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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만 모른다고? 선비정신 현대화는 공허한 제안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15.11.07 09:58 수정 2015.11.07 09:59

<굿소사이어티 서평>국외자의 이국취향으로 전통문화 되살리자니...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지음 21세기북스 펴냄
한국학을 전공하는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경희대 교수의 책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21세기북스)이 요즘 베스트셀러다. 첫 선을 보인 2년 전엔 별 시장 반응이 없다가 지난 여름 휴가 시즌 직후 대통령의 발언 이후 아연 뜨기 시작했다. 대통령은 “휴가 중에 읽은 책 중 특히 공감하는 책”이라고 소개하며 우리나라의 우수성과 가능성이 이 책에 잘 서술돼 있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의 말씀에 따르면, 이 책은 대한민국이 1등 국가가 될 저력의 나라이며 K팝을 비롯한 한류와 인터넷 등을 선도하면서 세계시장에서 통해왔음을 기꺼이 인정하고 있다. 문제는 그 이후다. 왜 그걸 우리만의 정체성으로 연결시키고, 한국의 브랜드 가치를 올리는데 활용하지 못하느냐는 그 책의 지적에 새삼 공감한다는 게 대통령의 독법(讀法)이자, 문제의식이다.

뒤늦게 이 책을 읽으며 필자인 나 역시 적지 않은 대목에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런데 감히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을 전해주겠다고 나선 이 미국인 저자는 누구일까? 1964년생이다. 예일대 중문학과 졸업 뒤 동경대에서 비교문화학 석사(1992년), 하버드대에서 아시아학 박사(1997년)를 했다. 책상물림이지만, 현실감각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우리보다 한국을 더 사랑하는 교수 이만열

외교통상부가 운영하는 정책 싱크탱크에 참여한 경력도 있고, 동아일보 등에도 칼럼을 써왔다. 그의 지적 중 눈여겨볼 점은 지구촌 어느 나라 못지않게 막강한 한국의 소프트파워를 활용법이다. 사실 해외에 비춰진 한국 이미지가 좀 애매하다. ‘대박을 친 나라’이자, 선진국이라는 긍정적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지만, 여전히 혼란스럽다. 북핵 위협에 노출된 위험한 국가라는 것도 엄연히 한계다.

왜 그걸 돌파 못할까? 그걸 저자는 ‘새우 콤플렉스’라고 말한다. 강자 틈에 낀 작은 나라 열등감인데, 그래서 한국인에게는 특유의 “공포심 내지 수세적 태도”(61쪽)가 똬리 틀고 있다. 그래가지곤 국제사회를 선도하는 보편적 역할을 수행하기 힘들다. 이게 경제문제와도 얽혀있는데, 어떻게 하면 새우 콤플렉스를 극복해 작금의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코리아 프리미엄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인가?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은 그걸 묻는 책이다. 여기까지는 좋다. 다만 처방이 문제인데, 사람에 따라 좀 진부하다고 받아들일 ‘전통문화의 재발견’ 쪽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그는 한국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개념으로 선비정신(Seonbi Spirit)의 현대화를 제안한다. 선비정신은 도덕과 학문적 성취를 상징하며, 공동체의식과 홍익인간의 민본주의를 품고 있다는 것이 그의 이해다. 이런 이 책의 조언은 일단 고맙다.

“한국에 오기 전에는 결코 알지 못했던 한국문화의 위대성을 발견한 나는 희열에 빠졌다. 세상에 이런 나라가 있단 말인가?”(63쪽)란 저자의 경탄은 우리로선 듣기에 썩 기분 좋다. 특히 식민지 체험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의구심을 지울 수 없는데,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한국이름 ‘이만열’을 쓰는 저자의 학문적 깊이다. 혹시 그가 호사가(好事家) 내지 딜레탕트가 아닌가 하는가 하는 점이 걸린다.

이만열 교수로선 기분 좋을 리 없을 지적인데, 이를테면 서구의 한국학 연구를 대표하는 학자인 제임스 팔레(9년 전 작고)나, '조선왕조 사회의 성취와 귀속'(일조각)을 펴낸 에드워드 와그너(4년 전 작고) 같은 온축이 그의 책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 책만으로 속단할 수 없지만, 설렁설렁 넘어간다는 느낌을 피할 수 없다. 물론 이만열 교수가 한국학의 후발주자이기 아직은 아직은 속단하기 힘든 대목임을 인정한다.

대한민국 성공은 조선왕조 뒤엎었기에 가능했다

다만 이만열 교수는 한국학을 대중화하는 재주가 있어 보이는데, 이점 앞으로의 활동을 지켜볼 일이다. 당부할 것은 유독 마음의 상처가 많은 한국인들이 외부의 칭찬에 약한데, 이걸 너무 남용하지 말라는 점이다. (참고로 이번 책에도 그런 요소가 없지 않다.) 이 책에 대한 또 다른 의구심은 선비정신을 포함한 전통문화 찬양이 과연 온당한가에 대한 문제제기다.

이만열 교수의 전통문화 강조와 선비정신 찬양은 덕담이 아닐까? 쉽게 말해 지난 20세기 대한민국의 성공은 조선왕조의 유교질서를 뒤엎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점을 유념해야 옳다. 건국 이후가 특히 그러했다. 건국 대통령 이승만은 케케묵은 조선조의 유교질서를 기독교문명으로 깨버리는 위대한 실험을 했다. 대한민국의 성장은 그런 문명사적 전환에서 비로소 가능했다.

그렇게 닦아놓은 길 위를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는” 박정희의 돌진적 근대화라는 이름의 탱크가 굴러갔다. 유교야 물론 위대한 전통문화의 하나이지만, 구한말 구체제 속에 끝내 썩어버렸다면, 당시에 도려내는 게 정상이었다. 그걸 제거했기 때문에 우린 성공했다. 그런데 국외자의 이국취향적 시선으로 볼 때 전통문화가 그럴싸하다는 이유로 막 바로 복원하자고?

이 매력적인 읽을거리에 대해 무조건의 찬사를 보내지 못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대통령 말씀 중에 온고지신이란 옛말도 있었지만, 옳은 말씀이다. 단 지금 한국의 상황은 옛 것이 땅에 떨어져 죽고, 그래서 훗날 새싹을 틔워야 한다. 거칠게 말해 한국유교는 죽어야 산다. 필자의 이런 단언은 논란의 소지가 좀 있을 것이다. 좋은 의견을 주시길 기대한다.

글/조우석 문화평론가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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