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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사비스가 한국서 태어났다면...알파고는 커녕

하재근 문화평론가
입력 2016.03.13 09:33
수정 2016.03.13 09:33

<하재근의 닭치고tv>구글은 이세돌에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이세돌 9단과 구글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의 5번기 제3국 맞대결중 대국장의 이 9단 모습이 한국어 해설장에 비치고 있다. ⓒ연합뉴스

알파고를 만든 구글 연구팀이 차기 과제로 게임 도전을 생각한다면서 스타크래프트를 언급했다. 스타크래프트 세계 최강 프로게이머를 보유한 곳도 한국이기 때문에, 만약 알파고가 스타크래프트로 인간계 최강자와 대결한다면 대전자는 또다시 한국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안 그래도 열혈 스타크래프트 게이머가 많은 판에 알파고팀에서 스타크래프트를 언급하자 그 승패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며 의견이 분분하게 나타난다. 과연 알파고와 인간의 스타크래프트 대결은 누가 이길까?

지금으로선 100% 인간이 이긴다. 바둑대결을 보면, 알파고가 판단하고 사람에게 돌을 놓으라고 시켰다. 그렇게 시킬 경우 CPU가 1200개가 아니라 1200만개가 돌아간다 하더라도 무조건 인간 게이머한테 진다. 아니면 알파고가 직접 팔을 만들어 게임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에도 프로게이머의 손놀림을 로봇팔이 따라갈 수 없기 때문에 100% 인간에게 진다. 프로게이머는 고사하고 일반인 게이머한테도 질 것이다.

바둑과 스타크래프트의 차이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다. 바둑의 경우는 돌을 놓는 속도와 기술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로지 판단력만 중요할 뿐이다. 바둑기사 중에 돌을 빠르고 정교하게 놓기 위해 연습하는 사람은 없다. 반면에 스타크래프트에선 마우스와 키보드를 얼마나 빠르고 정교하게 컨트롤하는 지가 매우 중요한 게임의 요소다. 그래서 게이머는 컨트롤 속도와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다. 같은 전략물자가 투입된 전투라 할지라도 손을 어떻게 쓰는지에 따라 승패가 달라진다. 따라서 손은 스타크래프트 게임의 일부고, 이것을 뺀 대결은 있을 수 없다.

축구나 야구를 사람이 직접 손발을 사용해서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컴퓨터 CPU가 제아무리 신묘한 전략을 짜내도 지금의 로봇 기술로는 축구, 야구로 사람에게 이길 수 없다. 바로 이러한 원리로, 알파고는 스타크래프트에선 인간을 이길 수 없다.

언젠가 알파고가 마침내 스타크래프트로 인간을 이기는 순간이 온다면 그것이 무엇을 의미할까? 손을 사용하는 부문에서 대량 실직사태가 발생한다는 뜻이다. 일반 제조업은 물론이려니와 외과의사나 요리사 등의 영역도 대폭 축소될 것이다.

인공지능과 로봇기술의 발달은 인간사회를 근본적인 차원에서 뒤흔들 것이다. 이번 알파고 사태는 그 미래가 생각보다 빨리 닥쳐오고 있다는 신호다. 이세돌의 패배에 대해선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크다. 하지만 그것보다 훨씬 중대한 패배가 있다. 바로 우리 기술이 구글의 인공지능 기술에 형편없이 못 미친다는 것이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긴 게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이세돌을 이기는 인공지능을 못 만든다는 게 문제다. 한국은 제조업을 잘 해서 그나마 먹고 살았다. 알파고가 팔을 장착하는 날 제조업은 무의미해진다.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한국은 그동안 선진국 빨리 따라잡기 압축성장 전략으로 산업개발을 해왔다. 하지만 인공지능 분야는 데이터가 축적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압축성장으로 선발주자를 추월하는 전략이 힘들다는 지적이 있다. 한번 벌어진 격차가 계속 지속될 우려가 있다는 얘기다. 위기다.

비상한 각오로 미래형 첨단 산업에 투자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창조경제라는 구호만 들릴 뿐이다. 1996년 이후 정부의 인공지능 관련 투자액이 500억 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인데 이는 중국 바이두의 지난 한 해 인공지능 투자액의 7분의 1 정도라고 한다. 구글이 14년 동안 인공지능 스타트업을 인수한 데 쓴 280억 달러의 약 0.15%다. 연초에 미래창조과학부가 인공지능 분야 지원에 300억 원을 투입하기로 했다는데, 이 정도로는 비상한 결기를 느낄 수 없다.

투자도 투자지만 사회적 분위기도 문제다. 구글 딥마인드의 허사비스 같은 천재가 한국에서 태어났어도 지금과 같은 성공을 일궜을까? 교육은 제대로 됐을 것이며, 벤처 창업이 가능했겠으며, 당장 돈 안 되는 연구를 결실 맺을 때까지 유지할 수 있었을까? 창조성 죽이는 교육과 모험이 용납되지 않는 풍토, 대기업에 치이는 벤처들의 처지를 생각하면 한국에선 어려웠을 가능성이 높다. 이번 알파고 사태는 바로 그런 우리사회 문화에 떨어진 폭탄이다. 이대로는 안 된다.

한 가지 더. 구글은 이번에 정말 말도 안 되는 행태를 보였다. 천문학적인 홍보효과가 나타나는 세기의 이벤트를 벌이면서 이세돌 9단에게 거의 돈을 쓰지 않은 것이다. 승리상금 100만 달러에 소소한 액수의 대국료, 보너스가 다다. 이건 거의 다이아몬드 쥐고 있는 아이한테 초콜릿 주면서 다이아몬드와 바꾸자고 꼬득인 것과 같다. 이세돌 9단 측은 이번 대국이 구글에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 일인지 몰랐을 것이다. 그 점을 이용해서 터무니없는 헐값에 이 9단을 이벤트로 끌어낸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 과연 세계적인 기업이 할 일인가? 구글은 지금이라도 이세돌 9단에게 합당한 대가를 약속해야 한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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