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인권'이 맺어준 '남남북녀' 2쌍…가정서 이룬 '통일'
입력 2016.09.16 06:51
수정 2016.09.16 06:57
국내외서 북한실상 고발해 북한 주민 인권 개선에 앞장
북한인권활동 남편 뒷바라지…함께 '통일촌' 꿈 그리기도
북한 주민들의 인권 개선과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으로 활동하다 부부의 연을 맺은 이들이 있다.
북한정의연대 대표를 맡고 있는 정베드로 목사와 이한별 북한인권증진센터 소장, 그리고 남북 청년단체 나우(NAUH)의 이영석 실장과 그의 아내 김윤주 씨(가명)가 그 주인공.
이들은 모두 남남북녀 커플로, 가정 안에서 '작은 통일'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살아온 환경도 방식도 제각각이지만 사랑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대화로 차이를 극복하며 통일 한반도의 미래를 함께 그려나가고 있다.
남편 따라 아내도 북한인권운동…"통일 밑거름 되고 싶어"
정 목사 부부는 현재 국내외 무대에서 북한정권의 인권유린 실상을 낱낱이 고발하며 북한 주민들의 인권 향상을 위한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이들 부부는 특히 지난 3월 11년 만에 국회를 통과한 북한인권법의 제정 운동에도 앞장섰다. 그러나 제정 후 법률안과 시행령의 일부 문제를 발견하고 최근에는 이를 개정해야한다는 데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들이 북한인권 운동을 시작한 계기가 무엇일까. 정베드로 목사는 과거 중국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중 탈북자들의 참혹한 현실을 직접 목격하고 본격적으로 북한인권 활동에 뛰어들었다. 그러다 중국 공안에 붙잡혀 옥살이를 하는 등 힘든 시기를 겪기도 했지만,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북한 주민들의 인권 개선을 위한 활동을 이어왔다.
함경남도 흥남 출신으로 2002년 입국한 이 소장은 정 목사를 만난 이후 북한인권 활동에 나서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탈북 후 국내로 들어와 평범한 공무원으로 살아가던 이 소장은 지난 2013년 초 정 목사를 처음 만나 우연한 기회에 정 목사가 대표로 있는 북한정의연대에서 봉사활동을 하게 됐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그동안의 경험들과 북한인권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게 됐고, 서서히 서로에 대한 마음의 문을 열었다.
지난 9일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북한정의연대 사무실에서 정 목사와 이 소장을 만났다. 10년이 넘는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결심하게 된 계기와 사연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쑥스러운 듯 멋쩍은 웃음을 보이다가도 북한 주민들의 인권 개선과 관련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때는 결연한 표정으로 활동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 소장은 "저희 어머니는 탈북 이후 중국에서 강제 북송돼 20여곳의 감옥에서 힘든 일을 겪으셨고, 그런 어머니를 통해 북한의 인권 실태가 얼마나 열악한지 알게 됐다. 그러던 중 통일기도모임을 통해 정 목사를 만났고 자연스럽게 북한인권을 위해 활동했던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정 목사가 이끌고 있는 단체에서 봉사활동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정 목사가 북한 인권을 위해 정말 많이 노력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애잔함을 느꼈다. 돈벌이도 되지 않는 일인데 굳이 왜 북한 사람들을 위해 이렇게 고생할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며 "대화를 자주 나누면서 일반 사람들보다 탈북자에 대한 이해도 깊다는 걸 알게됐고, 무엇보다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어서 결혼까지 결심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정 목사는 이 소장의 한결같은 섬김의 자세와 북한인권 활동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고 결혼을 결심하게 됐다. 특히 탈북한 당일 중국 공안에 붙잡혀 강제 북송된 뒤 지금까지 생사조차 모르고 있는 이 소장의 친오빠 사연을 듣고는 인권활동에 더욱 책임감을 느꼈다.
정 목사는 "탈북자를 구출하면서 그동안 정말 많은 사연을 들어봤지만, 이 소장의 오빠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 소장의 가족이 북한에서 얼마나 끔찍한 생활을 하고 있을지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결혼 전에는 보편적인 인간으로서 해야했던 일이 이제는 내 가족의 문제가 됐기 때문에 더욱 책임감을 느끼고 있고 더욱 적극적으로 강제북송 중단이나 정치범수용소 해체를 외치고 있다"고 말했다.
정 목사 부부는 앞으로도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탈북자 강제북송 및 북한 정권에 의한 고문피해 실태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북한 주민들의 인권 개선을 촉구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와 권고안에 언급된 북한 내 표현의 자유와 북한인권법 개정운동에도 집중적으로 노력할 예정이다.
부부에게 앞으로의 꿈이 무엇인지 물었다. 정 목사는 "최근에 5~6시간 운전해서 강원도에 갈 일이 있었는데, 문득 '이 시간이면 아내 고향인 흥남까지도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통일이 되면 북한에 가서 북한 주민들의 삶을 돌볼 수 있는 어떤 일이든지 해서 진정한 의미의 통일을 이뤄가는 밑거름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남편의 말에 이 소장은 의외라는 듯한 반응을 보이며 "북한에 가서 안 살줄 알았는데, 통일되면 남편과 같이 가서 살면 되겠다"며 크게 웃어보였다. 그러면서 "통일되면 북한 땅으로 들어가 남북 간의 거리감을 좁히고 통합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소박한 바람을 드러냈다.
'통일촌' 꿈 그리는 부부…"남북 주민과 농사짓고 오순도순 살고파"
지난 2011년 부부의 연을 맺은 나우(NAUH)의 이영석 실장과 그의 아내 김윤주 씨(가명)는 현재 주말부부로 지내고 있다. 남북의 주민들이 함께 농사짓고 살 수 있는 '통일촌'을 만들겠다는 부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아내가 먼저 시부모님이 계시는 전라북도 군산으로 내려와 터를 닦고 있다.
남편인 이 실장은 서울에 머물며 남북청년들로 구성된 북한인권단체에서 탈북자구출 등 활동을 벌이고, 주말이면 아내와 두 자녀가 있는 군산으로 내려가 농사일을 돕는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2011년 대구에서였다. 당시 이 실장은 대구하나센터 사무국장으로 북한이탈주민 자립지원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담당자였고, 아내 김 씨는 그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탈북자들 가운데서 조장 역할을 맡았다. 이 실장은 김 씨를 만난 순간 첫 눈에 반했고, 김 씨는 사명감을 갖고 일하며 진심으로 탈북자를 도와주는 이 실장의 모습에 호감을 느꼈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주고받은 두 사람은 가족의 소중함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하게 됐고, 그 길로 결혼을 결심했다. 어려서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지낸 이 실장과 2009년 탈북 이후 혈혈단신으로 한국에 들어와 마땅히 의지할 곳 없이 살아가던 김 씨는 그렇게 서로에게 둘도 없는 가족이 돼 줬다.
결혼까지 탄탄대로만 걸은 것은 아니었다. 가족들의 반대와 주변의 따가운 시선은 두 사람이 극복해야할 난관이었다. 이 실장은 "아내가 북한에서 왔다는 것이 제 가족들에게는 매우 큰 부담이 됐던 것 같다. 실제 어머니는 충격으로 3개월간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며 "가족을 지속적으로 설득하면서 탈북자에 대한 편견을 없애려 노력했고 결국 결혼 승낙을 받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우여곡절 끝에 결혼한 두 사람은 2년간의 대구 생활을 끝내고 상경했다. 서울에서 1년쯤 결혼생활을 이어가고 있을 때, 이 실장은 '통일촌'에 대한 오랜 꿈을 아내에게 털어놓으며 귀농을 제안했다.
그러나 북한에서의 농사를 상상했던 아내는 귀농을 강하게 반대했다. 인식의 차이를 깨달은 이 실장은 아내를 시골에 데려가 현대화된 기술로 이뤄지는 한국의 농업 현장을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했고, 끈질기게 설득했다. 마침내 아내는 남편의 귀농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여전히 참혹한 인권유린이 벌어지고 있는 북한의 실상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결국 이 실장은 평일에는 서울에서 북한 주민들의 인권 개선을 위한 활동을, 주말에는 아내와 두 자녀가 있는 시골에 내려가 농사를 짓는 방법을 택했다. 졸지에 주말부부가 됐지만 아내는 남편에게 불평 대신 지지와 응원을 보내고 있다.
김 씨는 "북한에서 살아봤기 때문에 인권 유린 실상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아직 북한에 가족들이 남아있는데, 빨리 통일이 돼 부모 형제들이 인권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며 "비록 북한인권 활동이 많은 돈을 버는 것은 아니지만, 그 일을 할 때 남편이 너무나 즐거워하고 또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귀농한지 1년. '통일촌'이라는 꿈에 막 첫 발을 내딛은 부부는 막연했던 미래에 점차 확신을 얻어가고 있다. 경작할 땅과 아담한 보금자리, 농기계까지 마련해 조금씩 터를 닦아나가고 있고, 최근에는 수확한 농산물을 판매해 수익을 얻기도 했다.
이 실장은 "앞으로 농사 규모를 키워 북한이탈주민과 오순도순 모여 농사짓고 서로 품앗이 해주면서 행복만큼은 사치부리며 살고 싶다. 함께 경작한 쌀을 북한 주민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라며 꿈 실현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아내 김 씨 역시 "처음 남편이 통일촌에 대한 꿈을 이야기했을 때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었는데 하나씩 하나씩 하다 보니 그림이 보이고 있다"며 "우리와 같은 남남북녀 또는 북남남녀 가정과 통일촌에서 함께 농사짓고 살면서 농산물을 판매해 그 수익금을 탈북자 구호 기금 등에 사용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