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전시관 '조선노동당' 시선서 그린 역사왜곡
입력 2016.02.29 05:04
수정 2016.02.29 05:05
시청각 자료, 관람객들에게 '군경은 학살자' 주입
해설사, 남로당 폭동세력에 "무장대는 생존권 때문에..."
"군인이랑 경찰 사람들 완전 나쁜 놈들이네!!!"
"걸스카우트로 이곳에 왔는데, 경찰들은 무슨 생각으로 4.3 학살을 벌였을까요."

지난 23일 데일리안이 찾아간 제주 4.3평화기념관은 거대한 역사왜곡의 장이었다. 제주평화공원을 소개하는 브로셔, 전시관 관람 전 시청하는 10여분 분량의 '제주 4.3사건 영상기록-평화와 인권', 안내원의 설명, 전시관 구성은 모두 '남조선노동당(남로당)'이 주축인 무장폭동 세력의 학살 및 테러는 두둔하고 당시 군·경과 미군을 '학살자'로 묘사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남로당은 남한의 공산화 작업을 목적으로 한 정당으로 1946년 창당됐다가 1949년 북한 조선노동당에 통합됐다. 그전까지 민족분열을 꾀하면서 남한의 혼란을 가중시키는 역할을 해왔다. 1948년 벌어진 제주4.3사건의 시작도 군·경, 우익인사에 대한 남로당의 학살이었다.
하지만 제주4.3기념관에서는 남로당을 주축으로 한 무장폭동세력을 '통일국가 건설 세력' 등으로 미화하는 영상 및 전시물들이 학생들과 관객들에게 주입되고 있었다.
제주4.3기념관 시청각 자료, 관람객들에게 '군경은 학살자' 주입
관람객들이 본격적인 관람을 앞두고 시청하는 '제주 4.3사건 영상기록-평화와 인권' 영상은 당시 미군정과 한국정부를 테러와 학살을 일삼는 주체로 묘사하고 있었다. 영상은 "미군정이 경찰과 서북청년단을 파견, 대량 검거와 테러를 일삼으며 민심은 악화됐다"면서 "미군정은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저해하는 불순세력에 대해 강경 토벌 작전을 시작했고 결국 제주도민들이 집단 희생되는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달았다"고 당시 상황을 소개하고 있었다.
당시 앞뒤 상황에 대한 배경설명 없이 특정 시점과 원색적인 표현으로 역사의 한면 만 보여주며 관람객들을 호도하고 있는 셈이다.

반면 남로당을 중심으로 한 무장 폭동세력에 대해서는 "한반도는 남한만의 단독총선거를 통한 분단의 위기에 봉착하고 있었는데 결국 남로당 제주도당은 이반된 민심과 오직 총선거 반대 투쟁을 접목시켜 4월 3일 무장봉기를 일으킨다"면서 "무장대는 탄압 중지, 단독선거·단독정부 반대, 통일정부 수립 촉구 등을 슬로건으로 내걸었다"고 긍정적인 묘사를 해놨다.
그러면서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수립이후 벌어진 제주4.3사건에 대한 진압작전을 제주도민에 대한 학살로 묘사하면서 '군경에 의한 학살'을 부각시키고 있었다.
반면 4.3사건의 시작인 남로당 폭동세력의 학살 사실에 대해서는 "무장대들은 해안마을을 습격하여 경찰가족과 우익인사를 살해했다. 그와 중에 무고한 주민들도 상당수 희생당했다"면서 총10분 분량의 영상에서 단 16초 간 언급만 하고 있을 뿐이다.
또한 남로당 세력의 무장폭동→군·경 및 우익인사의 학살→군경의 남로당세력 진압작전 등으로 이어지는 시간 순서에 따라 영상을 구성하지 않고 있어 4.3사건에 대한 관람객들의 오인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4.3전시관 해설사, 남로당 폭동세력에 "무장대는 생존권 때문에..."
제주 4.3평화기념관의 1~6관, 다랑쉬 특별전시관 등 상설전시관을 설명하는 해설사 A씨는 23일 전시관을 찾아간 관람객들에게 4.3사건을 남로당의 시각으로 설명하면서 두둔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A씨는 남로당 폭동세력의 테러, 살해, 납치, 약탈 행태에 대해서 "남로당 무장대가 도민들을 선거하지 않게 하려고 산으로 올라갔는데 무장대가 궤멸상태로 들어가니까 생존권을 위해서라도 식량을 탈취하고 보초 살해, 납치도 했다. 도민들이 무장대에 의해서도 희생당했다"며 남로당 세력을 두둔했다.
A씨는 "또한 궤멸상태에 빠져서 자기들 편을 만들어야 하니까 젊은 사람들을 확보하기 위해 살해하기도 했다. 자기 세력이 줄어드니까"라면서 "먹을 것도 없고 하니까 식량을 탈취한 것"이라고도 했다. 특히 남로당에 대한 본질의 설명 없이 "사회주의"라고만 설명하면서 관람객들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었다.
아울러 4.3사건에 대해 정부가 직접 행한 학살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A씨는 "4.3은 정치와 정부가 개입된 것인데, 정부가 연관성이 있기 때문에 현실은 묻어두고 싶지 않겠나"라면서 "4.3은 정치와 정부가 개입하고 미군정, 이승만 정부도 들어가 있으니까 정부는 이것을 묻어두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어둠의 역사가 밝은 빛을 보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거대한 역사왜곡의 장, 4.3평화기념 전시관
1관부터 6관에 이르는 4.3평화기념 전시관은 미군정과 군경의 남로당 세력에 대한 '진압작전'을 '학살'로 강조하고 남로당 폭동세력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남로당 폭동세력에 의해 희생된 군경, 우익인사 등에 대한 설명은 드물었고 남로당세력을 '무장대'로 지칭하며 '의병'으로 묘사하고 있었다. 특히 남로당 폭동세력의 영문 번역명은 'Armed Civilian Group'(민간무장대), 'Civilian Protestors'(민간항의자들)로 남로당의 정체를 희석하고 있었다.

다만 남로당 세력의 만행에 대해서는 "무장대는 경찰과 서북청년회, 대동청년단 등 우익청년 단원을 지목해 살해했다"는 정도의 짧은 텍스트로 언급했을 뿐이다.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세력이 무장폭동을 일으킨 후부터 군경의 진압작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10월경까지는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이 전무하다는 점, 해당 기간 동안 희생은 군경, 우익인사들에 집중돼 있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었다.
제주 4.3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350여 명의 남로당 무장폭동세력은 1948년 4월 3일 제주도내 12개 지서를 공격하고 우익단체 집을 습격, 경찰 4명, 민간인 8명을 살해했다. 민간인 8명 가운데에는 10대의 어린아이도 포함돼 있었다.
이들은 미군정과 군경의 대대적인 진압작전이 벌어지기 전까지 △선거사무소 습격 △조천면 신촌리 투표소 습격 및 방화 △제주읍 도평리 선거관리위원장 살해 △화북리 선거관리위원장과 내도리 구장 등 살해 △중문면 상예리 2구 습격, 대청단장 부부, 국민회 상예리 책임자 납치 후 살해 △제주읍 도두리 마을 선거관리위원장, 대동청년단장, 그들의 가족들을 납치 후 살해 등 살해, 테러, 납치 등의 행각을 벌이면서 제주도 사회상황을 혼란스럽게 했다.
전시관에는 군경의 진압작전 원인이 된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는 설명을 하고 있지 않았다.
장기간동안 제주 4.3사건을 연구해 온 이선교 현대사포럼 대표는 "제주평화공원에서 우리 군경이 죽은 것에 대해 설명이나 안내가 없다는 것은 큰 문제"라면서 "4.3이 시작될 때 폭도들이 사람을 죽창으로 찔러 죽이고 심지어 어린아이들까지 죽였다. 이런 설명을 왜 같이 안하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국가에 대해 부정적이고 오히려 남로당을 두둔하는 전시관"이라면서 "북한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명분은 세워주고 있는데, 과거 남로당에게 선동당한 꼴"이라고 꼬집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