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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의 일생’, <하얀거탑>이 남긴 것

이준목 객원기자
입력 2007.03.12 07:18
수정

의학-남성 드라마 새로운 지평 제시

MBC 주말극 <하얀 거탑>(연출 안판석)이 지난 11일 20회를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최종회에서 담관암이 악화된 장준혁(김명민)은 아내(임성언)와 친구 최도영(이선균)등 지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결국 숨을 거뒀다.

죽음이 임박했음을 깨달은 장준혁은 스승에게 남긴 유서를 통해 ‘자신의 시신이 의학발전의 밑거름으로 쓰일 수 있도록 받아 달라’며 시신을 병원에 기증한다. 오직 성공만을 바라보며 거침없이 질주하던 ‘야망의 화신’에서 생의 끝자락에 이르러 순수했던 젊은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인간’으로 되돌아온 장준혁의 마지막 회한에 많은 시청자들도 눈시울을 적셨다.

의사들의 가운 뒤에 숨겨진 권력과 암투의 정치드라마

일본의 베스트셀러 작가 야마자키 도요코의 동명소설과 TV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하얀거탑>은 방영초기부터 완성도 높은 구성과 배우들의 호연을 바탕으로 의학 드라마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남녀 간의 말랑말랑한 연애담이나 불륜, 비정상적인 가족이야기 일색이던 국내 현대극 시장의 관습을 과감히 탈피, 병원을 배경으로 한 의학드라마의 구조 위에 권력과 암투, 한 남자의 흥망성쇠를 다룬 ‘남성 정치 드라마’로 신선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평균 10% 중반의 시청률을 유지했던 <하얀거탑>은 동시간대 방영되는 <연개소문>,<대조영>같은 경쟁작들에 밀려 높은 성적은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하얀거탑 스페셜’을 방영하라는 마니아 시청자들의 목소리도 높았을 만큼, 네티즌들과 남성팬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고 극적 수준의 완성도에 대한 호평은 여느 흥행작들 못지않은 성과를 올렸다. 국내 드라마 시장에서 ‘전문직 드라마’의 붐을 일으키며 시대극과 가족드라마가 아니더라도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입증했고, 일본 소설-드라마 원작의 리메이크화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도 했다.

배우들의 호연도 빼놓을 수 없다. 이렇다 할 톱스타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의 안정된 앙상블과 심도 있는 내면연기는 시청자들의 찬사를 이끌어낸 원동력이었다. <불멸의 이순신>(KBS)의 전쟁영웅과 <불량가족>(SBS)의 순박한 조폭을 호연하며 주연급으로 부상한 김명민은, <하얀거탑>에서 출세 지향적 엘리트 의사 장준혁을 자신의 페르소나로 추가하며 다시 한 번 넓은 연기스펙트럼을 확인했다.

편안한 노신사에게 신경질적인 악역으로 파격적인 연기변신을 보여준 이정길과 김창완, 작은 비중을 마다하지 않고 조연급 배역을 소화한 차인표의 열연 등도 찬사를 받기 충분했다.

현대판 파우스트 장준혁, 과연 악인인가

주인공 장준혁은 성공을 위하여 악마에게 자신의 영혼까지 팔아버린 현대판 ‘파우스트’라 할만하다. 그가 자신의 지위와 명예를 지키기 위하여 벌였던 수많은 악행은, 부정할 수 없는 죄악이지만 그럼에도 대중은 그를 단순한 악인이라 단정 짓기 힘들다.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자라며 의사의 꿈을 키웠고,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믿고 치열한 경쟁사회를 헤쳐 나가야했던 장준혁. 그의 삶이 연민을 자아내는 것은 장준혁이 단순히 타고난 출세지향주의자이기에 앞서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인간적 고뇌를 함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라이벌이자 친구인 최도영과의 대립은 선과 악의 개념이 아니라 인생에 대처하는 서로 다른 가치관의 충돌로 묘사된다.

물론 아쉬운 점도 없지는 않다. <하얀거탑>은 의사들의 권력암투를 다룬 정치극에서 법정드라마를 거쳐 화합과 용서의 휴먼드라마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리메이크작이 꼭 원작과 달라야한다는 법은 없지만, 시니컬한 리얼리즘을 바탕으로 하던 극 초반부에 비해, 주인공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봉합되는 감상적인 결말은 ‘드라마틱’하기는 해도 현실적이지는 않다. 장준혁의 캐릭터를 부각시키느라 그와 대척점을 이루는 최도영의 캐릭터에 대한 묘사가 상대적으로 희미하게 처리된 점도 아쉬움을 남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얀거탑>이 남성팬들에게 특히 호평을 받았던 이유는, 무엇보다 이 작품이 각박한 경쟁사회를 살아가는 현대남성들의 표정을 생생하게 잡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근래 들어 이 작품만큼 클로즈업을 매력적으로 활용한 드라마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음모와 계략을 꿈꾸는 순간의 비열한 눈빛에서,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의 당혹스러운 표정, 선택의 갈림길에서 고뇌하는 남자들의 가장 고독하고 인간적인 모습에 이르기까지.

인명을 다루는 의사들이라 하여 정치과 권력의 역학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듯이, 제아무리 대단한 명의라 해도 정작 자신의 죽음 앞에서는 초라한 인간일수밖에 없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신의 감정과 속내를 얼마나 잘 컨트롤할 수 있는가가 처세의 기본으로 평가받는 현실 속에서, <하얀거탑>은 ‘엘리트의 상징’인 의사들의 하얀 가운 뒤로 숨겨진 현대인들의 속물성과 이중성, 그리고 그 속의 인간적인 고뇌까지 잡아내는 카메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하얀거탑>에 대한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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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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