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감' 강조하던 경찰관, 마지막까지 현장에서...
입력 2015.12.19 10:18
수정 2015.12.29 10:27
<의사자, 그 이름을 기억합시다⓸-심재호 경위>동료 부재 중 선뜻 나섰다가 숨져
시민단체인 '공익희생자지원센터'가 '당신의 아름다운 이름을 기억합니다'(푸른사람들)라는 제하의 공익희생자를 기리는 '휴먼북'을 지난달 24일 발간했다. 경찰 및 소방공무원, 의사자 등 안전한 사회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이들을 다시 기억하자는 취지다. '공익희생자지원센터'는 공익희생자들이 상당수 임에도 불구, 국가차원의 선양사업이 미흡해 '휴먼북'을 발간했다. '데일리안'은 '공익희생자지원센터'가 펴낸 '휴먼북'을 토대로 '살신성인'의 정신을 실천한 이들을 재조명하는 기획 연재를 시작한다. 그 네 번째 순서로 2004년 8월 순직한 심재호 경위의 발자취를 더듬어봤다.<편집자 주>
2004년 8월 1일 오후 서부경찰서 형사과 강력계 소속 심재호 경위(당시 33세, 경사)가 동료와 함께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 들어섰다. 덥수룩한 머리의 성폭행 사건 피의자에게 다가가 신분을 밝히고 수갑을 꺼내던 찰나 심 경사에게 날선 흉기가 날아들었다.
눈 깜짝할 새 벌어진 피습에 정신을 잃고 쓰러진 심 경위. 그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응급차에 실려 인근 병원으로 옮겨지던 중 숨을 거뒀다.
심재호 경위.ⓒ공익희생자지원센터
1995년 2월 경찰에 입문한 심 경위는 서울 마포경찰서와 202 경비대를 거쳐 2004년 진급과 동시에 서울 서부경찰서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평소 경찰로서의 책임감으로 맡은 임무를 정확하고도 믿음직스럽게 수행해 선후배 동료들에게 인정받는 경찰이었다. 202 경비대 소속으로 청와대 초입 경계임무를 맡을 당시에는 날카로운 눈썰미로 의심 인물들을 속속 골라냈던 유능한 경찰이기도 했다.
그는 형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는 동료의 말에 "책임감이 가장 중요하다"고 답할 만큼 어떤 사건도 대충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특히 그는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경찰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기 위해 고된 업무 속에서도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던 '노력파'이기도 했다. 피해자로부터 사건의 해결을 위임받아 사건을 조사하고, 범인을 잡아 처벌받도록 하는 과정에서 작은 판단 실수를 하게될까 그는 휴일에도 세세한 법률 조항과 판례를 살펴보는 공부를 쉬지 않았다.
도서관을 근무지처럼 드나들 만큼 책 읽고 공부하는 것을 즐겼고, 늘 출근 시각인 9시보다 한 시간정도 빠른 8시 10분경 근무지에 도착해 책을 읽는 '공부 벌레'이기도 했다.
흉기 살인사건이 발생한 서울의 한 다가구주택 사건현장에 폴리스 라인이 쳐져 있다.ⓒ연합뉴스
사고로 세상을 떠나던 해, 그는 유독 아내에게 많은 선물을 안겼다. 평소 작은 선물을 주는 것도 어색해하던 그였지만, 그해 아내의 생일에는 퇴근 후 집에 돌아와서는 조용히 대문을 나섰다가 꽃다발과 케이크를 양손에 든 채 나타났다. 화이트데이에는 커다란 사탕 가방을 사다 아내에게 안겨주기도 했다.
아내는 남편 심 경위가 세상을 떠난 지 11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날을 또렷히 기억하고 있다. 저녁시간이 다 지나도록 종일 전화도 없던 남편을 기다리다 못해 전화를 걸었고, 한참동안을 기다려 어렵게 통화가 된 남편은 '늦는다'는 짧은 말만 남긴 채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아내는 '당신은 나 없으면 어떻게 살지?'하고 농담을 던지던 그가 실제로 가족들의 곁을 떠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나 경찰로서의 책임감을 다하고 현장에서 스러져간 남편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아이들을 보면서 그의 희생이 마냥 헛되지만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휴먼북 '당신의 아름다운 이름을 기억합니다'에서 심재호 경위의 이야기를 쓴 최정아(성신여대 경제학과) 씨는 "심재호 경위는 가정에서는 듬직한 가장이었고 직장에서는 동료이자 후배, 선배로 최선을 다하는 분이었다"며 "애초에 남다른 사람이라는 것 보다는 평범함이 빛났던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 씨는 "인터뷰를 하고 글을 쓰면서 경찰에 대한 무관심을 반성하게 됐고, 쉽지 않은 일을 묵묵히 하고 계신 경찰 분들 덕분에 일상이 유지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앞으로도 그분들의 노력을 잊지 않겠다"고 집필 소감을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