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 발전하면 사회주의 계획경제 가능하다고?
입력 2016.04.17 09:54
수정 2016.04.18 08:46
<자유경제스쿨>시장과 정신은 똑같이 사령탑이 없는 다중심적 질서
I. 문제의 제기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AI), 알파고의 등장 이후 인공지능에 대한 철학적 이론적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인공지능을 금융 주식 기업의 계획 등 경제에 이용하려는 실천적 노력도 왕성해졌다. 일각에서는 인공두뇌의 등장을 ‘제4산업혁명’이라고까지 말한다.
흥미롭게도 인공지능이 발달하게 되면 사회주의 계획경제도 가능하다는 오스카 랑게(O. Lange) 주장도 급격히 힘을 받고 있다. 경제문제는 지식의 문제 대신에 자원배분의 계산문제로 여기고 계산의 복잡성은 컴퓨터의 기술발전을 통해서 해결될 문제라고 믿었던 것이 랑게 전통이다. 경제 전체를 기술하는 연립 방정식들을 정하고 컴퓨터를 통해서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보장하는 모든 재화들의 가격과 수량을 계산해 낼 수 있고, 그래서 자본주의만큼 사회주의도 효율적인 결과를 실현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런 주장이 옳은가? 우선 수리 모델은 불완전하다는 이유에서, 거대한 컴퓨터만 있으면 가격을 계산할 수 있다는 랑게의 주장은 틀렸다는 컴퓨터 경제학(computational Economics)의 인식이다. 그런 주장 대신에 주목할 점은 다음 두 가지이다. 첫째로 인공지능 같은 기계는 인간정신과 전적으로 다르고 기계는 인간정신보다 열등하다는 이유에서, 그리고 둘째로 비록 기계도 인간처럼 생각하고 판단한다고 해도 인간이성과 마찬가지로 인공지능도 ‘지식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한 나라의 경제를 계획할 수 없다는 것이다.
II. 인공지능 반대론과 계획경제
인간정신은 인공지능과 같은 기계를 초월하기 때문에 인간정신을 기계가 통제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의미에서 인공지능을 통한 계획경제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이런 논리를 주장하는 것은 AI를 반대하는 진영이다.
자원배분의 계산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시장 사람들의 의견 취향 선호 재주 능력 기술 등에 관한 지식이다. 중앙계획 담당자들은 그런 지식을 전부 수집하여 기계화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지식들 중 대부분은 과학적 지식처럼 말이나 글로 표현되어 있는 지식이 아니다. 개인들의 머릿속에 들어있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초의식적’ 성격의 지식이다. 그래서 개인들의 두뇌에 정착된 지식은 타인들에게 전달하여 기계화하기가 불가능하다.
초의식적 지식은 인지 사고 행동을 안내하는 ‘프레임(frame)’의 기반이 되는 규칙이다. 그런 초의식성 때문에 인간정신은 스스로를 완전히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그래서 중앙계획담당자들이 인간들을 조종·통제하기가 불가능하다. 인간정신의 초의식성 때문에 존 서얼(J. Searle) 마이클 폴라니(M. Polanyi) 등은 인공지능의 가능성을 반대한다. 컴퓨터 프로그램은 의식적인 정보평가에 국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실들을 고립시켜 주어진 의미에서 세상의 모습을 구성하는 게 아니다. 인간의 인지와 사고는 기계지능과는 달리 개별적인 것에서 시작하여 전체로 나가는 게 아니다. 인간두뇌는 전체를 이해하는 프레임에서 출발한다.
컴퓨터프로그램은 순전히 형식적이다. 그러나 정신은 기계가 아니다. 프로그램을 설치한 것으로 정신을 갖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가지고 정신을 산출하려는 노력은 정신의 본질적 성격을 무시할 뿐이다. 암묵적 영역을 기반으로 하여 타인을 이해할 수도 있고 그들과 관계를 가질 수 있다. 공유된 암묵적 규칙 때문에 타인들과의 상호작용이 가능하다. 정의감 법감정 직업윤리 도덕 등의 문화적 요소가 우리의 정신과 우리의 자아를 형성한다. 요컨대 열등한 인공지능을 통해서 정신을 조종·통제하는 계획경제는 틀렸다. 계획경제를 포기하고 경제적 자유를 통한 분권적인 시장해결이 옳은 방향이라는 것이 인공지능의 반대론의 인식이다.
III. 인공지능 찬성론과 계획경제
기계나 컴퓨터도 생각하고 느끼는 정신을 모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게 하이에크(Friedrich. A. Hayek)가 1920년 21살 때 쓴 유명한 저서『감각적 질서』이다. 그 책을 통해서 인공지능의 가능성을 그는 이미 예견했었다. 인간정신은 스스로를 완전히 직접 설명할 수 없다고 해도 두뇌의 작동원리에 관한 지식이 있으면 두뇌가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예측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하이에크는 배제하지 않고 있다.
도움이 없으면 정신이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할 수 있게 하는 기계를 인간정신이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계산기를 제작하는 것과 원리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게 하이에크의 인식이다. 이와 같이 하이에크는 흥미롭게도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는 기계를 만들 가능성을 믿었다. 주지하다시피 튜링 테스트란 기계가 인간과 얼마나 비슷하게 대화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하여 기계에 지능이 있는지를 판별하는 것인데, 그 테스트는 앨런 튜링(A. Turing)이 1950년에 제안한 것이다.
그러나 인공지능을 통해서 전체경제를 중앙집권적으로 계획·조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공지능도 완전한 지식을 가질 수 없는 ‘지식의 문제’ 때문이다. 인공지능은 부분적 선별적 성격의 지식을 기계화한 것이고 그래서 오류 가능하다. 따라서 인공지능은 사적 영역의 차원에서 개인이나 기업들이 자유로이 사용하게 하는 것이 옳다. 자유로운 이용과정에서 지식의 개발·기계화가 활발해지고 인공지능도 생산적인 방향으로 진화할 수 있다.
VI. 정신, 시장 그리고 자생적 질서
시장과 정신은 똑같이 사령탑이 없는 다중심적 질서(polycentric order: 폴라니)이고 동시에 자생적 질서(하이에크)이다. 그런 질서의 장점은 두뇌나 시장에서처럼 분산된 지식의 이용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이다. 극복할 수 없는 ‘지식의 한계’를 인정한다면 그런 질서를 인공지능이나 계획경제로 대체시킬 수 없다. 분권적인 가격시스템은 계획경제보다 우월하다. 인공지능을 인정하든 반대하든 사회주의 계획경제에 대한 미제스 하이에크 등 오스트리아학파가 제기한 비판의 적합성은 의심할 이유가 없다.
글/민경국 강원대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