러내기에 공을 들여왔고, 각종 공약도 내놓은 것을 고려할 때, 문재인 대세론을 넘지 못하고 뜻을 접었다는 해석에 더 무게가 실린다.
특히 당초 예상대로 ‘룰 공정성’ 문제를 비판하며 불출마를 선언할 경우, 당내는 물론 서울시장 3선 도전이나 총선 등 향후 정치 가도에도 중대한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박 시장은 이날 회견에서 “대한민국을 새롭게 바꾸겠다는 열망으로 열심히 노력했지만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며 “정권교체 이후 민주개혁세력의 단결을 통해 새로운 정부가 성공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한껏 자세를 낮췄다.
김미현 알앤써치 소장은 “지지율이 너무 안 나오기 때문에, 이를 깨끗하게 인정하고 사퇴하는 그림이 가장 최선이다. 지지율이 어느 정도는 돼야 룰 문제를 들고 나올 명분이 된다“며 “만약 경선 공정성을 문제 삼았으면, 일반 국민들에게도 ‘변명’하는 모습으로 비춰져 다음 시장 선거에까지 아주 불리한 영향을 미칠 거다. 본인도 그 부분을 자체적으로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주류 진영 중진 의원실 관계자도 “여기서 경선 룰이 문제라느니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면서 사퇴했다면, 본인 이미지에도 흙탕물을 끼얹는 격”이라며 “본인 지지율이 20% 정도 나온다면야 계속 문제 제기하며 뛸 수 있겠지만, 누가 봐도 너무 지지율이 안 나오는 상황에서 룰을 말하는 게 최악인 걸 본인도 생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어차피 서울시장이라서 대선 때 역할을 못하니까, 조용히 시정 하다가 차기 시장 선거를 다시 한 번 노리지 않겠느냐”며 “시장 또는 국회의원에 도전한다 해도 당 공천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 상황에서 더 혼란을 일으키는 건 본인에게 안 좋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