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룩한 '다문화교육용' 몽골동화 바로잡은 '몽골 아줌마'
입력 2016.08.02 15:50
수정 2016.08.02 15:51
'중국 소수민족 이야기' 몽골 전래동화로 소개하려 한 사례 지적하며 몽골 전래동화 적극 감수
다문화담당 공무원 "현지인 감수자 아니었으면 오히려 다문화 동화 만들어놓고 상처줄 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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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아줌마', '중국 소수민족 이야기'를 몽골 전래동화로 소개하려 한 '엄마의 속삭임' 지적하며 몽골 전래동화 적극 감수
다문화담당 공무원 "현지인 감수자 아니었으면 오히려 다문화 동화 만들어놓고 상처줄 뻔"
"동화 삽화를 하나 그리더라도 한국 산은 뾰족하지만 몽골의 산은 완만해요. 몽골 집을 의미하는 게르는 굴뚝이 없으면 사람이 살지 않는다는 뜻이고, 허리띠를 매지 않은 남자는 범죄자를 뜻하죠. 현지인의 감수 없이는 이런 걸 눈치채기 힘들어요."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 외국인다문화담당관 다문화가족팀의 윤승주(몽골 이름 촐롱체첵) 주무관과 이신옥 주무관은 1일 서울시청의 한 카페에서 ‘데일리안’과 만나 다문화 자녀를 위한 세계의 옛이야기 그림책 ‘엄마의 속삭임’을 펴내고 감수한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서울시는 지난 2012년부터 ‘엄마의 속삭임’ 시리즈를 발간해왔다. 이신옥 주무관은 “기존에는 다문화 가정을 대상으로 한국동화를 전해줬지만, 올해 ‘엄마의 속삭임’에는 다섯 개 나라의 전래동화를 모아봤다”며 “엄마가 익숙한 이야기를 아이와 소통하고 공감하는 것은 상호작용의 좋은 방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승주 주무관은 몽골에서 온 결혼이민자로 2005년부터 한국에 정착해서 산 '몽골아줌마'다. 2011년부터 서울 시청 다문화가족팀에서 일하며 서울시의 다문화 가정의 애로사항을 해소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서울시 공무원 신분이기 때문에 '엄마의 속삭임' 몽골편의 공식 감수자로 참여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고향인 몽골의 전래동화를 ‘엄마의 속삭임’으로 엮는다는 소식에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섰다.
처음 '엄마의 속삭임'에 수록될 몽골 이야기는 한국 작가들이 민담집에서 찾아온 이야기였다. 하지만 윤승주 주무관은 한국 작가들이 추천한 이야기가 중국 소수민족의 것으로 몽골 대표성이 없음을 지적하고 ‘활 잘 쏘는 에르히 메르겡’이라는 영웅담을 '엄마의 속삭임' 수록 스토리로 추천했다.
윤 주무관은 “에르히 메르겡의 이야기는 한국의 콩쥐 팥쥐 같은 이야기다. 몽골인이라면 모두가 다 아는 이야기이고, 실제로 발가락이 네 개뿐인 타르바간, 사람들 앞에서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얼룩 날쥐, 꼬리가 갈라진 제비 등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설명해 줄 수 있는 재미있는 요소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야기를 선정한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감수작업에 들어갔다. 감수에 적극 나선 윤 주무관은 첫 원고를 받아 든 후 깜짝놀랐다. 원고에는 몽골의 전통 가옥 ‘게르’를 중국어 ‘파오’로 써두기도 했고, 삽화에 굴뚝이 없는 게르가 그려져 있기도 했다. 몽골에서 굴뚝이 없는 게르는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기 때문에 윤 주무관은 이런 오류를 잡아낸 것이었다. 현지인이 아니면 놓치기 쉬운 부분이었다.
특히 삽화는 어린아이들이 직접 보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화가 박자야(몽골 이름 밭자야) 씨와 함께 많은 정성을 쏟았다. 몽골에는 ‘허리띠를 안 한 사람은 남자가 아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남자를 그릴 때는 허리띠가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허리띠가 없는 남자 옷은 몽골 옷이 아니고, 만약 몽골 남자가 벨트를 하지 않고 있다면 '범죄자'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이신옥 주무관은 “각 문화권의 감수자가 없었다면, 다문화가정을 위한 동화를 만들어 놓고 오히려 상처를 줄 뻔 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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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주 주무관은 지금 초등학교 2학년인 아이가 있다. 태교부터 이중언어 교육을 했지만, 다섯 살 때쯤 몽골어를 가르치려고 하니 “친구들이 아무도 몽골어를 모르는데 내가 왜 몽골어를 해야 하느냐”고 반발했다.
윤 주무관은 아이의 관점에서 차분히 설득했고, 지금 아이는 몽골어와 한국어를 모두 구사한다. 최근에는 KBS2 TV의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한 사랑이가 엄마와는 일본어로 대화하고 돌아서서 아빠와는 한국어로 대화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할 수 있다”고 뿌듯해 한다고 한다.
직접 이중언어를 사용하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그는 “누군가 한사람이라도 이 책을 보고 ‘아이에게 해주고 싶던 이야기가 이렇게 책으로 나와 있어 편리하다’고 생각해준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다섯 개국의 전래동화를 열 개의 언어로 번역하고, 삽화를 문화적으로 고증하는 것은 어려운 작업이었다.
이신옥 주무관은 “너무 일을 크게 벌였나 생각하기도 했지만, 한국어와 외국어가 병기되어있어 다문화가정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읽고 다문화 가정을 친근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며 “먹거리 축제 등도 좋지만, 같이 문화를 향유하는 것도 서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힘든 작업이었지만 뿌듯한 결과물이 나온 것을 보며 내년에도 이런 책을 기대할 수 있겠느냐고 묻자 “생애주기별 동화집을 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므로 대상 연령대를 좀 올려서 만드는 것도 생각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어 “요즘은 다문화 가정에서 한국문화에 적응하는 것과 함께 내국인들에게도 다양한 문화를 알리는 것이 긍정적인 트렌드”라며 “신기하게도 문화권마다 다 다른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 공통적인 부분이 있다. 일반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도 이런 책을 통해 다른 나라에 대해 친근하게 느낄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서울시는 결혼이민자 주요 출신국인 베트남, 필리핀, 몽골, 태국, 네팔에서 전해지는 옛이야기 5편을 10개 언어로 번역해 그림책 ‘엄마의 속삭임’으로 엮었다. 감수자로는 전문가 2명(신동훈 건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최원오 광주교육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과 이주민 5명(태국편 나팟싸완, 필리핀편 엘레나, 몽골편 박자야, 네팔편 리자냐, 베트남편 부티펀)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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