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알못' 여성들 "송중기보다 이세돌" 이유가...
입력 2016.03.16 09:07
수정 2016.03.16 09:17
<하재근의 문화 꼬기>'고독한 검투사'+'뇌섹남'+'딸바보'
기본적으로 국가대표에 열광하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게다가 일반적인 국가대표가 아닌 ‘인간계 대표’다. 인간계 대표를 다른 나라도 아닌 한국 사람이 하는 것이 자부심을 폭발시켰다.
알파고의 CPU가 1200여 개에 달한다는 것이 알려지며 이세돌에게 1200대 1로 싸우는 고독한 검투사 이미지가 생겼다. 보통 무협액션 영화를 보면 언제나 주인공은 혼자거나 적보다 소수다. 그럴 때 팬심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번엔 알파고의 CPU 개수와 더불어 뭔가 초거대 기업인 구글이 이세돌을 농락한 것 같은 느낌까지 있어서 이세돌의 고독한 검투사 이미지가 더 강해졌다.
이세돌이 3패 끝에 승리를 따내자 불굴의 의지라는 이미지가 생겼다. 절대로 굴하지 않는 강인한 의지는 보는 이를 감동시키게 마련이다. 3연패 이후의 승리라는 것 자체가 드라마틱한 성공스토리이기 때문에 더욱 열기가 커졌다.
게다가 이번 이세돌의 싸움은 ‘그들의 싸움’이 아닌 ‘우리의 싸움’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영역을 침범하고 심지어 인간을 지배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안전영역인 줄만 알았던 바둑에서 인간이 인공지능에 무릎 꿇자 금방이라도 터미네이터가 쳐들어올 듯한 공포가 퍼져갔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이세돌의 싸움에 간절하게 몰입했고, 그의 승리를 나의 승리처럼 여기며 열광했다. 이것이 3연패 이후에 응원 열기가 더 커진 이유다.
마치 인류를 대표해서, 불리한 조건 속에서 악전고투하는 고독한 히어로 같은 이미지가 형성된 것인데 원래 이런 캐릭터에 여성들은 환호한다. 이번에 특히 2030 여성들의 반응이 뜨겁게 나타난 것은 이세돌이 정장 입은 뇌섹남 캐릭터로 우뚝 섰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기본적으로 능력남을 선호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남성의 능력을 대표하는 것은 돈이지만, 인간의 가장 궁극적인 능력은 지력이다. 그것이 인간이 진화하면서 장착한 가장 핵심적인 무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적 능력이 뛰어난 남성은 부자못지 않게 강력한 능력남으로 인식된다.
여성들은 또 자기 일에 열정적으로 몰입하는 남성도 선호한다. 이번에 이세돌은 바둑에서 승리한 후에도 경거망동하지 않고 바둑판에 몰입하며 복기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상상을 초월하는 지적 능력으로 깊이 몰입하는 모습이 남성미를 발산한 것이다.
거기다 이세돌의 가정적인 면모까지 알려졌다. 알파고에게 3패를 당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은 그날이 바로 결혼기념일이었는데, 이세돌이 그날을 잊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성은 이렇게 가정적인 남성에게 막대한 매력을 느낀다.
거기에 딸바보라는 결정타가 터졌다. 3연패를 당한 그날 밤 누나가 숙소를 방문했을 때 이세돌은 딸과 함께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놀고 있었다고 한다. 딸이 잠든 후에야 바둑판 앞에 앉아 깊은 고뇌 속에 밤을 지새웠다고 한다. 원래 이세돌은 가족들에겐 어두운 표정을 보여주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데, 특히 딸에겐 절대로 자신의 스트레스를 전가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엄청난 중압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순간에도 딸 앞에선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놀았다는 것이다. 실로 초인적인 딸바보다.
여성들은 딸바보에 폭발한다. 일단, 자식에게 잘 대하는 남성에 매력을 느끼고, 그 자식이 딸이란 점에 자신을 대입시키기 때문이다. 딸을 잘 보살피는 남성이 마치 자신을 보살펴주는 것 같은 판타지에 빠진다. 국가대표, 인간계대표, 고독한 히어로, 불굴의 인간드라마, 가정적인 딸바보 등 실로 메가톤급 소재들이 연이어 터졌다. 바로 이것이 이세돌 신드롬의 이유라고 할 수 있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